나의 천사

봉투효과 - 03화

by JUNI KANG


이제 한 시간쯤 지나면 남편은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매트를 하나씩 끄집어내 탁탁 털어 댄 뒤 오 분 간격으로 육 층을 올려다보며 '어서 내려오라'는 무언의 압력을 보낼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마음만 더 분주해졌고, 무엇부터 챙겨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낮 열두 시쯤 강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살인 용의자가 한 손에 수갑을 찬 채 도주했다는 뉴스 속보가 연달아 흘러나오고 있었다. 용의자가 하일시 방면으로 달아났다며, 한강 다리와 주요 도로에서 검문검색을 벌이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 주고 있었다.

나는 잠시 손을 멈추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일이면… 우리 동네잖아.'


그때 누군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침대 위에 막내아들 세형이가 올라앉아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 방에서 낮잠을 자는 걸 보았는데, 언제 깨어나 침대 위까지 올라왔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여행 가방 꾸리는 모습이 낯선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가방 속 옷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었다.

"응, 우리 세형이 일어났네? 추추는 어디 있어?"

세형이는 그제야 강아지 추추가 떠오른 듯 침대를 내려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세희를 낳고 이 년쯤 지났을 때, 나는 임신한 줄도 모른 채 세형이를 가졌다.

심한 독감에 시달리며 온몸이 축 늘어진 상태로 감기약을 몇 번이나 사 먹었다.


감기 기운이 조금씩 가라앉을 즈음에는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고 머리가 깨질 듯해 진통제를 며칠 더 먹었다.


그래도 증세가 나아지지 않아 병원을 찾았을 때, 이것저것 검사를 하던 간호사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혹시 임신하신 거 아닌가요?"

나는 깜짝 놀라 "아니요!"라고 대답하고는 곧장 산부인과로 달려갔다.

'아, 제발...'
임신이 아니기를 천 번쯤 빌며 산부인과 문을 열었지만, 그런 불길한 예감은 늘 어김없이 맞아떨어졌다.

검사를 마친 여의사는 흰자위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밤새 마신 술 냄새를 아직 풍기며 '임신 사 주 차'라고 지극히 사무적으로 말했다.


별일 없을 거라던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세형이는 세 살이 지나도록 말을 하지 못했다.

행동은 느렸고 지능도 다소 떨어져 보였다. 병원을 찾았을 때,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지적장애가 동반되었다는 충격적인 진단 소견을 들었다.


의사는 감기약이 원인은 아니며 선천적인 것이라고 했지만, 모든 일이 나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만 같아 가엾은 아이를 끌어안고 몇 달을 거의 눈물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봄날이었다.

거실에 누워 있던 세형이의 머리카락과 얼굴, 그리고 눈동자 가득 햇살이 물결치듯 찰랑이며 금빛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햇살이 눈부신 듯 눈을 반쯤 감은 채 나를 올려다보던 세형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숨이 멎는 듯 황홀해졌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머리카락과 투명한 갈색 눈동자의 아름다움에 잠시 숨조차 쉬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그때, 세형이가 씩 웃어 보였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수백 개의 폭죽이 터졌고, 미켈란젤로의 날개 없는 아기 천사들이 쏟아지는 햇살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기어이 기쁨에 복받쳐 꺼이꺼이 울며, 나에게 태어나 줘서 고맙다고 "고마워, 사랑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세형이를 끌어안고 뒹굴었다.


그날 이후 나의 슬픔은 거짓말처럼 말끔히 사라졌다.

그저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말을 하지 않으니 오히려 더 의젓해 보였고, 느릿한 행동은 품위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다행히 남편도 세형이를 끔찍이 아꼈다.

제 복은 타고난다더니, 세형이는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자라났다.

특별히 누군가를 귀찮게 하거나 미움을 살 만한 짓을 하는 아이가 아니어서 더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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