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 속의 낯선 이름

봉투효과 - 04화

by JUNI KANG


아이에게 도움이 될 거라 해서 데려온 강아지 '추추'는 어느새 4년째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소중한 단짝이 되어 있었다. 믿기 힘들 만큼 둘 사이에는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졌다.


세형이가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 위에 쪼그리고 앉아 끙끙거리면, 추추도 슬그머니 욕실로 따라 들어가 바닥에 똥을 누고 나오는 식이었다.

기특하게도 세형이는 추추의 똥을 변기 안에 함께 털어 넣고 물을 내려 주었다.


제 손에 똥이 묻으면 더럽다는 건 어찌나 잘 아는지, 손가락 한 마디쯤 되는 강아지 똥 한 덩이를 치우는 데 화장지가 양팔 벌린 만큼 풀려 나갔고, 변기는 뻔질나게 막히곤 했다.


칠월 말, 한여름의 열기는 거실 깊숙한 곳까지 밀려들어 열기를 토해 내고 있었다.

아이들 옷이며 물놀이용품을 손에 잡히는 대로 가방 안에 던져 넣었다.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어 무엇이 필요한지조차 알지 못했다.


주르륵,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다시 현기증이 일며 눈앞에 투명한 반지 모양의 고리들이 무수히 떠다녔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며 앉아 있을 때였다.


한밤중에 막 잠들려는 순간 누군가 형광등을 켠 것처럼 눈앞이 하얗게 밝아지며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영어 학원에서 돌아온 세희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엄마!"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러댔다.


세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우유가 엎질러져 바닥이 흥건했고, 벽과 가구까지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는 철퍼덕 주저앉아 손으로 노를 젓고 있는 세형이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우유를 신나게 핥아먹고 있는 추추가 있었다.


세희에게는 갈아입을 옷을 던져 주고, 세형이는 욕실로 데려가 샤워를 시켰다. 옷을 갈아입은 세희는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말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뒤, 바닥에 엎질러진 우유를 걸레로 닦고 있을 때 현관문이 열리며 남편이 들어왔다.


그는 전화기를 귀에 댄 채 한 손으로 세형이를 안아 올렸다. 그리고 현관 앞에 준비해 둔 가방들을 발로 하나씩 쓱쓱 밀어 엘리베이터 쪽으로 끌고 갔다.


"그러면 포트를 바꿔 봐. 지난번에도 22번 포트가 막혀서 그랬던 것 같은데. 이번에도 증상이 비슷하지 않아? 아무튼 포맷하고 OS를 다시 깔기엔……."


아빠의 목소리에 세희가 쪼르르 달려 나와 아빠의 볼에 입을 맞췄다.

남편은 계속 통화를 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를 잠시 현관 앞에 내려놓고는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 바지 뒷주머니에서 반쯤 접힌 봉투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아, 그러니까 포맷하지 말고…… 리부팅부터 해 봐."


중소기업 서버실에서 차장으로 근무하는 남편은 늘 인력 부족에 시달리며 쉴 틈 없이 바빴다.

주말도 없이 일했고, 평일에도 새벽 한두 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눕자마자 코를 골며 깊이 잠드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나마 이번 여름휴가를 얻게 된 것도 자진해서 서버실로 부서를 옮겨 온 김 대리 덕분이라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아직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지 툭하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어보는 처지였다.


나는 남편이 건넨 봉투를 펼쳐 보았다.

회사명과 마크가 인쇄된 사무용 봉투 안에는 빳빳한 오만 원권 지폐 몇 장과 반으로 접힌 쪽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무심코 쪽지를 펼치는 순간, 나는
'흡!'
하고 숨이 멎었다.


생일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해.

맛있는 거 사 먹고 잘 지내고 있어.

다음 주에 봐.

다빈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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