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효과 - 06화
세희는 시동이 걸려 있는 자동차 앞에서 곰돌이 그림이 그려진 녹색 야광 티셔츠를 입은 채, 스마트폰으로 혼자 사진 찍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뜨거운 햇살에 눈이 부신 듯, 한 손을 눈썹 위에 올려 그늘을 만들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파랗고 화창했다. 바람 한 점 없어 여름휴가를 떠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주차장 바로 옆 등나무 그늘은 길쭉한 벤치 세 개가 디귿자 모양으로 놓여 있었고, 가운데에는 재떨이가 있어 이따금 담배를 피우는 할아버지들이 모여들던 곳이었다.
오늘은 벤치 한쪽 구석에 검은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흰 수건으로 연신 얼굴의 땀을 닦으며, 아까부터 세희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돌려 아파트 현관문 쪽을 힐끗 바라보더니, 이내 세희를 향해 쏜살같이 뛰어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세희를 번쩍 안아 들었다. 아이가 다리를 버둥거리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무릎이 열린 문짝 모서리에 찍혔다.
아이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세희의 스마트폰이 주차장 바닥으로 떨어지며 액정 화면이 산산조각 났다.
남자의 왼쪽 손목은 흰 수건으로 감싸져 있었지만, 그 안에서 철컹거리는 수갑 소리는 감출 수 없었다.
남자는 번개처럼 운전석으로 올라탔다. 조수석으로 던져진 세희는 피가 흐르는 무릎을 움켜쥔 채 목이 터져라
"아빠!"를 외치며 울부짖었다.
은색으로 반짝이는 레저용 자동차는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거칠게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일곱 살 세형이가 추추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날도, 바로 그날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신고를 받고 경찰차 대여섯 대가 경광등을 번쩍이며 도착했다.
뒤이어 지붕에 위성 안테나가 달린 방송국 차량들이 몰려왔다.
차량의 미닫이문이 열리자 카메라를 멘 기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예쁘장하게 생긴 여기자는 립스틱을 바르며 손거울을 들여다보다가 머리를 매만진 뒤 마이크를 들었다.
"아. 아. 아..."
입을 몇 번 벌리며 소리를 점검하더니 곧 카메라 앞에 섰다. 카메라의 빨간 불이 켜졌다.
"도주한 살인 용의자는 이곳에서 열 살 여자아이를 납치한 뒤 차량을 훔쳐 타고 달아났습니다. 현재 경찰은 주변 CCTV를 분석하는 한편, 도주로 차단에……"
주차장은 순식간에 북새통이 되었다.
누군가의 비극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대단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내가 잠시 이성을 잃고 울고 있던 사이, 세형이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머릿속이 번개를 맞은 듯 화끈거릴 때, 세희마저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맨발로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 내려와 이 말도 안 되는 현실과 마주했다.
남편이 더듬거리며 상황을 설명했지만, 하얗게 타버린 머릿속에는 세형이와 세희가 동시에 사라졌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 맨발인 내 모습은 쉴 새 없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속에서 초점 없는 눈으로 주변을 천천히 훑고 있었다.
그 기막힌 현실 속에서, 짧은 순간 사람들 틈에 서 있던 한 젊은 여자가 들고 있는 아이스커피가 눈에 들어왔다. 투명한 플라스틱 컵 안에 가득 담긴 얼음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저기요. 얼음 하나만 꺼내 주세요. 내 목구멍이 뜨거워져서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살려 주세요! 나, 죽을 것 같아요."
소리를 질렀지만, 말은 울음으로만 터져 나왔다.
내가 죽어도 저 여자는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도 남김없이 마시고, 뽀르륵 뽀르륵 빨대가 컵 바닥을 훑는 소리를 내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던 길을 계속 갈 것만 같았다.
그와 동시에 노랗게 변해 버린 하늘이 위아래로 몇 번 출렁이더니, 어느 순간 다리가 풀리며 나는 맥없이 주차장 바닥으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