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퇴근길, 현관 앞 (04)

가죽 지갑

by JUNI KANG


도시의 출근이 끝날 무렵, 민우는 퇴근했다.

인수인계를 마치고 나오니 오전 9시 20분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는데, 선미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지난 며칠 동안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잠시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듯했는데, 그 얼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전화를 해볼까. 망설이다가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저녁 시간 되세요? 같이 식사하실래요?]


답장을 기다리며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꼭 쥐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다. 버스가 급하게 회전하면서 머리가 유리창에 가볍게 부딪혔다. 잠결에 놀라 눈을 뜨자마자 휴대전화부터 확인했다.

답장이 와 있었다.

[네. 좋아요.]

피곤이 말끔히 가셨다. 민우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집에 도착하니 식탁에는 밥상이 차려져 있었고, 그 곁에는 메모지도 놓여 있었다.

[민우야. 밥만 퍼서 맛있게 먹어. 엄마는 병원에 검진 다녀올게.]

밥통에서 밥을 퍼서 식탁에 앉았다. 따듯한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아픈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밥알이 목에 걸린 것처럼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났다. 알람 소리에 깨어 서둘러 머리를 감았다. 옷차림과 머리 모양에 제법 신경을 썼다.

약속 장소는 선미의 회사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진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대학생이 가기에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초라해 보이지도 않는 곳.

선미의 동료들이 가끔 회식 장소로 찾는 곳이라고 했다.


민우가 먼저 도착해 구석진 테이블을 잡고 초초하게 기다린 지 10여 분 뒤, 선미가 들어왔다.

청바지에 흰색 패딩을 입은 그녀가 들어서자, 식당 안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민우의 가슴이 요동쳤다.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선미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조금 늦었지요?”

“아니요. 괜찮아요.”


선미가 패딩을 벗어 옆자리에 놓으며,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렸다. 향긋한 린스 향이 풍겨왔다. 빨간 스웨터를 입은 선미의 하얀 목이 조명을 받아 눈이 부셨다.

“선미 씨, 너무 예뻐요.”

민우가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선미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감사합니다.”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주문하고 대화가 이어졌다.

“새로운 일을 하신다고요?”

“아,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어요. 저녁 9시부터 아침 9시까지요.”

“힘드시겠어요. 밤새워 일하시면.”

“뭐, 아직은 할 만합니다.”

“그럼, 복학은 어떻게 하시나요?”

“네. 알바 4개월 하고 그 돈 모아서 다음 학기부터 다니려고요.”

선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 흔한, 고단한 청춘들의 이야기와 다를 게 없어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식사를 마친 후 선미가 작은 상자를 조심스레 내밀었다.

“이거 제가 민우오빠 드리려고 만들어 본 거예요. 아, 이런 거 처음이라 부끄럽네요.”

선미의 얼굴이 귀밑까지 붉어졌다.

민우가 포장을 풀자, 검은색 가죽 지갑이 나왔다. 수공예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반지갑이었다.

“이걸… 직접 만들었다고요?”

민우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 정말 멋지네요. 아까워서 어떻게 써요.”

“호호, 잘 못 해요. 그냥 한번 해본 거예요. 막 사용하세요. 다음에는 더 잘 만들어 볼게요.”

민우는 지갑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마냥 신기해했다.

“와… 정말 믿어지지가 않네요.”


선미는 원래 공장에서 가방을 만들었다.

어느 날 숙소에서 외국 패션 잡지를 뒤적이다 눈에 띄는 디자인을 응용해 야간에 몰래 샘플을 만들어 보았다. 다음 날 가방을 본 공장장이 놀라워했고, 제품은 곧바로 사장에게 보고되었다.

사장은 단번에 디자인에 반했다. 시제품 30개를 납품업체에 돌리자, 주문이 물밀듯 들어왔다. 다른 디자인도 마음껏 해보라며, 디자인과 샘플 제작에만 전념하도록 해주었다.


선미의 가방에 대한 입소문은 금세 퍼졌고, 어느 순간 그 가방은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제품이 되었다. 지금은 디자인팀에 있다고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아버지 생활비와 오빠의 학비까지 모두 자신이 해결하고 있었다.
“그냥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듣던 민우는 연신 감탄했다. 자신을 담담하게 들려주는 선미가 한없이 커 보였다.


선미가 벨을 눌러 커피를 주문했다. 직원이 커피 두 잔을 조용히 테이블에 내려놓고 갔다. 선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웃으며 말했다.

“커피 어때요? 이 카페가 좋은 점은 커피가 맛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보다 더 좋은 게 뭔지 아세요?”

선미가 가만히 민우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유난히 맑아 민우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글쎄요? 분위기? 맛?”

“호호호… 다 맞는데요. 진짜 좋은 건, 우리 직원들은 커피가 무료예요.”

“와, 그렇군요. 부럽네요. 하하.”

선미가 잔을 내려놓으며 낮게 말했다.

“사실은요…”

잠시 머뭇거리더니 민우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제가 연애를 할 겨를이 없어요.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는 건 꿈도 꾸지 않았고요.”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던 선미가 고개를 들며 웃었다.

“어린 나이에 공장 생활을 시작하다 보니, 사람 보는 눈이 조금 생긴 것 같아요. 민우오빠를 처음 본 날,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이상하게 안심이 됐어요.”

민우는 가죽 지갑을 만지작거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고민 많이 했어요. 내가 누군가를 만나도 되는지.”

민우는 다음 말이 예상되었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서서히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곧 그녀가 이렇게 말하고 일어설 것만 같았다.

'다음부터는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말이 아직 선미의 입에서 나오지도 않았는데, 이미 가슴이 내려앉았다.


민우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온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걸 눈치챈 선미가 고개를 조금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어디 아프세요? 괜찮으세요?”

“아니요. 선미 씨가 연락하지 말라고 할 것 같아서요.”

민우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선미가 갑자기 환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아, 그런 거 아니에요. 이렇게 민우오빠를 만나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편해요. 그래서 부탁 하나 하려고요.”


후우-.

민우가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선미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민우오빠, 의외로 소심하시네요.”

민우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갑자기 열기가 오르며 등줄기에 땀이 뱄다.

“어떤 부탁이요?”

“네. 이제부터 그냥 편하게 선미라고 불러주고, 말도 낮추면 좋겠어요.”

민우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아, 감사합니다. 그럼요. 네, 네. 하라는 대로 다 할게요.”

놀란 선미가 급히 입을 막으며 주위를 살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민우가 시계를 보자 선미도 주섬주섬 옷을 챙겼다. 민우가 계산하려고 카드를 내밀자, 카운터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이미 계산 끝났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선미가 웃으며 그냥 나가라고 손짓했다.

“오빠는 아직 학생이니 계산은 내가 할게요.”

민우는 아쉬운 표정으로 카드를 주머니에 넣고 밖으로 나왔다.


뒤따라 나오는 선미의 모습은 평범한 하얀 운동화에 패딩 차림이었지만, 조명을 받아 마치 그림 같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연인처럼,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아 주고 싶은 충동이 민우의 마음속에 일었다.

이대로 선미를 두고 가면 누군가 나타나 그녀를 채갈 것만 같았다.

'안 돼.'


민우의 속마음과 달리 선미는 밝게 손을 흔들었다.

“늦기 전에 빨리 가세요. 다음에 봐요.”

“그래, 고마웠어요, 선미 씨… 아니, 선미. 고마웠어. 잘 자!”

민우는 제 입으로 뱉은 말이 너무 부끄러운지, 그대로 돌아서서 뛰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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