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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il Choi Mar 17. 2016

점심시간

그 즐겁고 쉬운 가벼움에 대하여

    점심,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점심시간은 참 귀하고 신나는 시간일 것이다. 미국에 살면서 가장 아쉽게 생각되는 부분이 점심이며 동시에 가장 편하게 바뀐 것도 점심이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때 (직장인은 못해봤다.) 점심에 뭐를 먹을지도 매일매일 답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였지만. 누구랑 먹는지 역시도 중요했다. 고등학교까지는 반 친구들과 먹었지만 대학생 때부터는 각각의 무리들과 점심을 먹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점심... 도시락... 급식... 런치메뉴... 구내식당... 맛집... 길음식... 등등

    이외에도 많은 연관 단어를 떠올리게 도와주는 나의 점심은 미국에 오면서부터 손바닥 뒤집어지듯이 다른 양상을 띄게 되었다. 유학생 신분이던 시절, 거대한 (정말 거대하다.) 학교 캠퍼스를 이리저리 뛰어야 하고, 시간표를 짜다보면 점심을 그냥 거를 수밖에 없는 요일도 등장한다.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으나 밥시간이 없다. 아무튼 학기가 시작되면 광활한 캠퍼스를 학교 셔틀을 타거나 두 다리로 미친 듯이 걸어 다니다 보면 끝나는 게 대학생의 하루였다. 이러다 보니 (전공만 들을 때는 덜하지만) 혼자 점심을 먹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수많은 학생들이 자연스레 그렇게 하고 있었다. 


남자들만 몰려다니다 보면 이런 짓도 해본다. 


    자본주의를 넘어 적절한(?) 개인주의 마저 발달한 자유국가의 학생들 답게, 같이 숙제할 때도 누군가는 미리 점심을 먹고 오고, 누군가는 사서 가져와서 공동 과제 중에도 먹기도 하며. 좀 더 나가가면 수업시간에도 종종 먹는 학생들이 있었다. 물론 미국 교수들은 거의 상관하지 않는다. (사실 지적하는 건 수년 동안 한 번도 못 봤다.)


    아무튼 미국인들에게 점심은 따로 시간을 정하기보다는 자기가 편한 데로 해결한다는 인식이 강한 듯하다. 말 그대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다. 우리 회사도 많은 경우가 자기 스케줄대로 일을 해서 그런지, 오전 11시부터 2시까지 모두 제각각의 시간에 밥을 먹는다. 밥 먹었는지 서로 묻지도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전 회사에 같이 다니던 동료 중에 브라질에서 온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미국 문화중에 점심이 제일 싫다고 했다. 미국인들은 점심을 너무 경시한다나... 호불호가 있겠으나 아마도 좋게 말하자면 실용주의, 나쁘게 하자면 개인주의라 하겠다. 뭐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미국 문화이다.


미국회사도 당연히 바쁘면 별거 없다.

        물론 각자 자기 방식대로 라고 했으니, 점심을 열심히 챙겨 먹는 이들도 있다. 나를 비롯한 몇몇의 무리들이 그렇다. 늘 붙어있는 팀원들이다 보니 같이 먹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졌다. 일주일에 서너 번까지도 같이 먹는다. 곧 즐거운 점심시간에 맛들 린 우리는 10시 쯤되면 오늘은 어디로 가볼까를 연구한다. 곳곳에 새로 생긴 곳이나 살짝 운전해서 가야 하는 곳까지 넓은 범위를 가지고 열심히 다닌다. 거의 오피스 메이트처럼 지내는 닉과 나는, 살짝 먹고사는 게 그 어떤 것 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통해서 일까? 신나게 검색하고 찾아간다. 쉽게는 햄버거에서부터 호사스럽게는 철판요리까지. 물론 모두 런치메뉴만 먹기 때문에 5달러에서 12달러 정도의 가격이다.


5~12 달러 정도의 점심은 이 세상의 모든 메뉴를 제공할 것처럼 다양하다.


    우리처럼 죽을힘을 다해 런치를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미국 회사에서 점심문화는 근무 환경이 많이 영향을 준다. 큐비클 (사람 키 높이 정도로 사무실처럼 나눠주는 칸막이)로 구성된 곳이 보통인데 이런 경우는 누가 뭘 먹는지 어떤지 좀 더 알기 힘든 구조라 대강 혼자 먹는 경우가 더 많아진다. 아내의 회사는 그런 구조라서 대부분 혼자 먹는 게 더 자연스럽다고 한다. 혹은 그 회사 분위기가 그럴 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내가 다니는 회사의 근무 환경은 완전히 열린 구조 형태(open office plan)이다. 일반 사원부터 디렉터까지 칸막이나 사무실이 없다. 대학교의 커다란 전산실처럼 엄청 넓은 공간에 모두를 집어넣고 있으니 같은 반 친구처럼 지낸다는 말이 더 가까워진다. 이것에는 엄청난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는데 지금은 밥 먹는 이야기 중이니 넘어가겠다.


    이런 open office plan은 나처럼 점심 혼자 먹는 거에 지친 사람에게는 참으로 좋은 기회였다. (거의 4년을 대부분 혼자 먹었다.) IT 부서 특성상, 대부분이 남자 직원이고 젊기 때문에 쉽게 친해지고 주로 같이 밥을 먹으러 간다. 하지만 역시나 대부분 점심스러운 메뉴로 선정된다. 주로 샌드위치와 햄버거 혹은 샐러드가 첫 고려대상이다. 지금은 한국에 대한 향수가 거의 없지만, 백일에 한 번쯤은 비 오는 날 점심에 문득 설렁탕 그리워진다.


비 오는 날 국물이 먹고 싶은 나는 아직 한국인이다.

 

비오는 날은 일본식 라면으로 대신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전반적으로 자유로운, 또는 서로 전혀 상관 안 하는 점심 문화는 Happyhour라는 훌륭한(?) 미국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일조를 했을지도 모른다. (퇴근길에 맥주 한잔하는 그런 문화를 말하는데 자세한 건 다음에 하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식사하셨어요?"라고 버릇처럼 묻는 일은 나에게는 점점 더 낯선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다섯 명의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가 웬만한 여자의 팔뚝보다 더 큰 샌드위치를 하나씩 삼키고 왔다.

닉이 내일은 한국식 치킨을 먹으러 가보자고 했는데 과연 가게 될는지는 내일 이면 알겠지? 




 그런데 한국의 직장인들은 뭘 먹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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