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는 “나 한국에서 전시회 하고 싶은데 괜찮은 갤러리가 뭐 뭐 있어?”라고 물을 텐데, 그녀는 “나 한국에서 전시회 하고 싶은데 한국의 최고 갤러리가 어디야?”라고 묻는다. 아직 20대인 작가의 질문을 듣고는 꽤 당돌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자~알 나가는 젊은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녀의 당돌함이 당당함으로 느껴졌다.
지난 12월 말경 도쿄에서 전철로 40여 분 거리의 지바현에 위치한 에가미 에츠의 작업실을 찾았다.
이날의 소모임은 일본에서 유명한 기업가이자 아트 컬렉터이며 에가미 에츠의 전폭적인 후원자인 카와무라 상이 주최하였는데 나와 마누라상을 포함해 10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며 명함을 받다 보니 일본 내 메이저 옥션의 회장 등 쟁쟁한 배경의 아트 컬렉터들이 모였는데 모두 에가미의 펜으로 카와무라 상의 초대에 응했다고 한다.
참석자들 간의 인사로 시작된 이날 모임의 목적은 에가미 에츠가 기획하고 있는 전시에 관하여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신작들을 소개, 구매하는 자리였다. 그전에 그녀의 현황에 관하여 들었는데 이미 글로벌 스타의 스케줄답다.
중국의 탑 갤러리인 Tang gallery에서의 개인전을 위한 작품 배송이 며칠 전에 마무리되어 무지무지 분주했고, 구겐하임 뉴욕의 그룹전을 비롯해 여기저기 세계 유수의 미술관, 갤러리에서 러브콜이 쇄도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가로 9미터의 대형 작품이 커미션 워크로 들어와 더 큰 작업실로 이전하려고 스튜디오를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이 정도만 해도 그녀의 당당함이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젊은 스타 아티스트의 꽉 찬 하루에 우리 모두 박수로 응원을 해주었다.
이어서 그녀가 스스로 야심 차게 기획하고 있는 기획전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그녀의 계획이 내게는 다소 현실감이 부족하게 느껴져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해 보기도 했다.
비상하고 천재적 재능의 아티스트이지만 전시라는 것은 확실히 적절한 기획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는데 그래도 조금 뻑뻑한 계획이지만 20대 화가가 생각하기에는 참으로 당돌한 생각이긴 하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작품 공개 시간!
그동안 얌전히 앉아있던 참석자들의 눈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S 옥션 회장님은 100호 대작을 포함해 석 점, 사업가 부부도 50호 두 점과 소품 한 점. 마누라상과 나도 50호, 10호 한 점씩 두 점을 구매했다. 나머지 참석자들도 모두 한 점 이상 구매를 했다.
웨이팅 리스트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에가미의 작품을 그녀의 작업실에서 그것도 맘에 드는 작품을 골라가며 두 점이나 소장하게 되니 무지무지 기뻐 카와무라상에게 거듭 감사를 전했다.
일정이 모두 끝나고 그녀와 한국 미술 시장에 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추천할 만한 갤러리 몇 곳을 추려주기로 약속하고 이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도쿄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벌써부터 신이 난 우리는 그녀의 작품이 집에 도착하면 어디에 걸어야 할지 수다를 떨었는데 조금 전 20여 분 되는 시간 동안 최소 1억 5천만 원의 작품을 팔아치운 젊은 아티스트와 그녀의 당당함이 새삼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그 영화 속에 마누라상과 내가 잠시 등장했다 생각하니 기쁜 마음에 다시 한번 건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덜컹이는 기차 밖 풍경은 서서히 도쿄의 익숙함으로 모습을 바꿔가고 맛난 캔맥주(긴자 라이온 신상-매우 맛있음)와 멋들어진 에가미의 작품들...
꽤 그럴싸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