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반 도쿄 집을 나서 꼬박 4시간의 공을 들여 찾은 곳은 '나의 살던 고향은~'이 아닌 쿠사마 할머니가 살던 나가노의 마쓰모토 시. 그곳에 있는 마쓰모토 시립 미술관을 찾았다.
그런데 살랑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들이 곁들여져야만 할 것 같은 "미술관 가는 길"치고는 어째 좀 험난하다. 집에서 야마노테선을 타고 신주쿠역으로 이동, 신주쿠역에서 다시 아즈사 특급 열차(Azusa Express)를 타고 2시간 50분을 달려야 "미술관"에 도착한다. 게다가 간만에 시골 풍경을 보며 깊은 멍의 세계로 빠져들기를 기대하고 열차에 올랐것만, 근처 자리의 아가 두 명이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며 장장 2시간 50분간 몸과 마을을 바친 열정의 정상회담을 벌이는 바람에 가는 길의 반은 기차의 통로에 서있느라 출발부터 노곤해졌다.
"아가들아 너희들 도대체 안건이 몇 개니?"
마쓰모토 역까지 30분쯤 남은 시간, 근처 음식점을 검색하는 중 "부르릉~" 라인 메시지가 도착해 열어보니 미녀 큐레이터 E 상이 마쓰모토 미술관 근처의 맛집 몇 곳을 추천해왔다. 헐~기막힌 타이밍, 아리가또!
추천 중 한곳을 골라 찾아간 소박한 소바 집!
기차에서의 멘붕은 이곳의 소바로 치유되었다. 그동안 먹어온 쫍쪼름, 멘들 멘들 도시 소바와는 다른 소박하고 거친 맛! 그동안 나의 소바에 관한 기억이 호올~딱 바뀌었다.
이럴 때 쓰는 표현이지? 인생 소바!
미술관 입구에 붙은 전시 포스터가 반갑다.
그리고 그 너머로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는 쿠사마상...
마쓰모토 미술관에 발을 들여놓으면 쿠사마 야요이, 그녀의 세상이 시작된다.
왼쪽에는 다섯 송이의 튤립, The Visionaly Flowers (2002)가 용트림을 하며 승천을 준비한다. 20미터 대형 조형물은 마쓰모토 시립 미술관에 영구 설치된 작품으로 이곳의 다른 대부분의 작품들처럼 마츠모토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지방 도시의 미술관 치고는 컬렉션이 상당히 호화롭다.
미술관의 중앙에는 쿠사마 야요이의 상징과도 같은 polka dot으로 빨갛게 물든 초 대형 벽화 작품이 걸려있다. 폭 46미터, 높이 14미터의 캔버스에는 하늘색 강아지와 핑크와 노란색 날개를 한 나비 한 마리가 새~빨간 눈밭을 뛰논다.
마쓰모토에서 세계로 To the future, From Matsumoto (2016)
작품명에서 쿠사마 야요이의 고향을 향한 애정이 충분히 느껴지는 이 작품에는 그녀의 메시지도 덧붙여있다.
"나의 나비가 시나노(나가노의 옛 지명)의 하늘을 높이 날고, 강아지 코콘군도 즐겁구나"
쿠사마 야요이 판화의 세계
2022年7月23日(土) 〜 2022年9月25日(日)
마쓰모토 시립 미술관 기획 전시실
마쓰모토 시립 미술관에서 한 달 전 시작된 전시는 쿠사마 야요이 역대 최대 규모의 판화전으로 판화 303점과 대형 실크 스크린 시리즈인 Love Forever 50점, 무려 353점의 쿠사마 야요이의 판화 작품이 전시돼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그녀의 총 판화가 452점이니 80% 정도는 모인 셈이다.
이번 기획전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곳 마쓰모토 시립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이렇게 이곳에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들이 넘쳐나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고향인 마쓰모토시에 기증한 작품들과 무상으로 대여해준 작품들, 그리고 시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소장한 작품들이 한곳에 모여있기 때문이다.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안 되었는데 2만 명이 다녀갔단다. 이 지방 도시의 조용한 미술관에 하루 6~7백 명이 관람을 오니 '마쓰모토시는 쿠사마 야요이로 먹고산다'는 말이 그닥 과장은 아닌 듯.
<전시실 내부는 사진 촬영 불가로 미술관 홍보자료 사진 발췌>
전시실에 들어서면 자주 접해와 친숙헤진 작품들로 전시가 시작된다. 옥션 프리뷰나 책자 등에서 보아온 작품들이지만 한자리에 모아 놓고 보니 큰 설치 작품 같기도 하여 눈이 휘둥그레져서 관람을 하고 있는데 전시의 중간쯤 이런 방이 나타났다.
호박들이 덩굴째 걸렸다. 정면에는 그 유명한 노란색 호박들, 오른 편에는 펄이 들어간 각종 색상의 호박들이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작품들 수십점을 한눈에 바라본다니! 놀라움과 감탄은 어떤면에서는 신성함을 품고있었다.
"나는 지금 쿠사마 야요이의 성지(聖地)에 발을 딛고 있다"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아쉬움을 재촉하여 다음 전시실로 이동하면 날카롭고 가는 모노톤이 주를 이루는 에칭 판화 시리즈로 이어진다. 실크 스크린 작품들에 비해 조금 인기가 덜한 작품들이지만 오히려 섬세한 터치와 쿠사마의 선이 움직이는 방향을 볼 수 있어 좋다.
그리고 판화 작품들 중 피날레는 놀랍게도 LOVE FOREVER, 내가 가장 좋아하는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들이다.
쿠사마 야요이의 LOVE FOREVER! 2004년부터 만 4년에 걸쳐 완성된 50점의 연작 시리즈!
모두 100호 사이즈의 모노톤 대작들로 그녀의 연작 시리즈 중 단연 최고 걸작이다. 쿠사마 야요이가 그린 이 원작 50점은 대형 스크린 프린트 판화로 제작되었는데 각 작품은 ed가 5장 AP 1장으로 희소성이 매우 높은 판화 작품이다. 본태 뮤지엄에서도 이 중 두 점을 소장하고 있어 밤낮으로 즐겨 보았는데 마쓰모토 시립 미술관의 한 전시실에 50작품 모두를 빼곡히 걸었다. 이런 광경을 내 평생 또 볼 수 있을지!
Love Forever 50점 연작은 모두 연결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AWAKENING OF SPRING으로 시작되는 시리즈의 첫 작품을 포함해 모두 각기 다른 낭만적이고 문학적인 작품명을 가지고 있는데, 49번째 작품은 ENTRANCE TO HEAVEN으로 이어지고 마지막 50번의 작품은 INFINITY-COSMOS로 이름지어져있다.
탄생-성장-번뇌와 환의-죽음-영생으로 이어지는 그녀의, 우리의 삶이 50점의 작품 속에 여백없이 담겨있다.
전시실 중앙에는 작품명과 작품의 위치를 표시한 안내서가 준비되어 있어 번호를 따라 눈을 옮겨 50개의 인생을 들여다보았다.
49번의 '천국의 입구'에서 삶은 완성되지 않고 50의 '영원의 우주'를 거쳐야 그것이 마무리되는 것이라면 죽음은 그리 두려운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さよなら私の愛染たち!
나의 번뇌들이여 안녕!
쿠사마 야요이 [영혼을 놓아준 곳]
2022年2月21日 〜 2023年4月9日
마쓰모토 시립 미술관 컬렉션 전시실
미술관 2층 기획전실에서의 판화전은 3층의 소장 작품전으로 이어져 무한 거울의 방, 대형 호박 조형물같은 유명 설치작부터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작품들을 포함하여 총 16점이 전시돼있는데. 미술관의 전시 홍보 포스터에 쓰인 커다란 문구가 과장이 아니었다.
"마쓰모토 미술관이 아니면 체감할 수 없는, 쿠사마 야요이의 현재와 원점"
LED와 거울로 만들어진 '천국의 계단'
Ladder to Heaven, 2006
Mirror, metal, lighting fiber tube
396 x 150
22년 전 만들어진 '신의 심장'
GOD's HEART
2000
98.9×100.0×10.0
mixed media
이보다 더 찬란한 샹들리에는 없을듯..
Aching Chandelier
245 x160
mixed media
2011
200호의 명작 [끝없는 우리들의 영혼]
Endless Life of People
2010
194.0×194.0
acrylic on canvas
정말로 오래간만에 들어가 본 [무한 거울의 방], 본태 미술관과 같이 바닥에 물이 차있는 작품이다. 바닥이 물이 아닌 거울로 채워진 작품도 있지만 무한 거울의 참 맛은 물로 채워진 작품이 당연 으뜸이다.
(단, 정기적으로 물 빼고 청소하기 매우 힘들다는 단점)
쿠사마 야요이 컬렉션전의 피날레는 역시 초대형 호박, 이 역시 본태 뮤지엄 소장품과 같은 작품이다.
마쓰모토 미술관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진귀한 16점의 작품들을 유유히 관람하고 나오면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쿠사마 코카콜라 자판기를 볼 수도 있다.
점 몇개 찍었을 뿐인데! 대단한 쿠사마 할머니!
미술관을 나서기 전, 다시 한번 용트림 튤립과 아이사쯔! 곧 또 보자~
미술관에서 마쓰모토 역으로 향하는 길, 아담한 쇼핑거리가 나왔다.
우선 당 보충
아니 마쓰모토시에 제주도 음식점이라니! 그냥 한식당 인가?
고생이 많구나~
사진으로는 멋진 여름의 하늘,
계절 중 여름이 가장 좋다는 건 통 공감이 힘들어
여름은 습함, 더위, 괴로움,
상점들 곳곳에 붙은 쿠사마 야요이 전시 포스터,
집에 포스터를 걸어 놓고 싶어서 미술관 매표소에서 포스터 한 장 받을 수 있냐고
물으니 상당히 의아한 표정을 하던 매표소 아주머니의 표정
집 떠난 지 10시간 후 저녁 다섯시 반 열차를 타고 다시 도쿄로....
아가들의 정상 회담이 열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승차,
바람은 이루어졌다.
혼자 떠난 당일 치기 나들이, 쿠사마 야요이 성지 순례는 시원한 하이볼로 맛있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