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사마 야요이 뮤지엄 특별전
2023년 첫 전시관람을 위해 아껴두었던 쿠사마 야요이 미술관(YAYOI KUSAMA MUSEUM)의 특별전을 보기 위해 올해 첫 토요일 신주쿠 벤텐쵸를 찾았다. 와세다 대학 근처에 위치한 쿠사마 야요이 미술관은 2017년 개관하여 매년 2~3회의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는데 열 번째 기획전인 이번 전시가 유독 기대된 이유는 최초로 공개되는 쿠사마 야요이의 신작 시리즈인 "EVERYDAY I PRAY FOR LOVE"의 작품들 때문이다.
쿠사마 재단 (Yayoi Kusama Foundation)에서 운영하는 쿠사마 야요이 미술관은 총 5개 층의 아담한 건물로 각층별로 전시 테마가 구분된다. 관람 동선은 1층부터 5층까지 다소 가파른 계단을 올라 각 전시실을 둘러본 후 5층의 루프탑에서 조형물을 관람하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1층으로 내려오게 디자인되어 있다. 100% 사전 예약을 통하여 관람객을 맞이하는 미술관은 예약 완료 시 발행되는 QR 코드를 미술관 입구에서 확인받은 후 입장이 가능하다. 이번 기획전 "나는 사랑을 위해 매일 기도한다"를 관람 동선을 따라 옮겨본다.
전시 관람은 도록 및 아트 상품 판매를 겸하는 1층 전시실에서 시작된다. 아트샵은 단출하여 상품이 다양하진 않지만 오히려 상업적인 분위기가 덜해 좋다. 이번 전시의 1층에는 쿠사마 야요이의 상징인 Ploka Dot을 2,3차원으로 형상화한 설치작품인 일명 쿠사마 땡땡이 풍선이 설치되어 있다. 1996년 처음 발표된 Dots Obsession은 대형 풍선을 공중에 뛰어 설치하고 그의 그림자를 바닥이나 벽면에 형상화하는 설치작품으로 기술적으로는 간단하지만 비주얼적 효과는 만점이어서 쿠사마 야요이의 대형 전시 때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핑크를 모티브로 선보인 이번 작품은 공중에 떠오른 풍선의 고채도와 평면의 저채도의 적당한 대조감이 단순하면서도 황홀감이 가득 찬 조화를 보여준다.
사진 촬영이 엄격히 제한되는 2층과 3층이 미술관의 메인 전시실이라고 할 수 있는데 2층에는 이번 전시의 대표 작품인 쿠사마 야요이의 최신작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2022년부터 쿠사마 야요이의 회화 작품의 뒷면에 "毎日愛について祈っている"라는 문구가 자주 등장하는데 "나는 매일 사랑을 위해 기도한다"라는 이 문구는 새로운 회화 작품의 작품명이 되기도 하고 쿠사마 야요이가 쓰고 있는 시들의 제목이 되기로 한다.
신작 시리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작품의 크기로 이전 시리즈인 My Eternal Soul이 주로 S200(194X194) 사이즈의 대형 작품인 것과 대조적으로 작품 사이즈가 소형화되어 53x53가 주를 이루고 간혹 100x100 작품들도 보이는데 아무래도 대형작품을 많이 그리기에는 고령의 작가에게 체력적인 한계가 있지 않을까 짐작을 해본다. 또한 쿠사마 야요이 후기 작품의 특징인 폴카닷, 땡땡이가 완벽한 원형이 아닌 붓칠의 질감이 묻어나는 자연스러운 모양을 하고 있다. 한편, 회화에 등장하는 소재면에서는 기존 시리즈에 비해 해학적인 요소들이 다소 등장하여 강렬함이 줄어든 색채와 함께 전체적으로 작품의 무게감을 덜어주어 그림이 경쾌하고 친근해졌다.
쿠사마 야요이는 자신의 왕성한 창작욕을 그림으로만 표출하지는 않는다. 90을 훌쩍 넘은 고령의 작가는 그림만큼 글을 좋아해서 읽기와 쓰기 또한 그녀의 주요 일과다. 이렇게 해서 쓰인 시의 양도 많아 여러 권의 시집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2층에는 사랑을 위해 기도하는 그녀의 시도 몇 편 아카이브 성격으로 전시되어 있다.
3층에는 쿠사마 야요이가 2009년부터 2021년까지 창작한 그녀의 회화 시리즈 중 가장 대작(작품 수, 기간)인 "나의 영원한 영혼" 시리즈가 전시 중이다. 이중 S200의 대작 9점을 전시실의 전면에 배치해 커다란 한 점의 설치 작품처럼 보이게 연출하였다. 이 9점은 My Eternal Soul의 특징이자 매력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는 커다란 사이즈와 강렬한 색감으로 정사각 194m의 대형 캔버스와 레드, 화이트, 엘로우가 많이 사용된 파워풀한 색감의 작품에서 강력한 에너지가 넘쳐난다. 쿠사마 할머니는 My Eternal Soul 시리즈의 대형 작품을 그릴 때면 며칠을 그림에만 몰두하여 탈진할 때까지 그림을 그리곤 하였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그녀의 혼신을 담은 그림들이 반짝반짝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작가 자신의 바람일지도 모를 영원한 영혼을 향한 열망으로 채워진 그림들이 아담한 공간을 압도적으로 뒤덮고 있는 전시실에 서 있자니 어떤 신성함마저 느껴진다.
한편 그 옆면으로는 이보다 조금 작은 100 x 100의 중형 작품 32점을 여백 없이 나란히 설치해 전체적으로 3층은 거대한 회화 타워 콘셉트이다.
회화 외에 1점의 설치 작품도 전시 중인데 "The Universe as Seen from the Stairway to Heaven"이라는 작품명의 '들여다보는 거울 작품'으로 기존 작품과는 달리 여러 개의 구멍을 통해 제각각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게 흥미롭다. 회화뿐 아니라 이런 간단한 원리의 설치 작품을 통해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함께 고안하고 연출해 내는 고령의 예술가 쿠사마 야요이의 대단함이 새삼 느껴지는 작품이다.
2000/2022
Fluorescent stikers,
ultraviolet fluorescent light,
household objects
"망막에 형상화된 나의 주변은 실제의 모습일까? 나와 주변의 경계는 무엇일까?"
쿠사마 야요이 자신이 경험하게 되는 환각현상 이후 그녀는 이와 같은 의문을 가지게 되고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경계가 모호해지고 결국은 사라지는 경험을 "Self Obliteration"이라고 표현하며 이를 바탕으로 2000년 방(Room)을 소재로 한 작품을 처음 선보이게 된다. 그중 한 작품이 글로벌 미술계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온 "Obliteration Room" 즉, 소멸의 방으로 한국에서는 2014년 본태 미술관 쿠사마 야요이 특별전 "A Dream in Jeju"에서 선보인적 있다.
이번 쿠사마 야요이 특별전에서는 소멸의 방에서 조금 변형된 버전의 작품인 I'm here, but Nothing이라는 작품이 선보였는데 소멸의 방과 같이 관람자가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 아닌 미리 설치된 형광 스티커가 어두운 조명아래서 빛을 반사는 작품으로 쿠사마 야요이가 경험한 환각을 몽환적으로 재현하였다. 이곳에서는 침대나 소파에 앉아보는 것이 가능하고 1분간 관람이 가능하다. 사라지는 내 주변의 경계를 상상해 보기에는 짧은 시간이어서 아쉽다.
"자신의 정신적 장애를 예술로 극복한(승화시킨) 쿠사마 야요이"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문구가 되었다. 이를 조금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자신의 정신적 장애나 혹은 그로 인한 두려움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예술로 표현하는 "Psychosomatic Art"에서 기인한 표현으로 쿠사마 야요이는 자신의 장애와 두려움에 창작으로 당당히 맞서고 있는 Psychosomatic Art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하늘로 창을 낸 5층 야외 정원에는 기이한 형태를 한 LIFE라는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FRP로 내부를, 이탈리아산 타일로 외부를 장식한 작품은 마치 땅속에서 생겨난 에너지의 근원이 승천을 준비하는듯한 작품으로 쿠사마 야요이 자신이 느낀 어떤 두려움들을 "삶"이라는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멋진 작품이다.
1년에 두 차례 정도 조형물을 교체하는 이곳 야외 정원은 도려낸듯한 하늘이 바라보이게 설계되어 미술관을 찾을 때면 매번 한참을 머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전시의 마무리는 보너스로 주어지는 땡땡이 엘리베이터에서... 점 하나 찍었을 뿐인데 참 대단한 볼거리가 된다.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영원할 우리들의 영혼을 노래하던 쿠사마 야요이가 그녀의 신작을 위해 고른 소재는 "사랑"이다. 90 중반을 앞둔 고령의 작가에게 그녀의 모든 번뇌를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존재는 아마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막 시작된 2023년 우리 가정의 올해 슬로건도 사랑으로 정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이 풍성한 시절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