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굵은 빗줄기가 내리긴 하지만 점심을 먹고 시바코엔의 조조지를 찾았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던 3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 머니 생각을 내내 하며 빗길을 걸었다.
잘 지내지?
너랑 함께 와보지는 못했지만 언니, 오빠는 도쿄에서 잘 지내고 있단다. 같이 와보았으면 좋으련만…
머니도 거기서 맛난 거 많이 먹고, 똥·오줌도 네가 싸고 싶은 데서 마음대로 싸면서 행복하게 지내.
오빠가 혼내고 한 거는 다 잊고 잘 지내야 해.
보고 싶다. 내년에 또 올게.
부처님, 우리 머니 잘 봐주세요.
조용한 조조지 본당에서 짧은 기도를 올렸다.
기억해야 할 기일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그런 나이가 되었나 보다.
아침에는 서울의 친구와 한참 통화를 했다.
심장 박동이 정상인의 10분의 1로 내려가 하루하루 생사를 오가고 계시는 친구의 부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미 생명 유지 장치를 끼신 지 일주일이 지났고, 그동안 심폐정지가 두 번이나 와서 이미 많은걸 내려논 친구의 심정이 핸드폰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 모두 마음의 준비를 애써 하느라 고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례식 준비와 유골을 어떻게 할지 등의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가족들과 이야기를 했고, 다행스럽게 외국에 있는 형님과 가족들이 급히 귀국해 아버님 곁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작은 기적이라도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친구에게 말해 주려다 ‘힘내’라는 이야기로 대신하고 전화를 끊었다.
지역별 오늘의 사망자 수 속보를 매일 접하며 ‘죽음’이라는 단어가 친숙하던 코로나 시절, 하루는 마누라상과 우리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다.
우리의 죽음에 관해 내가 주문한 건 두 가지.
첫째, 마누라는 나보다 오래 살기.
총명하고 독립심 강한 마누라는 나 없어도 잘 살지만, 총명하지 않고 독립심 결여인 나는 마누라 없이 혼자 사는 건 무리라는 이유.
둘째는 내 유골에 관해서는 불법을 서슴지 말 것.
캐리비안 베이 같은 물놀이 동산에 가서 내 유골을 몰래몰래 뿌려 주기.
마지막 이승에서 사람들과 원없이 놀고 갈 수 있도록.
실없는 죽음에 관한 부부의 대화는, 물론 와인을 주고받으며 잘 마무리되었다.
백세 시대에 아직 절반까지만 와 있지만, 기억해야 할 기일과 준비해야 할 기일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친구들, 가족들, 나와 마누라상에게도 모두에게 다가올 일이지만, 조금 천천히, 조금 차분하게, 그리고 너무 갑작스럽지 않게 다가와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전까지 행복하게 오순도순 자주 웃으며 살아가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