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I의 2025년 마지막 옥션이 지난 10월 25일부터 이틀간 열렸다.
결과는 심심한 미술 시장을 잘 반영하듯 크게 오른 것도 크게 하락한 것도 없는 맹맹한 마무리였다.
총 거래금액은 작년 대비 반토막 수준으로 ¥876,018,250, 낙찰률은 SBI에서는 보기 드문 86.1%로 다소 맥이 빠지는 숫자를 기록했다. 메이저 옥션인 10월의 결과 치고는 휭한 숫자를 남기고 2025를 마무리했다.
일본 프라이머리 마켓도 심심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진정한 컬렉터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시기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여유를 보이는 탑 갤러리도 있는 반면, 보기 드문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그림 팔기에 총력전을 나서고 있는 중견, 소형 갤러리들의 모습이 역력하다
그래도 한국처럼 줄폐업을 하는 갤러리들의 뉴스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고생들 하는 분위기다.
겨울이 있어야 봄도 오는 것처럼, 곧 미술 시장에도 춘풍이 솔솔 불어 오기를....
쿠사마 야요이, 이우환, 앤디 워홀 등 글로벌 스타 작가를 제외하고는 거품 빠진 미술시장의 노 메이크업 얼굴을 그대로 드러낸 이번 SBI 옥션의 낙찰결과를 주요 작가별로 정리해 본다.
1. 에가미 에츠, Etsu Egamai - 다시 뒷걸음
지난번 옥션에서 선전을 하며 회복세를 보이던 인기 작가 에가미 에츠는 이번 옥션에서는 다시 뒷걸음 질을 쳤다.
낙찰 가격 : 유찰
석 점이 출품되었는데 삼국지의 관우를 그린 위 작품은 유찰이 되었다.
이 작품의 출처가 눈에 띄는데, 2023년에 교토의 츠타야 북스가 갤러리 공간을 마련하면서 같은 해 12월에 개최한 에가미의 전시회에 출품되었던 작품이다.
그리고 그때 컬렉터를 찾아갔던 작품이 만 2년이 안되어 같은 일본 시장의 세컨더리 마켓에 출품되어 죽사발을 썼다.
누가 사서 누가 옥션에 내놓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같은 불황에 이 작품이 돈을 벌어줄 거라 생각했다니 '쯧쯧쯧'이 절로 나온다.
아래의 작품을 보면 에가미 에츠의 신데렐라 선언을 알리는 잔치였던 2021년 긴자 식스 츠타야 북스에서의 개인전에서 피 튀기는 경쟁을 치르며 주인을 찾아갔던 작품 중 하나이다.
이런 작품이 이번 옥션에서 당시 판매가에 턱없이 못 미치는 데다가 에스티 메이트 시작가의 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을 기록했다.
지금의 미술 시장의 상황이 이런 수준인데 거품이 빠지고도 바닥난 2023년 12월에 사서 22개월 만에 세컨더리 마켓에 같은 작품을 내놓는다니, 에가미한테 원한이 있는 사람인지 모자란 사람인지 둘 중 하나는 분명한데.... 후자인 듯.
낙찰 가격 : ¥609.500
낙찰 가격 : ¥368,000
에가미 자신의 초상화인듯한 작품도 아담하고 작품도 좋아 보이지만, 시작가에 마무리.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서도 멍청하게 플리핑을 하려는 사람들과 츠타야 북스라는 대기업이 2년이라는 리세일 제한마저 지켜내지 못하는 가운데 에가미 에츠의 작품은 이번 옥션에서 죽을 썼다.
한번 빠지기 시작한 작품가가 다시 오르는 데에는 시간과의 싸움을 통해 소수의 작가만이 그것을 현실화할 수 있다. 에가미 에츠는 그 소수의 작가가 될 수 있을지? 반짝 스타로 잊힐지?
작품의 독창성, 테크닉, 의미 등 작가 자신의 철학 등이 탄탄히 뒷받침하고 있는 작가이니 시간과의 싸움을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2. 치하루 시오타, Shiota Chiharu - 조금씩 회복?
에가미 에츠에 비하면 한참 큰 언니 격인 치하루 시오타는 지난번, 이번 옥션에서는 조금씩 찾는 이가 늘어나는듯하다.
사실 뮤지엄 전시에서 수많은 관람객을 몰고 다니는 스타 작가인 그녀의 이름을 무색하게 할만큼 그동안 옥션시장에서 썰렁한 반응이었는데 이번 옥션에서는 석점 모두 최고 추정가를 넘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 석 점의 작품들이 모두 2020년 이전 작품들이란 점이다. 즉, 시오타가 대중적으로 인기몰이를 시작한 2020년 이후 마구잡이로 찍어내고 그려낸 작품들이 아니라는것.
2020년 이후에 발표된 작품들은 아직 회복세가 주춤하지만 조금 더 순수했던 예전 작품들은 조금씩이나마 찾는 이가 늘어나는듯하다.
하여간 한참 뜨는 작가 건, 잘나가는 작가 건, 작품의 다량 방출은 시장에서 냉정한 반응을 받기 마련이다.
3. 키네 KYNE - 에디션 작품의 선전
그럼 또 다른 스타작가 키네는 어떨까?
고가의 원화는 찾는 이가 드문 반면 '한번 질러볼 만한' 에디션 작품들은 인기가 여전하다.
'고가 작품은 썰렁, 중저가 작품은 그나마 선전'인 글로벌 미술 시장의 현 추세와도 비슷한 모습니다.
낙찰 가격 : ¥4,600,000
다소 앳된 모습의 작품은 중간 추정가를 조금 넘어 낙찰
낙찰 가격 : ¥2,242,500
반면 라인이 두껍고 더 강한 인상의 여인상 작품은 최고 추정가를 넘어 낙찰
낙찰 가격 : ¥0
가장 큰 50호의 작품은 유찰, 역시 키네의 원화는 등장 여인의 표정과 인상에 작품 가격이 민감하게 반응하는듯하다.
판화 석 점은 여전히 최고 추정가를 넘어 낙찰.
시장의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을때 한 점 들여보자는 소신 컬렉터들이 중저가 작품에 몰리고 있는 듯.
4. 코타오 토모자와 - 프로보다 세련된 신인
신데렐라보다 화려하게 등장한 토모자와는 20대 작가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작품, 전시 수 관리에 철저하다.
그런 탓인지 원화도 여전히 수요가 꾸준하고 좋은 작품은 옥션에 잘 나오질 않는다.
소속 갤러리 없이 매니저와 일하며 작가 자신이 직접 컬렉터와 전시 공간을 결정하는 작가는 요즘 활동이 뜸한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알짜 전시에는 비매품이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꼭 얼굴을 비춘다.
작품과 작가, 메니지먼트 3박자가 잘 맞는 코타오 토모자와. 시장의 불황은 그녀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다.
춮품작 두 점 모두 최고 인기 시리즈는 아니지만, 최고 추정가를 넘어 낙찰.
낙찰 가격 : ¥5,060,000
낙찰 가격 : ¥2,990,000
5. 아키 콘도, Kondo Aki - 여기도 불황은 남 얘기
미술 시장의 불황은 남 이야기인 작가가 한 명 또 있다. 조금 늦게 빛을 보기 시작한 아키 콘도!
30대 후반의 아키 콘도는 대학 졸업 후 이머징 아티스트로서 각광을 받던 작가였다. 하지만 서글픈 사건으로 잠시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는데, 오히려 그 슬픔이 그녀의 작가 인생에는 커다란 터닝 포인트가 된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작품 세계는 아름다움의 절정에 달해있다.
일본 컨템퍼러리 미술계의 거대한 족적을 남기는 작가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낙찰 가격 : ¥1,207,500
지난 2022년 Shugo Arts에서 아키 콘도의 30호 작품을 하나 구매했는데 당시 함께 선택지로 있었던 작품이다.
산타를 소제로 한 다소 엉뚱하지만 앙증맞은 작품이었는데 누가 구매했는지는 모르지만 3년을 딱 채우고 아키 콘도의 주가가 잘 영글었을 때 시장에 내놓았다.
물론 호황기였으면 더 좋은 가격을 형성했겠지만, 중간 추정가의 약 300%를 기록!
https://blog.naver.com/3mastokyo/223145636778
(아키 콘도의 사연)
6. 유이치 히라코 - 조금씩 빠지는 거품?
시장이 워낙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사실 유이치 히라코의 작품은 가격이 꺼지기 시작한 지 다소 시간이 지났다.
2021~2022년 그의 인기가 정점을 찍었던 때에 비하면, 요즘은 세컨더리 마켓에 나오는 족족 별 경합 없이 새 주인을 찾아간다.
전시 횟수나 작품량이 많이 풀린 것 같지는 않은데 아무래도 후속타를 터트릴만한 소재가 부족해서가 아닐까? 비단 이 작가만 고뇌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개인적으로 유이치의 작품은 뭐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볼 때마다 같은 작품들을 반복해서 보는것 같은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이번 옥션에서는 세라믹 두 점, 유화 한 점 출품.
모두 유니크 작품이지만 에스티 메이트 내에서 싱겁게 거래됨.
7. 쇼조 타니구치, Tanighuchi Syozo
개인적인 흥미는 없지만, 요시토모 나라 형님이 몇 번 쇼조 타니구치라는 이름을 언급해 주었다길래 투자 목적으로 구매를 몇 번 생각한 적인 있는 작가로 꾸준히 옥션에 출품되고 있다.
이번 옥션에는 원화 두 점이 나와 싱겁게 거래가 마무리되었고 조형물 두 점은 모두 유찰.
내가 한때 수집을 고려하던 작품도 조형물이었는데 맘에도 안 드는 작품을 투자 목적으로만 덥석 덤벼들지 않았던 게 다행이다.
8. Backside works. - 나름 꾸준히 선방
마니아층이 있다는 것은 작가에게는 참 안심이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기 작가였다가도 금세 한가한 신세가 되는 미술계를 생각하면 백사이드웍스처럼 N, Z세대들 중 마니아층이 형성돼있다는 것은 안정적으로 꾸준히 작가 활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으니 작가로는 든든한 후원 세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요즘 이 작가는 활동을 너무 안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원화 두 점, 판화 석 점 출품되어 나름 나쁘지 않은 가격에 낙찰
9. 이마이 울랄라 - 요즘 가장 행복한 부부 작가
일본 미술계에서 부부가 모두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가 내가 아는 커플만 해도 몇몇이 된다. 그런데 이들 부부처럼 작품 받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 부부는 이들이 유일하다.
아내는 6~7년 전부터 잘나가기 시작했는데 데이비드 주위너에 픽업되며 작년부터 날개를 단 남편 '유 니시무라'는 아내의 인기를 넘어 서려는 분위기다.
이마이 울랄라, 이번에 꽤 좋은 원화가 두 점 출품되었는데 100호 작품은 중간 추정가에,
10호 작품의 최고 추정가 언저리에서 새 주인을 찾았다.
예년만 해도 두세 배가 넘었을 금액인데 새 주인들은 득템을 한 듯.
10. 볼 때마다 놀라운 마키 호소카와
이번 포스팅의 마지막 작가는 '아직도 이 그림들이 옥션에 나와!'하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마키 호소타와!
옥션에 나오는 것이 놀라운 반면, 거래 결과는 아주 적절하게 마무리되었다.
오른쪽 작품은 ¥700,000 - 1,300,000이라는 재미난 추정가로 출품되어 유찰
왼쪽 작품은 최저 추정가 ¥600,000에 못 미치는 ¥575,000에 마감
이상 2025 마지막 SBI 옥션 결과 1편(도쿄 미술 수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