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곳 1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 소고기 청경채 된장국을 끓여놓고 마누라상이 기침하시길 기다렸다. 마누라상이 진지를 마친 후에는 핸드드립 아메리카노를 대령하고 소파에 모셔서 정성스럽게 발 마사지를 해드렸다. 기분이 좋아진 마누라상이 한 말씀하신다. Good!
이렇게 5성급 버틀러 서비스로 마누라상을 모신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어제는 먼가 온전한 날이 아니었다.
느긋한 일요일 오후를 보내고 싶어 하는 마누라상을 꼬셔내어, 아오야마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를 보러 가자는데 성공하였다. 산책하기에 완벽한 하늘, 기분 좋게 집을 나섰으나 기온이 뚝 떨어진 으슬으슬한 저녁 귀갓길에는 서로 별말 없이 조용히 걷기만 했다.
기대감 잔뜩 앉고 간 전시는 겉치레만 요란한 그들만의 잔치 열고 허기와 피로에 지쳐 찾아간 아자부 주반麻布十番의 나름 유명한 중식당은 식사 내내 빨리 나가고 싶은 생각만 드는 그런 곳이었다. 해가 지고 추워지기까지 해서 일요일 오후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마누라상의 일요일을 온전하지 못하게 해 놓은 것이 5성급 호텔 버틀러 서비스로 모신 이유이다.
그래도 수확은 있었다. 발품을 팔아도 아깝지 않을 곳을 하나 알게 된 것!
평소에는 도쿄 여행자들과 도쿄 인들로 붐비는 미나미 아요야마南青山뒷골목에 위치한 니콜라이 버그만 노무, NICOLAI BERGMANN NOMU스타 플로리스트의 카페와 그의 갤러리이다.
웬 카페 앞에 이렇게 예쁘게 정원을 꾸며 놓았나 싶어서 사진을 몇 장 찍다 보니 입구뿐 아니라 실내도 온통 꽃밭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우와~코지 한 라운지 음악이 흐르고 커피 향과 꽃향기가 난무한다. 그 사이사이서 예쁘고 잘생긴 젊은것들이 수다 떨며 좋아라~하고 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예쁘다.
고급 꽃집이야 도쿄에 심심치 않게 있어서 가끔 눈요기는 하곤 하지만, 이곳은 좀 다르다.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비밀의 화원에 예쁜 카페를 들여다 놓은듯한 곳이다. 난 카페족은 아니지만 이곳은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카페인 흡입을 한번 해보아도 될만한 곳처럼 느껴진다.
꽃향기를 잔뜩 맡고 나오며 '꼬마 자동차 붕붕은 엄마를 찾았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카페 맞은편에 심상치 않은 디자인의 아담한 건물이 눈에 들러온다. Gallery라는 간판이 있어 들어가 보았는데 실은 이곳에 들어가 보지 않았으면 이 예쁜 꽃 카페의 정체가 무엇인지, NICOLAI BERGMANN가 누구인지 모르고 돌아갈뻔했다. 이곳은 스타 플로리스트, 니콜라이 버그만의 아트 갤러리로 주로 그가 창작한 작품들을 전시하는 곳이다.
Gallery Nicolai Bergmann
전시명 : Pop Art inBloom
3/17 ~ 5/30 11:00~18:00
https://www.gallerynicolaibergmann.com/gallery.html
Gallery Nicolai Bergmann
www.gallerynicolaibergmann.com
친절한 큐레이터 토모코상이 작품과 작가에 관하여 열심히 설명해 주셨다. 이 그림들은 작가가 찍은 사진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꽃과 식물의 모티브를 그려 넣어 완성한 작품이라고 한다. 로버트 인디애나 LOVE의 오마주인듯한 작품 등 꽃을 그려 넣은 작품들이 향기롭다. 작품 가격은 우와~~그의 명성만큼이나 높다. 작품가가 50~70만 엔! 감상으로 대리만족~
건물 디자인도 눈에 띈다. 전면이 유리로 된 커튼월 구조에 밤에 조명을 켜기 전까지는 안에서만 밖이 보이는 참신한 콘셉트의 건물이다. 위층은 니콜라이 버드만의 작업실이고 가끔 다른 작가의 전시도 열린다고 하니 아오야마에 올 때면 종종 들러바야겠다. 친절한 토모코상 아리가토 고자이 마시따~
반강제 외출에 지친 마누라상, 싱거운 전시와 전혀 가보지 않아도 될 중식당을 경험하게 한 미안한 마음이 이 좋은 곳에서 조금 위로가 되었다. 집구석으로 돌아와 온전하지 못한 일요일의 피로를 레드와인 한 병과 빈센조 16회를 보며 한 번 더 정화시키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빈센조 잘생긴 송중기 덕분에 마누라 상이 조금 회복됐다. 중기야 고맙다!
이상 아오야마에서 가장 향기로운 곳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