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지만, 요즘 켄고 쿠마(Kengo Kuma)라는 건축가의 이름을 자주 듣는다. 도쿄대학교 건축과 교수이며 2020 도쿄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을 비롯하여 수많은 명작을 디자인한 건축계의 거장이다. 지난주 이 거장이 설계한 고급 맨션, 그것도 펜트하우스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다녀왔다.
위치는 하라주쿠 역 인근에 위치한 기타산도 (北参道)라는 지역으로 조용한 주택가이다. 이날 오픈 하우스 행사는 저녁 6시부터 시작되었는데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운 시간이어서 건물의 외곽은 보지 못해 사진을 찾아보니 켄고 쿠마의 건축의 특징이라는 주변에 잘 녹아들어 눈에 띄지 않는 모양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전용 엘리베이터와 연결되는 펜트하우스의 현관은 고급 부티크 호텔의 로비처럼 화려하다.
전용 엘리베이터는 펜트하우스의 현관과 연결되어있는데 현관보다는 로비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넓다.
바닥은 빛나는 천연 대리석이고 조명은 유명한 조각가이자 설치작가인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의 작품으로 장식되어 있다.
6~7미터 높이의 현관 천정은 자연 채광을 위해 일본 전통 주택의 지붕 모양을 한 유리로 제작되어있고 현관의 왼편으로는 역시 대리석으로 장식된 나선형 계단이 2층으로 연결되어 있다.
야외 수영장을 포함하여 3개 층으로 이루어진 펜트하우스의 1층은 총 4개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이 중 거실 개념의 공간이 세 곳이며 나머지 한 곳에 주방을 포함한 다이닝 공간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집 규모에 비해 키친은 그다지 넓지 않은 게 특이했다. 이 정도 규모의 주택이면 왠지 아일랜드 키친이 넓게 구비되어있는 게 연상되는데 벽을 향하고 있는 좁은 주방이 전체 집의 규모에 비해 외소해 보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주택을 구매하는 사람에게는 거장 켄고 쿠마 씨가 직접 오셔서 인테리어 등 세부적인 꾸미기를 무료로 디자인해준다고 한다.
이 펜트하우스는 소더비 리얼티에서 분양을 하는 최고급 맨션으로 일본에서는 CCC 사의 The Club과 공동으로 분양 홍보를 하고 있다. 우리를 초대해 준 M 상이 열심히 집안 곳곳에 전시된 작품을 설명해 주는데 사실 집 구경하느라 그림은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M 상에게 슬쩍 물었다.
그래서 이 집은 얼마나 하나요?
현재 54억 엔에 분양하고 이쓰무니다~
(헉!) 저 오늘 여기서 자고 가도 될까요?
호호호
나선형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너무 넓은 1층보다는 좀 친근하게 와닿는 2층이 있다. 이곳에는 멋진 서재겸 거실이 연결된 공간과 메인 베드룸, 욕실, 드레스룸 등이 호화로운 모습으로 연결되어있다.
이날 스태프분들이 쫓아다니며 맛있는 Ruinart 샴페인을 계속 따라주셔서 억지로 억지로 그러나 쉬지 않고 마셨다.
흠~사진 보니 내 책상 같고 좋네~
도쿄 한복판의 고급 주택가에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한 집이다 보니 눈 호강을 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사실 놀라운 광경은 2층의 넓디넓은 야외 테라스와 3층의 야외 수영장이다.
2층 테라스에서는 신주쿠의 NTT 타워와 고층 빌딩들이 훤히 보이고 3층에는 몸을 물에 담그는 수준이 아닌 실제 수영장과 선베드 데크가 위풍당당하게 놓여있다. 도쿄 한복판에 야외 수영장이 딸린 집이라니?
한 시간 동안 맛난 샴페인 실컷 마시고 안구 정화를 시키는 동안 이날 오픈 하우스에 오가는 사람들을 보니, 기자 몇몇을 포함해 돈 향기 펑~펑 풍기는 중국인들 두서너 팀, 연예인같이 이쁘고 딱 보아도 재벌 사모님들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사람 구경도 재미나게 했다.
그러나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이때부터...
마누라상과 이제 그만 갈까? 하고 말하는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내린다. 다름 아닌 패션 디자이너이자 일본 최고의 컨템퍼러리 아트 컬렉터인 오케타 슌지&아사코(Shunji and Asako Oketa) 부부다.
이분들의 컬렉션이 어느 정도이냐면 2019년에 모리 미술관에서 있었던 6인의 스타 전 당시 모리 여사가 이분들의 작품 대여가 없었으면 전시를 열지 못했을 정도이며, 세상에서 가장 큰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원화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2019년부터 오케타 컬렉션 전시회를 매해 무료로 개최하고 있는데 동시대 일본 미술의 엑기스를 미술관 규모로 관람할 수 있는 어마어마하게 멋진 전시다. 또한 젊은 아티스트들을 열정적으로 후원하는 분들로 수많은 작가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일본 미술계의 큰 손이다.
감사하게도 M 상의 주선으로 오케타 부부에게 인사를 하게 되는 영광을 누렸는데, 한국의 본태 박물관에서 근무를 했었다고 소개를 하고 작년에 관람한 오케타 컬렉션 전시회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씀드리니 "젊은 사람들에게 좋은 작품을 볼 기회를 주기 위해 하는 것이니 내년에도 꼭 관람하러 오게나" 하며 점잖게 말씀하신다. 나도 "좋은 전시를 마련해 주시고 젊은 아티스트들을 후원해 주셔서 아트를 아끼는 사람으로서 감사드립니다."라고 말씀드리니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신다.
기분이 좋으신지 사진도 찍으시고 명함까지 주신다. 항상 수수한 차림의 아트를 사랑하는 노부부는 알콩달콩 부부금실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날도 두 손을 꼭 잡고 다니시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두 분들과 M 상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와 가을 향이 피어나기 시작한 하라주쿠 거리를 마누라상과 걸으며 생각했다. '쿤마 켄고의 540억짜리 초호화 펜트하우스보다 부러운 두 분들 모습처럼 우리 부부도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라고...
마누라상의 손을 꼭 잡는다.
뭐 하나 부러울 것 없는 가을밤이다.
모리 미술관 6인의 스타전 : https://blog.naver.com/3mastokyo/222212889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