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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버팀글 Aug 05. 2020

집을 샀다

내 남은 인생을 위한 결정

  어제 오후였다. 중개사가 보여준 집을 둘러보고는 그 집을 사기로 했다. 정확히는 아직 계약 전 선금을 건 정도. 개인적으로 이번 '구매'는 아마도 내 남은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결정이 될 걸로 보인다. 물론 그게 좋은 영향일지 아닐지는 살아봐야 알겠고. 하지만 내 나이 마흔, 큰 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금, 이 집이란 거대한 지상과제를 적어도 이제는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단 확신이 들었기에, 어제 나는 결국 집을 사는 첫걸음을 떼고야 만 것이다.


 결혼생활 10년 동안 전월세로 살며 내 집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가진 돈도 없고, 그리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돈이 모이지도 않으니 집을 산다는 건 내겐 그저 무리한 일이라 여겨왔다. 무엇보다 세상 물정에 밝지가 못하다. 지인들의 대화에서 흘러나오는 어디 집값이 오르고 내리고, 어디에 새 아파트가 분양을 하니 빚을 내어서라도 뛰어들어야 하고, 은행에 대출을 어떻게 받아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 체질도 큰 몫을 했다. 그러다 보니 내 스스로 주변에다 대고 일종의 보호막을 치기 시작했다.


 "나도 부동산 그런 거 좀 아는데, 그렇게 일 하지 않고 버는 돈에 혈안이 되어서 아등바등 거리는 거 너무 싫어. 집값이 비정상적으로 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이러면 누가 땀 흘려 돈 벌려고 하겠어. 정말 옳지 않아."


 "우리 사회 제일 큰 문제가 부의 양극화야! 그걸 가속화시키는 일등공신이 바로 부동산이고! 이대로 가다가 거품이 꺼지면 부자 되려고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 산 서민들은 단박에 나락으로 떨어질 거야. 이런 더럽고 위험천만한 판에 왜 뛰어들겠다는 건지, 나로선 이해가 안 돼."


 세상 돌아가는 이해도가 떨어지는 걸 감추려고, 능력이 없어 돈도 못 벌고 부자가 못 되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같잖은 논리를 고귀한 철학이라도 되는 냥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녔더랬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좋은 차, 좋은 옷, 좋은 집 살 돈이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기나 바라는 게 본심이면서. 돈 좀 없으면 어때 쿨한 척 다 해도 막상 월급이 늦거나 모자라게 되면 어쩔 줄을 몰라하는 주제에. 그렇게

결혼해서 애 둘을 낳고 10년을 살면서 경제적으로 뭐 하나 이루어낸 게 없다는 것을, 내 어리석고 가식적인 사고와 삶의 태도에 비춰보며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집을 사기로 했다. 영혼까지 끌어모을 결심하고. 일단 집을 정해야 했다. 우리 가족에게 주택보단 여러모로 아직 아파트가 답이다. 최종 후보로 발탁된 지은 지 10년이 된 어느 지방 그중에서도 구석 단위에 위치한 우리 동네 그냥저냥 한 아파트. 아마도 큰 이익 보기는 어려울 게다. 10년간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졌단 게 그나마 내겐 위안이 되려나? 아내 직장과 아이들 학교와 어린이집이 가깝다는 거, 그리고 큰 아이의 절친들이 산다는 정도가 이 아파트를 결정한 이유다. 일단 여기로 들어간다 생각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중요한 건 결국 이득은 못 볼 지언 정 당장 손해 봐서는 안된다는 것. 인터넷을 뒤져 대출과 금리에 대한 정보와 이해를 높이고, 풀리지 않는 의문과 구체적인 방안들은 은행을 직접 찾아가 물었다. 부동산 발품도 팔고 수시로 인터넷 부동산 카페에서 매물을 살폈다. 그러다 어제 소개를 받고 본 두 집 중 한 집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부모님께 손을 벌려 우선 계약하는데 필요한 돈을 마련했고, 따로 신용대출을 진행했다. 주말에 작성할 계약서까지 완료되면 그걸 들고 담보대출까지 받아야 한다. 매달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되는 상황을 이제 목전에 두게 됐다.


 크으, 몇 번을 쳐다봐도 만만치 않은 액수. 그냥 전세살이 해야 하나. 하지만 아내와 머리를 맞대 수입과 지출에 대한 계획을 새로 세워보며 '할 수 있겠다'라고 결정을 내리자, 다시 되돌아가고픈 마음이 사라졌다. 그래, 해 보자. 빚은 분명 열심히 살고자 함에 동기가 될 것이고, 빠른 부채 상환을 위해서라도 세상 물정에 관심을 가지려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더 많이 벌려고 들 것이고, 더 많이 모으려 할 것이니, 분명 더 잘 살게 될 확률이 높아지리라.


 그래, 더 여유롭고 풍요롭게 살고 싶다.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지. 몰라서, 못해서 안 그런 척, 관심 없는 척하다가는 한 평생 아무것도 못 이루고 갈지 모르니. 그 첫 단계이자 방향이 될 '내 집'을 산 것이다. 잘했다고, 잘 샀다고, 그리고 지금보다 앞으로 더 여러모로 잘 살 거라고 한 번 믿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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