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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버팀글 Aug 11. 2020

좀비 드라마한테 꽉 깨물린 듯

더 워킹데드

 좀비물을 좋아한다. 사실 이런 취향을 밝히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약간 있긴 하다. 일단 최근 즐겼던 콘텐츠들을 돌아보면, 넷플릭스로 '킹덤'을 재밌게 봤고 얼마 전에 영화 '살아있다'도 그럭저럭 잘 봤다. 무엇보다 PS4의 '라스트 오브 어스 part 2'를 오금을 저려가며 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좀비를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썩 내키지 않는 건, 그것들의 혐오스러운 외향을 포함, 하위 장르물이라는 세간의 폄하나 편견에 대한 눈치보기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엔 이미 꽤나 대중적인 장르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이런 걸 몰래몰래 봤던 경향 탓인 것 같다. 십 대 시절, 그러니까 좀비물이나 슬래셔 무비 같은 B급 공포, 고어물들이 대부분 '청소년 관람불가'인지라, 당시 이것들을 합법적으로는 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여러 노력을 통해 꽤 즐겨봤더랬다. 안 그래도 떳떳이 '나 이런 거 좋아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변에 나 말고는 아무도 이런 비주류 문화에 관심 갖는 이가 없었던 것도 나의 취향을 숨긴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어설픈 특수분장 범벅에, 조금은 어설프지만 나름 신박한, 복잡한 서사없이 말 그대로 원초적 재미에만 집중한 장르물을 같이 보고 나눌 사람이 없었던 게, 이제와 취향을 밝힘에 있어 왠지 모를 수줍음을 덧입힌 게 아닐지......


 아무튼 엊그제부터 보기 시작한 '워킹데드' 이야기를 하려고 한참 주절댔다. 좀비물 좋아한다고 그렇게 늘어놓고는 아직 워킹데드도 안 봤었다는 게 좀 창피할 정도. 왜 그랬을까? 왜 이 재밌는 걸 여태까지 외면하고 있었을까? 새 시즌이 나올 때마다 난리가 나고 했지만 그리 당기지 않았더랬다. 아까 이야기 한 십 대 시절과 지금의 나 사이 영화나 드라마를 선택하는 데 있어 결정적 차이가 생겼으니, 그것은 바로 '겁'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제 무서운 건 질색팔색이다. 공포물뿐만 아니라 스릴러, 조금 과격한 액션 영화까지도 혼자 보기가 좀 그럴 정도. 아휴, 몰라. 이유는 모르겠다. 너무 싫다 무서운 거. 나이 먹고 더 그러는 게 좀 창피하기도 하고.


 그래서 최근에 이런 류의 작품들은 죄다 아내와 함께 하고 있다. 최근에 아내가 '좀비물'에 흥미가 있단 걸 알게 됐고, 그녀의 여러 작품들을 보고자 하는 욕구에 내가 편승한 것에 가까운 실정. 다만 영상 매체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내가 약간 더 있는지라 아내를 이끌고 같이 넷플릭스로 뛰어들었고, 그 속에서 서로의 공통 취향에 부합하는 것들을 골라보며 결국 이 대단한 작품에 당도한 것이다.


 일단 시작부터 좋았는데, 오프닝 크레딧 영상에 주요 출연진 이름이 슥슥 지나간 뒤, 연출에 '프랭크 다라본트'가 딱. 세상에, 다라본트 옹이 만들었구나! 이러면 이건 믿고 볼 수 있지. 그 유명한 '쇼생크 탈출'과 '그린마일'을 감독했고, 빼놓을 수 없는 게 '미스트'.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던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괴생물체들의 등장으로 마트 안에 갇히게 되고, 도대체 뭐가 뭔지 몰라 우왕좌왕하며 이 사태를 극복하고자 하는 이들의 혼돈과 사투를 다룬 작품. 적어도 내가 본 워킹데드의 시즌 1,2까지는 이 영화와 세계관 및 인간의 갈등이나 심리 묘사 등이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다라폰드가 연출자로 캐스팅되는데도 한몫했으리라.


영화 '미스트'


 워킹데드의 시작. 경찰 임무수행 중 총을 맞고 혼수상태로 있다 병원에서 깨어난 주인공 릭에게 이미 세상은 멸망에 가깝다. 거리에 시체가 즐비하고 심지어 이것들은 움직이며 살아남은 인간을 공격한다. 갖은 고생 끝에 한 무리를 이루고 있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그의 파트너 셰인을 만나지만 이제 모든 게 정상적인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 속에서 서로의 감추고자 하는 비밀과, 드러내려 하는 욕심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뒤섞이면서 갖은 위기와 갈등이 발생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세상이 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초래된 건지, 언제쯤 이 절망의 카오스가 끝이 나는 건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를 믿고 의지했던 이들 사이에 의심과 불신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순간순간 찾아오는 생존의 위협 앞에 드러나는 때로는 추악하고 때로는 연민 가득한 인간의 내면을 진행되는 사건 속에 잘 녹여내고 있다.


 일단 다라본트 인장을 확인함과 동시에 예상했지만, 이 드라마에서 일단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괜한 기교 따위를 부리지 않는다는 것. 2010년 작임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더 옛날에 찍은 듯 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촬영이나 편집이 굉장히 정공법이다. 액션의 화려함이나 긴박함, 무서운 좀비의 공포를 살리는 식의 연출이 아닌, 갈등하는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천천히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보여주려는 듯 옆으로, 혹은 위로 빠져나가는 촬영이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다. 분명 구식인데 그게 이 작품의 톤에 딱 맞는 느낌이다.


 그에 받쳐주어야 할 것이 배우들의 연기인데, 이것 또한 엄지 척. 사실 좀비로 인한 아포칼립스 자체가 얼마나 황당한 배경이고 지겨운 이야기인가? 하지만 보는 이들이 무리 없이 몰입할 수 있게 하는데 배우들의 호연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 낸다. 등장인물이 꽤 되는 편인데도 다들 연기가 너무 좋다. 배우들이 연기를 못하고 있으면 이런 작품들은 긴장감이 뚝뚝 떨어지는데, 그 걱정은 붙들어 매고 봐도 될 정도. 이래서 마블도 만화 같은 영화 찍는데 그 연기 잘한다는 명배우들을 갖다쓰는게지.



 어릴 때는 단순한 장르적 쾌감으로 좀비물을 대했다면, 지금의 나는 좀 다른 관점으로 뭉클해하며 볼 만한 여지가 생겼다는 것도 포인트다. 가족을 지켜야 하는 아버지의 상황이 바로 그것. 세상이 다 망하고 주변에 인간이고 좀비고 간에 누구든지 위협이 된다면, 당연히 가장인 내가 나의 가족을 살피고 살려야 하는 것이니. 좀비물은 아니지만 '코맥 매카시'의 소설  '더 로드'는 대재앙 이후 어린 아들을 지키고자 하는 주인공의 부정이 마치 내 이야기인 듯 절절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고, 좀비가 창궐해 딸을 잃은 사내가 시간이 흘러 한 소녀를 보호하며 겪는 여정을 스토리로 한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는 몇 번을 눈물을 훔치며 플레이했는지 모른다. 워킹데드에서는 흔들리고 불안한 눈빛이지만 뛰어난 리더십과 포용력으로 가족은 물론 그의 무리를 지켜내는 주인공 릭의 모습에서 상당한 대리만족을 경험하는 중. 그리고 아이들과 관련해서 가슴이 먹먹했던 몇몇 신들까지,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난 후 이런 작품들에 더 빠져드는 경향이 확실히 생겼다.




아직 시즌2도 다 못 본 상황이라 앞으로의 작품 퀄리티가 어찌 될지 모르겠으나 일단은 대만족. 오랜만에 넷플릭스에서 즐거움을 찾게 생겼다. 최근에 몇 개 본 게 그다지 별 볼 일 없었던지라, 주말에 밤을 새 가며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부디 끝까지 이런 기대감을 줬으면 좋겠는데...... 어쩌겠나, 나는 이미 물렸다. 그저 넋 놓고 딸려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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