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방법을 일깨워준 투병

나를 나답게 해주는 이것

by 치유빛 사빈 작가

투병으로 인해 스테로이드 약은 필수였고 면역억제제 역시 필수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약임에도 불구하고 내 몸에는 면역억제제가 독이 되었다. 백혈구 수치가 하염없이 떨어졌고 복용한 지 일주일 만에 담당 교수님은 그만 복용하자고 말을 듣고 말았다.


"교수님 이 약이 필수라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그럼 어떤 약을 먹어야 하는 건가요? 궤양성 대장염 자체가 희귀 질환이라 발병원인을 알 수 없고 치료제 역시 많지 않다고 들었어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해요? 다른 환자들은 면역억제제 부작용은 없는 건가요? 저만 부작용으로 중단하나요?"


불안한 마음에 교수님이 말하기 전에 질문이 쏟아졌다. 아마 이런 환자도 드물겠지! 8년 전이면 궤양성 대장염이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았던 병이었기에 교수님은 교과서에 적힌 말만 되풀이하셨다.


"일단 스트레스는 금물입니다. 최소한 스트레스를 받으시되 다 풀어내셔야 해요. 그리고 면역억제제 약은 아무래도 김효정 씨에게 무리인 약은 분명합니다. 백혈구 수치가 일주일 만에 90프로 이상 떨어져서 온 환자도 드물어요. 일단 중단하고요. 펜타샤와 스테로이드로 치료를 해보십니다. 만약이라도 약물로 치료가 되지 않는다면 생물 화학적인 치료가 이 병에서는 마지막 치료가 될 거예요."


교수님의 말에 하늘이무너졌다.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가 약물과 생물 화학적인 요법이라니.. 힘든 암도 치료제가 많다고 들었지만 하물면 나는 암환자도 아닌 그저 대장에 궤양이 많아 죽을 만큼 아픈 나에게 절망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 교수님이 한없이 미워졌지만 이내 희망 한 가닥을 잡고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럼 수술은요? 수술하면 완치되는 거 아니에요. 저 이렇게 못 살 거 같아요.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복통과 설사로 외출을 할 수가 없어요. 병원 오는 것도 두렵고요. 저 수술해서 완치하고 싶어요. 그럴 수만 있다면요"


교수님은 한참을 생각했고 시간은 흘러갔다.


"효정 씨 수술은 아주 위험해요! 대장 3분 2 정도가 염증으로 뒤덮인 상황에서 대장을 다 절제하는 일은 더 큰 위험을 불러오는 일입니다. 일단 우리 차분히 약부터 복용해봐요! 효정 씨 면역억제제 복용 후 부작용 증상은 없었나요"


사실 면역억제제를 복용한 후 메스꺼움과 함께 식욕감퇴로 무기력한 시간으로 아이들을 케어할 수가 없었다.

아픈 내가 싫어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기 일쑤였고 약 부작용으로 인한 소화불량은 극도로 예민해져만 갔다.


"메스꺼움과 어지럼증 그리고 힘이 없었어요."


"그럼 일단 끊어봅시다. 백혈구 수치가 원상 복귀되어야 하니 일주일 후 진료 봐요! 스트레스는 금물입니다."


8년 전 발병 당시 교수님과의 대화에서 하나의 깨달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존재해야 한다는 거,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를 걱정해주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힘내 보자고..

어릴 때 빨간 머리 앤이나, 소공녀 세라 등 만화를 보며 꿈을 키웠다. 그리고 용기를 얻었다. 힘들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주인공을 보며 자랐다. 나 역시 어린 시절 평범한 가정이 아닌 지겹도록 불안하고 두려움 속에서 자랐던 터라 힘든 주인공을 바라보며 그들이 다시 일어나는 모습에 동경하고 배웠다. 유년시절 내가 버티고 견디었던 만화 주인공의 삶처럼 더 이상 주저앉기 싫어 버텨보자며 진료가 끝난 후 아프지만 얼굴에는 웃음과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은 내 새끼뿐이었다. 아이들은 나를 믿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투병을 하면서 온전히 느꼈다. 투병 2년 후 점점 회복되는 내 몸은 가만히 있질 못했다.


'나'라는 존재를 들어내고 싶었다. 꽁꽁 숨겨둔 나를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 대단하지 않냐'며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다 나에게 한가닥의 희망을 보았다.


그건 바로 독서였다. 부정적인 시야 부정적인 말들로 행동하는 부모님, 남편, 그리고 지인들에서 벗어나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싶었다. 44년 동안 맞딸, 장녀, 장남, 남편 노릇을 그만두고 싶었다. 친정엄마에게서 벗어나야만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남편 곁이 아닌 오로지 나의 힘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었다. 기울어지는 집안에 맞추어 즐기지 못했던 일이 아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일을 찾아 헤매었다.


'너 자신을 믿어라. 나는 나를 믿는다. 될 일은 된다.'

'항상 보호받으시길, 항상 인정받으시길, 항상 사랑받으시길'


문구를 볼 때마다 가슴에 무언가 벅차오르고 있다.



나를 벌레보다 못한 사람 취급하는 남편곁에서 벗어나 친정에서 나의 길을 찾았다. 1년 7개월 동안 독서에만 집중했고 '나' '나다움' '나답게'를 찾아야겠다는 간절함과 절실함이 들었다. 바로 실행에 옮겼다. 읽었던 책들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블로그에 포스팅하기 시작했다. 마흔 언저리에 서평이라는 단어가 낯설었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은 내가 구입해서 읽어야 하는 거라고 읽으면 내 거로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2년 전 독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알려준 많은 서적들로 인해 못쓰는 글이지만 읽고 발췌를 하며 거기에 내가 느낀 점과 생각한 것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나를 찾아가는 첫 번째 여행이었다.


마흔한 살에 늦둥이를 임신하기 전 나에게는 미래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다. 불편한 복통과 잦은 설사, 혈변으로 인해 최소한의 엄마 노릇을 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죽었으면 어떨까 생각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이내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내가 책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유년시절에는 라디오를 들으며 좋은 말들을 메모하고 즐겼다. 사회초년생일 때는 '좋은 생각' 책을 정기적으로 봤으니 아무래도 난 책을 좋아했던 거 같다. 가정형편이 나았다면 부모님들이 능력이 있었다면 사회생활을 문화인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를 바라보면 알 거 같았다. 생명은 하나! 내가 죽고 싶다고 해서 쉽게 죽을 수 없는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이미 2002년 봄에 찾아왔을 때 죽어야 했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이승에서 못다 한 일 하기를 바라 신이 선물 주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깨달은 후 버티고 이겨낸 결과 건강하지 못한 나의 몸에 새 생명이 싹을 틔우고 있었다.




늦둥이를 위해 다른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했고 아픈 몸으로 육아를 병행하며 할 수 있는 일은 독서뿐이었다. 그리고 글쓰기였다. 내 안에 숨어있는 부정을 다 털어낼 수 있는 유일한 일. 나에게 힘내라고 그래도 당신이 있어 자랑스럽다고 당신을 사랑한다고 이제는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고 말해주는 책이 있어 용기를 내었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남이 아닌 부모가 아닌 형제가 아닌 오직 나뿐임을 알게 되었다. 나를 찾아가는 여행은? 바로 책이 되었다. 책 속에서 삶을 되돌아보니 힘들고 지친 삶이 오히려 나에게 희망의 빛을 전해주는 자양분이 되었다. 아픈 모습을 본 늦둥이는 '배 아파'라는 말을 듣게 되는 날에는 병원 가자고 한다. 생후 43개월 아이가 말이다. 부모가 아프면 안 된다. 그것도 엄마가 아프면 더더욱 더 안 되는 일이다. 아픈 모습은 진정한 내 모습이 아녔기에 아픔에도 불구하고 도전한다. 그리고 나를 들어내기 위해 글을 쓴다. 쓰는 삶은 날개를 달아주는 것임을. 날개를 달아준 건 아이 었다. '엄마 일어나! 엄마 할 수 있어!'라는 애절한 눈빛에서 나는 나로 살아가기 다짐한다.


아이의 눈을 보면 설렌다. 엄마를 응원하는 눈빛이 가득하다. '아프면 안 돼' 눈빛이 아닌 희망이 이글거리는 아이 눈빛은 나를 일으켜 세운다. 아픔의 상처가 오히려 힘이 되어줌을... 비로소 나를 찾아가는 여행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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