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 철학 있으세요?

찐 팬 만들기 철학

by 치유빛 사빈 작가

2019년 6월.

춥지도 덥지도 않은 초여름.

갈망하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손품을 팔아 온라인 세계에 입문했다. 가만히 있을수가 없었다.

엉덩이 덜썩거렸으니깐.

결국 온라인으로 여기 기웃 저기 기웃거렸다.

(그 당시 꼬마대통령이 30개월이었다. 그래서 육아를 하며 파이프라인을 찾아헤맸다)

드디어 내 눈에 포착한 프로젝트.


그녀는 조금은 수줍고 조금은 윤활유 같았다.

그래서 좋았을까? 그녀의 글을 읽고 그녀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올해 초)

그녀는 예전의 그녀가 아니였다.

수줍고 때로는 멤버들을 끌어주는 모습에 다정다감함을 느꼈다면 최근에는 반대의 느낌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변화는 걸 잘 알기에 그녀가 변화는 건 당연하다.

자신의 위치에서 성장하고 있기에 그럴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초창기 멤버를 가차없이 내치는 모습에 섬뜩함이 느껴졌다.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다면 예전에 쌓아올린 애정과 정은 상관없어 보였고 거침없이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적지 않은 황당함이 몰려왔다.

나 역시 성장하고 있었기에 누구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건 아닌지? 나와 맞지 않아 프로젝트를 그만 둔 그들에게 상처를 줬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녀가 한 행동에 나 자신이 뜬끔했다. (나도 그녀에게 상처를 받았기에, 그녀도 나에게 상처 받았는지 모르지만 나는 나에게 오롯히 집중하고 싶었다.)누구를 위해 애쓰지 않고 내가 좋아하고 나를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것은 나뿐만이 아니겠지!



나와 맞지 않아 과감히 쳐내는 것도 방법이며, 맞지 않아도 함께 가기를 원한다면 밀어주고 끌어주는 방법도 있다. 나는 이 두 방법 중 때와 장소에 따라 적절하게 융합한다.

자신이 정말 힘들어 더 이상 함께 못하겠다는 말을 할 때는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한다.

한 가지는 '나 좀 잡아줘!' 또 다른 한 가지는 '정말 하기 싫어!' 마음이 내포되어 있다.

나는 이 마음을 깊게 알 수는 없지만 함께 지내다보면 성향을 파악하게 된다.

의지와 책임감이 없다면 그들이 원하는 길로 가게 놓아준다.

하지만 미련이 남아 있는 뉘앙스라면 한번 더 끌어주고 밀어준다. (기회를 주고 있다)

그리하여 나와 함께 글쓰기 방을 하는 멤버들은 나와 함께 가기를 원하기에 (간절함과 절실함이 보였다.) 1대 1 코칭과 줌 강의까지 하면서 서로 배려해주고 서로 안아주는 멤버가 되었다.






못마땅한 감정이 들었다면 서로가 불쾌해하면서 함께 갈 필요는 없다.

그러나 단 하나, 한 번쯤은 의견을 묻고 서로 생각을 듣는 과정도 필요한 온라인 세계다.

자칫 잘못하면 얼굴 붉히는 일이 생기니깐.

그래서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러운 게 글이다.


오늘 내가 들었던 감정이 뭘까?

너의 초심은 뭘까? (나에게 물어본다)


내가 만약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면 초심을 잃지 않고 다른 이들을 챙기며 아끼고 내편으로 만들까?

장담하면 안되지만 나는 그렇다에 한표를 던진다. 나의 찐 팬이 남아있다면 그들이 힘들고 지쳐 나락으로 떨어진다면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 그대로 보내지는 않는다. 그들과 끝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절충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찐 팬은 영원한 내 편이니깐.


그렇다면 내가 느꼈던 그녀는 찐 팬이 많아 나 하나쯤이라는 감정을 떨칠수가 없었다.

자신과 맞지 않는 그들과는 이별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나는 오늘 그 그룹에서 사라졌다.

내가 원하고 내가 편안하기 위해서다. 혼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게 성장하고 있기에 애쓰지 않고 나를 위해 선택했다. 나는 그녀의 찐 팬이 아니라는 걸 오늘 알게 되었다.



그녀가 의견을 물어봤기에 솔직한 생각을 말했을 뿐, 그녀는 자신이 그려놓은 그림에 오차가 생기면 과감하게 쳐내는 모습이 무서웠다.



나의 초심 철학은 한번 인연은 영원한 인연이다.

그들이 나를 버린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먼저 그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초심이 존재한다.

그래서 그럴까? 먼저 다가와준 그들에게는 초심 철학처럼 소중하게 여긴다.


초심 철학처럼 묵묵히 나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그들에게 언젠가는 보답하리라.

초심을 잃지 않게 그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명심한다. 사람은 성장하면 할수록 초심을 잊어버리고 나 혼자 잘된냥 자만하기 시작한다. 다른 이들을 비판하기보단 나부터 자만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먼저 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초심을 들여다봐야 할 시점이다.


오늘 있었던 일로 지나온 길을 바라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 누구를 위해 애쓰지 않고 나를 위해 애쓴 나에게 칭찬하는 밤이다.

'수고했어! 그리고 잘했어! 더 나은 삶을 위해 네가 한 행동과 생각은 멋졌어! 이제는 나를 위해 애쓰기, 명심하자!'


타인의 시선과 말로 상처 받았던 지난 과거들을 회상하면 마음이 아프다.

스스로 지옥을 만들고 그곳에 갇혀 상처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

존귀한 나이기에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상처를 받더라도 초심 철학을 생각하면 금세 웃고 있다. 그녀도 마음이 편치 않았으리라..

초심 철학은 다른 사람들에게 애쓰지 않고 나에게 애쓰기. 나에게 다가온 인연은 영원한 인연이라는 철학으로 나의 초심을 되새김질한다. 누구나 처음 초심은 있다. 그 초심을 잃지 말고 함께 동행할 그들과 끊임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자! 나의 철학과 비슷하다면 서로가 찐 팬이 되지 않을까?


귀뚤귀뚤 귀뚜라미 노래를 들으며 평온해진다. 귀뚜라미의 초심은 뭘까? 귀뚜라미 초심은 가을을 알리는 울음이 초심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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