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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Aug 31. 2021

외할머니와 미숫가루 사이

할머니는 미샬 언니만 사랑해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더듬어 보면 신기하리만큼 웃기고 즐거운 일이 많다. 딸을 많이 낳은 할머니로선 딸 손녀를 좋아라 하지 않았다.


그나마 미국에 사는 손녀를 좋아했다. 몇 년에 한 번 한국에 들어오는 언니를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했다. 미국 언니가 올 때마다 할머니는 구수한 미숫가루를 방앗간에 가서 빻아왔다.


외할머니 집에 놀러 가면 할머니가 미숫가루를 준다. 그때 이런 생각을 한다. 미국에서 이모와 언니가 오나보다라고 알 수 있을 만큼 차별이 심한 할머니였다.


남아선호 사상이 뼛속까지 깊은 옛 어르신.


엄마의 형제자매는 6남매다. 엄마만 딸딸을 낳았다. 다른 형제는 아들을 낳았으니깐. 큰 이모 딸 아들, 미국 이모 딸, 큰삼촌 딸 아들, 작은 삼촌 딸 아들, 막내 삼촌 딸 아들이다. 그러나 막내딸이자 유일하게 아낀 딸은 딸딸 엄마가 되었다.


할머니는 막내딸을 가여워했다. 사랑해서 결혼한 결혼생활이 아녔기에 막내딸이 낳은 손녀를 달갑게 반기지 않았다. 


불만이라면 차별 대우가 가장 마음 깊게 박혀 서러웠다. 


미국에서 온 언니는 할머니가 유일하게 좋아하고 아꼈던 손녀였다. 언니와 이모가 미국에서 오는 날은 외갓집 파티가 열리는 날이다. 한여름에 오는 미국 이모, 할머니는 유독 바빴다.


이모와 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기 때문이다. 우선 에어컨이 없던 36년 전은 얼음 동동 띄워 걸쭉한 미숫가루 한 사발이면 더웠던 무더위도 도망갔다. 그 시절 추억은 마음 깊은 곳에 서려있다.


그래서 여름이라는 계절이 올 때마다 미국에 계시는 언니와 이모가 생각나고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미숫가루에 보리차를 타서 달달한 설탕 한 스푼씩 넣어 휘휘 저어서 얼음 동동 띄워졌던 그 시절이 그립다. 차별은 심하게 하셨지만 애정이 없었다면 미숫가루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냉동실에 보관 중인 미숫가루는 그 시절 맛이 아니라서 아쉽지만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증거는 맞다. 그러니 이렇게 글을 쓰면서 회상하는지도 모르겠고...


이제 언니는 쉰을 바라고 보고 있을 것이고 이모는 칠순을 바라보고 있다. 죽을 때는 고국인 한국에서 죽고 싶다고 하시더니 한국 들어오기가 싶지 않은 모양이다. 


몇 년 전 이모와 통화를 하는데 아직까지 목소리는 힘이 있었다. LA에 아닌 미국 시골에서 지내는 이모는 언젠가는 한국 오겠다는 말이 마지막이었다.


흑인을 만나 미국에서 사는 이모를 언젠가는 만나겠지. 

내가 미국을 찾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엄마도 이모가 보고 싶을 텐데.. 엄마 모시고 이모 만나러 미국 가자고 그 꿈을 조금씩 실행하기로 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추억은 다시 현실을 창조한다.


욕쟁이 이모, 나를 보면 욕하겠지! 살 많이 쪘다고.. 그 욕이 그립다. 차별하던 외할머니도 그립다. 이제는 꿈에조차 보이지 않은 할머니. 그곳에서 할아버지와 싸우지 마시고 할아버지보다 더 근사한 할아버지 만나 행복하세요.


언젠가는 엄마도 저도 그곳으로 가겠죠. 그때는 차별하지 말고 반갑게 맞이해주세요.


만나는 그날까지 건강하세요.

이모도 언니도 할머니도 모두 안녕..


어느 한 여름 추억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미숫가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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