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셋 엄마는 죄인인가요?

함께 있으니 화가 계속 난다.

by 치유빛 사빈 작가

참 우울한 하루였다.

아점을 잘 먹고 커피도 마시고 다이소에서 쇼핑도 잘하고 돌아온 나는 괜한 심술이 올라온다.

엄마는 막둥이 동생이 아들을 낳았기에 예산으로 갈 예정이었다.

나는 딸 셋 명 출산할 때마다 아들 찾더니 늦둥이마저 딸이었을 때 아이를 바라보며 "고추 달고 나오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아들 손주는 못 보겠지!" 신세한탄 아닌 한탄을 넋두리로 했다.

딸 세명을 출산한 내 입장에서는 거부감이 들었다.

"딸들에게 바라지 말고 엄마 아들에게 기대해" 한마디 남긴 후 몇 년 후 남동생이 사고를 쳤고 사고 친 그 아이가 아들이었다. 내가 섭섭해할까 봐 티를 내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 말에 나는 동의할 수가 없다.

결국 작은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엄마, 아들 손주 보니 들떠있나 봐! 그렇게 가고 싶어!"

"너 아이들 낳을 때마다 내가 다 해줬잖아! 출산했는데 한 번은 봐야 할 거 아니야!"

"엄마 늦둥이는 100일 때 왔어! 큰아이들 얘기하지 마! 그때는 엄마가 해주고 싶어 해 줬지만 둘째 임신 때 입덧이 심해 힘들어할 때도 엄마는 부산 가려고 했잖아! 큰 숙모가 보고서야 며칠 해주고 오라고 해 잠시 있다가 갔잖아! 엄마 역시 딸 둘 출산했으면서 딸 심정을 이해 못 해! 늦둥이 임신할 때도 축하는커녕 임신했냐고 되 물었잖아! 딸 낳은 건 죄인이 아니잖아! 아들이 아들을 낳았으니 기분이 붕붕 떠 있잖아! 못 가봐서 안달 난 사람처럼!"


엄마는 내가 하는 소리에 가만있지 않았다.

어떨 때는 자신이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뭔가 억울한 부분에서는 몰아치듯 말을 한다.

함께 못 살겠다는 소리까지 하고는 나가버린다.

자식들이 엄마 곁에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각자의 집으로 간다.

나 역시 엄마가 좋지만 오랫동안 곁에 있는 건 힘들었다. 예전 같음 말다툼을 하고 나면 짐을 싸고 집으로 갔을 텐데 기분 나쁜 소리를 들어도 이 집에 버티고 있다.

그만큼 집으로 가기가 싫었던 내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엄마는 혼자 생활한 지 20년이 되어간다. 그러니 한집에 다른 누군가가 있음 숨통이 막히는 느낌을 받곤 했나보다. 새벽에 가슴을 치는 소리를 들렸지만 그 병이 나로 인해 다시 생긴 거라고 한다. 억울했다.

딸이 힘들어 잠시 친정에 있는 것조차 내 탓을 하는 엄마를 보며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천안으로 간다는 건 아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해결하려 했던 모든 일들이 점점 당겨지고 있다.


엄마도 여자잖아! 엄마도 힘든 세월을 겪었잖아! 어떻게 가라는 말을 쉽게 해! 엄마가 딸을 이해해줘야지! 딸이 엄마 마음을 이해해줘야 하는 상황은 그만하자! 40년 동안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살아줬잖아!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는 고분고분한 맏딸로 살아줬음 이제는 딸을 바라봐줘야지! 맨날 자신만 억울하고 자신만 아프고 자신만 힘들다고 말을 해! 엄마가 가라고 하면 갈게! 그러나 집으로는 가지 않아! 무슨 수를 쓰더라도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할 테니 내 탓을 남 탓하지 말자. 나는 그저 섭섭했던 상황을 말했을 뿐, 오래전 일까지 들춰내면서 악담을 퍼부어! 딸에게 했던 말들 며느리에게 듣지 말기를 바라. 내가 한 말은 그대로 나에게 돌아온다는 걸 엄마는 모르는구나! 나 이번일 해결되면 엄마와 떨어져 당분간 보고 싶지 않아! 엄마도 마찮가지겠지! 15개월 동안 사춘기 때도 하지 않았던 싸움 피 터지게 하네! 사춘기를 조용히 보내라고 한 엄마 말에 조용히 보낸 탓일까? 이제야 여동생도 나도 곯고 곯은 상처가 터져 나오는지 알 수는 없지만 40년 동안 엄마가 원하는 딸로 곁에 있었으면 이제는 내 감정에 충실하고 내가 아픈 상처를 보듬어주며 나만 바라볼 거야! 엄마가 우선순위가 아니야! 엄마도 엄마가 우선순위인 듯 나 역시 엄마보다 내가 우선순위로 살아갈래! 이런 모습이 싫어 오래전 병이 도진다고 말하는 거겠지! 참는 김에 조금만 더 참아줘! 곧 해결할 테니. 내일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아들과 며느리 손자 잘 만나고!


속내를 말하지 못했던 말들을 적어본다.

딸이 딸을 낳는 거 죽을죄 아니다. 엄마 역시 딸 둘 낳고 힘들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아들 아들 하더니 결국 늦둥이로 아들 낳았다는 걸 과시하지 말았으며 좋겠다. 여동생이 곁에 있었다면 아마 나보다 더 섭섭해 섭섭한 말들을 토해냈을 텐데. 여동생이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인생이 중요하고 자식들 인생을 쳐다보지 않는 엄마를 미워했고 서운해했던 딸들 마음을 모르는 채 한다. 그저 자신의 자랑만 늘어놓는 60 중반의 평범한 노인이다.

이제는 엄마와 모든 걸 상의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내 인생 내가 책임져야 한다.


유년시절 힘든 일을 겪게 했을 때도 '미안하다' 한마디를 듣지 못하고 자랐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자식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할까?

엄마는 남매들에게 우리 잘못만 말했다. 그러고는 미안하다.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억장을 두들긴다.


남을 바꿀 수는 없다. 더군다나 나이가 든 엄마는 바꿀 수 없다.

자신이 힘들게 살아왔던 세월을 자식들에게 인정받기만 하려 한다. 그렇기에 자식들 옳은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만 자식 눈치를 본다며 하소연한다. 그러나 자신만 눈치 보는 것이 아님을 오늘 분명히 이야기했다.

자신의 집에서 나가라는 소리에 마음이 내려앉았지만 이대로는 물러설 수 없다.

이 상황에서 무너지면 안 된다. 조금만 더 참아보기로 했다.

남편과의 다짐과 확신을 받은 뒤 별거를 청산하더라도 지금은 아니다.

그동안 해왔던 별거가 숲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제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뜻이 있다면 길이 열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서로 눈치 보지 않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나부터 내려놓자. 엄마의 사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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