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 난치질환 투병과 2번의 이혼 그래도 아직 살만하다

그까이꺼 마음가짐

by 치유빛 사빈 작가




나에게 온 이 모든 경험들은 나를 성장하게 했고 꿈을 키우게 했고 행복을 알아가게 했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경험을 했다. 누군가는 한번 정도 경험했을법한 경험이거나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온갖 불행들은 46년 동안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행복은 아주 짧게 불행은 길게 찾아왔다. 실망할 겨를도 없이 밀려드는 불행을 어찌 말을 다하리오. 인생이 그렇다고 세상이 그렇다고 단념 아닌 단념을 하며 그 속에서 희망을 틔우고 행복을 찾았다. 누군가가 대신 살아주지 않는 내 삶을 위해 버티기로 한판 승부를 걸었다. 인내, 참기, 버티기, 책임, 마지막으로 꾸준함이 있었기에 수많은 불행을 감내하며 이겨냈다. 부정보단 긍정을 실망보단 희망을 불행보단 행복을 찾았다. 힘든 역경 속에서 말이다. 이겨내고 있는 지금 여기에 내가 서 있다.




수많은 이야기 중 첫 번째 이야기는 생과 사 앞에서 다시 살아난 경험이다. 잊지 못할 투병기를 한 번도 아닌 두 번을 했고 절망적일 때 찾아온 투병 삶 속에서 희망을 읽었다. 투병이 나를 힘들게 한 것이 아닌 내가 투병을 힘들게 했다는 진실을 깨달았다. 병은 내 마음의 근원에서 싹을 틔웠고 마음의 병을 치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장 최악일 때 찾아왔다.





첫 번째 투병기는 2003년 봄.




신혼의 단꿈을 피우기도 전에 병원신세를 지고 말았다. 멀쩡하게 결혼하고 멀쩡하게 직장생활을 했던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두가 놀라 했다. 투병은 6개월 동안 이어졌다. 잘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 권고를 바랐고 결국 언제 끝날지 모르는 병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신혼이었던 부부는 어쩔 수 없이 별거 생활을 했고 그는 정상인으로 나는 환자로 6개월간 각자의 인생을 살았다. 희귀병이란 병은 나를 기다렸고 이때다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병이 호전을 보이 기라도 하면 또 다른 병으로 힘들게 했다.




알 수 없는 병들. 왜 나에게만 오는 걸까? 절망했고 죽음을 선고받았다. 교수도 의료진도 모든 걸 내려놓았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즐겁게 병원생활을 했다. 아프지만 고통스럽지만 힘겹지만 외로웠지만 분명히 길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마음속에서는 살 수 있다는 긍정 꽃이, 스스로 두발로 찾아온 병원을 두발로 병원을 나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 근원은 유년시절부터 힘겨운 생활과 어려움을 겪고 자란 탓이었다. 슬픔에 잠긴 친정엄마는 교수님을 만난 후 병실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7동 병실의 오래된 환자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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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중환자실이 아닌 일반 병동에서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또 벌이며 의료진과 싸웠다. 의료진 조차 가망이 없다는 눈빛을 보낼 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화답을 했다. 밝게 웃고 밝게 말하며 밝은 생각을 그들에게 보여줬다. 그러기를 여럿 날, 그들도 나를 다시 진료하기 시작했다. 환자 본인이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의료진에게 보냈다. 바로 반응했던 의료진들, 다시 힘을 내며 의술들을 총동원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한 주치의 교수님. 그들 역시 한 인간 생명의 존엄함을 알았을 테지.



성공적인 수술. 그러나 알 수 없는 염증과 바이러스 감염들로 주치의 교수는 다른 과 의료진을 총동원했고 자신이 다녔던 서울 세브란스 병원의 의료기기들까지 총동원되었다. 죽음 앞에서도 무릎 꿇지 않고 씩씩하게 이겨냈다. 독한 약을 먹고 부작용으로 힘들어하더라도 아프다는 말을 단 한 번도 내뱉지 않았다. 아프다고 한들 진통제만 투입할 뿐 나를 살릴 수 있는 건 나 자신 뿐이었다. 죽음을 선고받고 절망을 하며 돌아온 엄마, 그러나 집에 갔다 오겠다는 말뿐, 주치의와의 대화는 말해주지 않았다. 몇 달안에 사망한다는 죽음 선고. 그러나 강한 긍정의 힘으로 다시 살아났다. 그것도 아주 건강하게 말이다. 의료진도 교수도 병동에 있던 환자와 보호자 역시 나를 보고 놀란다. 죽음 앞에서 다시 살아났기에..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일은 기적이라는 두 단어를 사용했다. 의료진들이 말이다. 기적이라고 할 만큼 죽기 직전의 내가 단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이건 주치의도 환자인 본인도 부모도 알 수가 없다. 그건 신의 영역이었으니까.. 유년시절 작디작은 몸집으로 숱한 어려운 일들을 겪었던 힘들이 죽음 앞에서도 발휘했다. 죽지 못해 다시 살았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었다. 죽음은 나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라는 걸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았다. 나를 다시 이 세상으로 보낸 이유는 죽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나의 죽음을 말하라고.. 힘들어 죽을 것 같았던 나날들을 죽음 앞에서 목놓아 우는 그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라는 책임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한다. 죽음 선고 후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죽음을 생각하는 자들이여.

죽음 앞에서 갈망하는 자들이여.


죽음은 너희들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죽을힘을 다해 이 세상을 살아가라. 아직 세상은 살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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