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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May 22. 2021

헐렁한 바지. 고무 바지만 입는 이유 배를 보호하기

궤양성 대장염 바로 알기

궤양성 대장염은 대장이 위치한 아랫배가 항상 부풀러 있다. 환우들을 보면 마른 상태에서 배만 볼록 나오는 분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먹으면 영양분이 체내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빠져나오는 병이라 살을 절대적으로 찌지 않는다. 나 역시 궤양성 대장염이 발병하고 몇 년간 마른 상태에서 아랫배만 나왔다.


그러나 말랐다고 몸에 붙는 옷을 입는다는 건 배를 아프게 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워낙 레깅스나 스키니진을 참 좋아했지만 출산과 동시에 고무 바지를 입고 다녔다. 아이를 안고 업고 눕히는 과정에서 꽉 낀 옷보다는 고무밴드로 된 스판이 잘 늘어나는 옷이 가장 편안했다.


궤양성 대장염을 앓고 점점 몸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살이 찌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관해기라는 아주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궤양성 대장염이나 크론병 환우들은 관해기가 오기를 무척 바란다. 나 역시 바랐다. 먹으면 곧장 화장실 가지 않아도 되고 살살 아파오는 복통을 매번 겪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바로 관해기다. 거기다 먹으면 곧바로 영양분이 흡수되어 피와 살을 만들어주었다.


다이어트할 필요 없는 병이라고 우습게 소리를 한 적도 있지만 몇 년 아니 수십 년을 이 병에 시달리다 보면 일반인과 똑같이 생활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래서 관해기가 오기를 바라고 몸 관리를 꾸준히 해야 하는 게 바로 이런 이유다.


이혼하고 혼자 생활을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자연적으로 사라졌고 남 눈치나 비위 따위를 맞추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 놓였고 일단 살기 위해 돈을 벌다 보니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었다. 매장 마감을 한 후 요가원을 다니며 마음을 정리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유일한 시간이었고 고요한 내 마음을 마주하는 시간이 바로 요가를 할 때였다. 몸을 이쁘게 만들기 위해서 다닌 것이 아닌 내가 살아야 하기에 운동은 필수, 근력 운동은 필수가 되어야 한다는 영상을 보고서야 실행에 옮겼다. 그것도 혼자 몸이 되고서야.


아이러니하게도 보호자 없는 일상에서 서서히 병마와 잠시 이별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매장을 한 이유도 아주 간단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직장을 다니기에는 병마와 싸워야 할 시간이 부족했다. 먹으면 바로 화장실, 안 먹어도 화장실을 찾아야 했고 혈변과 설사는 기본, 거기에 복통까지 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보다 내가 운영하는 매장을 원했고 매장을 운영했다. 매출이 오르지 않은 날에는 고민과 걱정거리가 생겼고 재고가 쌓이는 옷들을 볼 때마다 답답한 마음이 치밀어 왔다.


하지만 여기서 무너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니 다시 기운을 냈고 없는 돈으로 요가를 배웠고 마음을 다독이는 작업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삼일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나자 병이 회복되었다. 관해기가 오기까지 이혼하고 딱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012년 처음 발병했던 날부터 헐렁한 옷을 입고 다녀야 배가 편안했다. 배에 압박을 주는 옷은 대장에 무리가 갔다는 걸 직접 경험하고서야 딱 붙는 옷과는 이별을 했다. 티셔츠도 마찬가지다. 딱 붙는 옷을 피했다. 이게 바로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이었다.


스트레스 줄이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나에게 가장 치밀하게 다가오는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줄여야 한다는 걸.


스키니진, 몸에 딱 붙는 모든 옷, 그리고 스타킹까지 멀리했다. 고무가 헐렁하거나 밴드가 넉넉해야만 복부가 안전함을 느꼈다. 여자이니깐 선택 폭이 넓어 원피스나 고무밴드로 된 치마 헐렁한 블라우스나 티셔츠를 즐겨 입었다.


20, 30대는 딱 붙는 옷 아니면 쳐다보지 않았고 복부에 힘을 주고서라도 붙는 옷을 선호했다. 지금은 아니다. 이쁘지만 그 옷은 과감하게 포기한다. 내 몸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옷, 가능하면 복부를 압박하지 않은 옷을 선택한다. 선택한 결과 복통이 잦아들었다.







주로 입고 다니는 옷은 복부를 압박하지 않은 원피스이다. 허리 라인이 드러나는 옷이 아니라 허리 라인을 숨기는 원피스를 선택하면 그날은 복부의 통증이 사라진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병은 악화가 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했다.


궤양성 대장염이나 크론병은 물론이고 직장염이나 또 다른 병 역시 내가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통증은 사라졌다 다시 살아나는 거 같다. 지금 옷장을 보면 딱 붙는 옷은 과거로 돌렸다. 이제는 사라져 없다.


현재에 집중하다 보니 느슨한 청바지, 늘어난 고무밴드, 단단하지 않은 고무밴드의 치마나 바지, 원피스가 전부다. 훅으로 된 바지는 엄두 내지 못한다. 배가 아야 하니깐.


배에 힘을 줘도 들어가지 않는 게 가장 슬프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이미 부어있는 대장이라 병을 얻기 전에는 배에 힘을 주면 알아서 배가 들어갔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아니,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안된다. 딱딱한 무언가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부어버린 대장이기에 배에 힘을 주면 아프다.


더 이상 내 몸을 학대하지 말고 미워 보이는 옷이라고 한들 내가 가장 편안하고 몸에서 가장 선호한다면 그 옷은 최고의 옷이 된다. 명품 옷 일지라도 내가 힘들면 그건 명품이 아니다. 허접한 보세 옷과 다름없다.


옷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를 버린 지 오래다. 궤양성 대장염을 앓은 후 내가 가장 사랑하고 내가 가장 이뻐 보이는 옷, 그러나 몸이 가장 편안해하는 옷이 명품이 되었고 그 사람을 사람답게 표현했다. 명품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자. 그 사람의 내면, 그 사람의 인성으로 평가하자.


아프고 나니 세상 바라보는 눈이 180도 달라졌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조차 어리석었음을 알게 되었으니깐. 나에게 가장 맞는 옷이 명품이며 그 옷이 설사 일천 원이라고 할지라도 몸이 편안하다고 말하면 그건 명품 옷이며 나를 가장 빛나게 해주는 옷이다.


불편하게 옷을 입고 다니면 보는 이도 불편해 보인다. 그건 나를 빛나게 해주는 옷이 아니라 나를 구질구질하게 만들어 주는 옷이다. 이제는 명품 부럽지 않다.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옷이 나에게 명품 옷이다. 그런 옷을 찾기란 가장 힘들다는 걸 잘 아니까..


궤양성 대장염 서서히 관해기 (병의 악화가 사라지고 일반인과 같은 생활을 하는 거) 찾아왔던 건 나를 똑바로 알고 나를 학대하지 않는데에서 선물로 찾아왔다. 그 선물은 7년째 감사히 지키고 있다. 옷을 바꾸고 생각을 바꿨더니 선물은 사라지지 않고 곁을 지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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