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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Jun 04. 2021

네이버 블로그 메인을볼 때마다내 마음을 본다

메인은 운영자얼굴 이리라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얼떨떨했다. 다른 이의 블로그 방문할 때마다 화려하고 멋진 문구를 보며 '어떻게 멋지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대변할 수 있는 나만의 얼굴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블로그 운영한 지 4년이 되면서 아주 쉽게 바꿀 수 있었고 내가 원하는 걸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니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질투를 하고 부러워한다. 부러움과 질투가 있었기에 이렇게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깐 역으로 생각과 초점을 맞추다 보니 부정을 긍정으로 자연스레 초점이 맞추는 요즘이 참 좋다. 자각하지 못하던 시절에는 이내 분노가 올라오다 이내 가라앉히다 보니 감정의 기복이 내 안에서 움직였다. 그러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나보다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화풀이 대상이 되곤 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나를 들여다보면 울고 불고 하는 내가 있었다. 어린아이가 우는 이유는 딱 한 가지. 불안해서 울었다. 그리고 나를 안아달라고 울었다. 나를 사랑해달라고 울었다.


10대, 사춘기에 접어들자 짜증이 많아졌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자각하지 못하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탓을 돌렸다. 그러다 주위 사람들이 한 마디씩 했다. "성격이 날카로워 다가갈 수 없다. 예민하다. 짜증을 많이 낸다" 다양한 소리를 들으며 성장했다. 듣기 싫은 소리를 한계 없이 듣다 보니 나 스스로 '나쁜 아이, 나쁜 언니, 나쁜 딸, 나쁜 나'라고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 이미지를 벗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착한 딸, 착한 아이, 착한 언니, 착한 나'의 또 다른 가면을 쓰고 있다는 걸 몰랐다. 착함과 나쁨만 있는 줄 알았다. 




'나' '내가' 있어야 했다. 남을 위한 내가 아니라 내가 나를 위한 내가 있어야 했다.




그러니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없었다. 짜증을 내고 톡 쏘는 이미지를 벗어던지려고 내가 나를 상처 내기 시작했으니까. 그 상처는 고요할 때 불쑥 튀어나오는 불청객이었다. 불청객으로 밤이 싫었고 가슴이 조여들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데 내 안에서는 불청객이 요동 치는 이유를 몰랐다. 






20대, 역시 까칠한 사람으로 인식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취업을 하면서 이 일을 하지 않고 완수하지 않고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념이 있었다. 한마디로 가장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매달 월급날만 기다렸고 공부하는 동생과 나와 터울이 많은 어린 남동생이 있었다. 아버지는 있었지만 우리 가족에게 도움되지 않았다


규칙을 어기는 직원들에게 어김없이 날카로움이 나왔다. 이내 그들 가슴을 아프게 했다. "미스김 직원들에게 친절하게 해 주면 안 되는가? 돈을 만지니 당연하겠지만 현장 직원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도 미덕이라네" 직속 상사인 사장이 보다 못해 말을 했다. 그때 깨달았다. 책임을 완수하고 사장에게 직원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했다는 걸. 그 후로 경리 총괄 업무를 느슨하게 할 수 있었다. 사실 큰돈이 왔다 갔다 하는 업무에서 느슨해질 수는 없다. 실무자인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아주 무거웠기 때문이다. 일에서만큼은 직원들에게 부드럽지만 날카롭게 그리고 꼼꼼하게 챙겼고 그 후로 직원들이 웃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았던 사실인데 현장 직원들이 경리과 여직원 '미스김' 험담을 엄청했다고 한다. (내 이야기를 했다) 슬픈 일이지만 나는 내 자리에서 그럴 수밖에 없다며 그들의 험담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잘 몰랐고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을 쐬며 일하는 여직원, 겨울이면 따듯한 공기로 일하는 여직원, 사장에게 인정받는 여직원이라고 보이는 것만 보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직속 상사가 두 명이면 정말이지 어깨가 무거웠다. 첩첩산중으로 회사 전반적인 일을 보고해야 하는 일이었다.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지 못해 집에 가면 엄마에게, 동생들에게 화풀이 대상이 되었고 스스로 나를 찾지 못했다. 회사 언니 따라 댄스를 베워보기도 하고 운동도 하고 여행도 하며 조금 나를 인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회사에서 가장 어린 나는 언니 따라다니며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아름다운 나이 스무 살에 나를 예쁘게 꾸미며 단시간 바꿀 수 있었던 건 헤어였다. 미용실 가면 뽀글이 파마도 하고 어느 날에는 청순하게 바뀌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즐거웠던 일 중 하나였다.


그렇게 회사생활을 하며 꼬박꼬박 월급을 집에다 주고 엄마 모르는 제2의 월급으로 나를 꾸미며 일시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했고 그들의 비난이 난무하는 그곳에서 10년을 버틴 비결은 부정 기운을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지 못하는 절실함이 있었다. 


30대, 한 가정을 이루고 나니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나와 함께 했던 또래 동료의 일상을 SNS 볼 때마다 나와 비교하는 삶이 일상이 되었다. 비교하는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단 한 번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억압하고 있었다. SNS를 가급적 보지 않고 내 생활에 내 삶에 내 인생에 만족하며 살았고 아이들에게 살림에 미치며 살았다. 몰입했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몰입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몰입이었고 이유모를 짜증을 내 아이에게 상처를 주며 살고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는 이유가 가장 컸고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것에서 오는 짜증이 가장 컸던 것이다.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면 질수록 화가 났고 짜증이 났다. 







40대, 조금씩 나를 알아가며 억압했던 감정을 양파를 벗기듯 한 겹씩 조심스레 벗기고 나니 악몽을 더는 꾸지 않았고 짜증을 내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자신이 하고 싶고 재미를 느끼는 그 무엇을 하면 내 안의 분노가 사라지고 어느 날 불쑥 튀어나오는 억압을 알아차리면서 새로운 삶을 선물로 받을 수 있었다.


10년을 다닌 회사 상사나 직원들이 불안할 때마다 꿈에 찾아왔고 무섭고 무서운 꿈들이 더는 나타나지 않은 것이 참 신기하다. 가위에 눌리듯 무서운 꿈은 더는 찾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짜증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할 말을 못 하고 내 안에 억압했고 하고 싶은 일을 내 안에 억압했다는 걸 비로소 지금 알아차리게 되어 참 기쁘다. 


10대부터 40대 초반까지는 나를 몰랐으니 그럴 수 있다고 힘들었던 내 안에 머물고 있는 아이를 조용히 다독여준다. 그토록 그리웠던 사랑을 내가 내 안의 아이에게 안아주고 사랑을 표현함으로써 지금 내 아이가 나에게 말을 한다. "엄마 사랑해!" 부모에게 들어보지 못한 말을 내 아이가 해주는 현실을 창조했다.


내가 그토록 갈구하고 원하는 삶을 무의식 중에 꿈을 꾸고 상상했던 결과가 지금 현실을 창조했기에 전율이 퍼지고 느끼고 있다. 블로그 메인을 1년 만에 바꾸면서 오만가지 감정이 휘몰아쳤다. 그중 가장 큰 감정은 '드디어 찾았다. 드디어 내 것이 왔다. 내가 꿈꾸었던 모든 것들이 지금 왔다' 그동안 상상하며 그렸던 삶을 찾은 것이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내 안에 잠자는 감정을 깨우고 그 감정을 글로 녹이는 일. 내 안에 부정의 씨앗을 알아차리고 조용히 밖으로 꺼내 다독이며 흘러가는 강물에 흘러 보내는 일이 가장 큰 흐름이었다. 


내가 나를 알아야 하고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하고

내가 나를 존중해야 하며

내가 나를 소중히 여겨야만


이 세상을 즐길 수 있다는 가장 쉽고도 가장 어려운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내 안에는 '부자'와 평온함을 원했고 내가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기에 주저앉고 예전처럼 돌아가고 싶지 않다. 


좌절하려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나면 어김없이 찾는 곳이 있다. 두발은 조용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곳에서 스님이 두드리는 목탁소리와 염불소리 그리고 산속에서 재잘거리는 새소리를 들으며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내가 절을 사랑하는 이유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거, 누군가의 강압이나 제안이 없는 것이 나를 사찰로 인도한다.


사색하기 딱 좋은 절은 산속에 있어 좋고 다른 이가 없어 좋고 바람, 물, 산, 나무가 한 곳에 다 있어 좋다. 자연을 마음껏 누릴 수 있으니깐...


블로그 메인을 지금 감정을 읽을 수 있고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그동안 거짓된 나를 알아가고 꽁꽁 숨긴 포장지를 벗기고 있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천천히 가더라도 지금이 참 좋다.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짜증과 화가 사라지는 지금이 참 좋다.


블로그 메인은 블로그 운영자의 마음을 대변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더는 꿈속에서도 고요한 시간에도 불쑥 찾아오는 불청객은 저 멀리 떠나고 내 곁에는 평온함만 존재하고 있다. 


"너는 아주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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