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6개월 한번 진료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참, 다행인 건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고 염증 수치가 높지 않아 다행이다. 부산 병원이라면 한 달에 한번 두 달에 한번 찾아 채혈을 하고 건강체크를 했을 터, 그러나 서울에 위치한 병원이었기에 가능한 긴 텀의 병원 진료가 참 감사하다. 사실 6개월 진료 처방전 석 달에 한번 다녔는데, 건강상태가 완전히 좋아진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2015년 초 부산에서 서울에 위치한 병원으로 옮기면서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다행이라며 부산으로 이사온지 6개월이 지났지만 옮길 마음이 없다. 발병했을 당시, 부산에 위치한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고 충청남도로 이사 가기 전까지 부산 모 대학병원에 다녔다. 충청남도는 부산 보단 서울이 가깝기에 서울에 위치한 병원을 찾아 6년째 진료를 받고 있다. 2~3년마다 대장내시경을 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 있지만 어떻게든 시간이 허락할 거라는 걸 잘 아니 힘들어하지 않는다.
작년 10월에 진료를 보고 올해 4월에 진료를 보러 서울로 향했다. 아이를 데리고 가는 건 무리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홀로 서울을 구경하며 도시철도로 서울아산병원까지 가는 길을 익혔다. SRT에서 내려 그 길로 도시철도(지하철)를 타야 했다. 그것도 3번을 갈아타면 서울아산병원 셔틀버스 정류소에 도착한다. 기차로 2시간 30분, 전철 이동 1시간, 셔틀버스 30분 소요되니 가는 것만 4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아프지 않아 다행이라며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채혈을 하고 두 시간을 기다려야 진료를 볼 수 있고 혈액검사가 두 시간 뒤나오기 때문에 두 시간은 홀로 사색하기 딱 좋다.
홀로 점심을 먹고 병원 공원에서 찬바람을 쐬며 음악 감상도 하고 글도 쓴다. 즐기고 있는 일을 하면 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진료실에서 이름이 호명되면 곧장 진료실 앞에 대기를 해야만 진료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4월 진료받는 날 누군가가 내 옆 자리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백발의 노인할머니였다.
연세가 꽤 있어 보이는 할머니는 마른 체형이었다. 보는 순간 나와 같은 병을 안고 계시는구나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 혼자 오셨어요?"
"응, 혼자 왔지?"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대장이 아프세요?"
"이 병을 40년째 앓고 있는데 이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야! 참 고마운 분이야. 나한테는"
무슨 사연일까? 궁금했다. 할머니는 나와 같은 선생님에게 40년째 진료를 보며 회복을 찾고 계셨다. 이 병은 완치가 없다. 그래서 관해기라고 하는 말을 붙인다. 현재 병이 잠시 완치된 상태라고 보면 된다. 난치라는 이름이 붙은 거 보면 관해기가 평생 지켜준다고 말하지 못한다. 자치 잘못하면 재발 위험이 큰 궤양성 대장염이니까.
"어디에 사세요? 병원과 가까우신가 봐요. 보호자가 없네요."
"응, 난 이 근처에 살아. 처자는 어디에서 왔누"
"저는 부산에서 왔어요."
"멀리서 왔네. 이 선생님 잘해! 내가 40년째 병을 안고 있지만 내가 오래 산 비결이 이 선생님을 만나서야! 처음 혈변을 보고 쓰러져 왔을 때 이 선생님이 고쳐줬어. 나는 이 선생님에게 참 고마워!"
고마워와 감사함을 연발하시며 말벗이 된 나에게 자신의 삶의 일부분을 말해주셨다. 다음 질문을 하려던 그때 이름이 불러졌고 이내 진료 보고 오겠다고 말을 남기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왕복 8시간, 채혈 후 2시간, 선생님 진료는 10분도 채 되지 않은 5분이다. 허탈하지만 그만큼 건강이 좋아졌다는 신호라고 믿고 위로를 받으며 부산으로 향한다. 천안에서 서울까지 30분, 왕복 4시간이면 되는 서울행 병원 진료가 부산으로 이사 온 뒤 왕복 8시간을 투자하며 다니는 이유는 점점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별다른 약을 처방하는 것도 아니고 주사를 맞는 것도 아닌데 좋아지는 비결은 서울을 오고 가는 길을 여행하듯 즐기고 있었다. 즐기는 것만큼 몸에 이로운 것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즐겁게 다니고 서울아산병원을 구경하며 다녔다.
삶을 녹여 글을 쓰고 난 후 넉살이 좋아졌고 일상이 글감의 주제가 되는 삶을 살아가 고 있는 지금이 멋지다. 글 쓰기 전 나라는 사람은 나만 보였다. 이제는 아니다.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간단하게 진료를 보고 나온 나에게 할머니는
"아가씨 조심히 내려가!"
"할머니 건강하시고 다음에 또 만났으면 좋겠어요. 진료 잘 보시고 조심히 가세요, "
할머니와 짧은 대화는 10분도 채 되지 않았다. 적적한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고 싶어 안부를 묻다 자신의 삶을 녹여 말해 준 할머니에게 감사했다.
누구나 하나쯤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게 뭐가 됐든 하나를 안고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이 가진 인생사의 노하우를 알려주며 사람으로 상처를 받아 사람으로 치유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나 보다 작은 체구로 조용히 자신의 진료를 기다리던 할머니 모습이 선하다.
옅은 미소를 띠며 나근나근한 목소리로 자신에게 성심성의껏 보살펴 준 의사 선생님의 고마움은 연세가 여든이 넘어도 잊지 않고 계셨다.
나 역시,
부산에서 사울 아산병원으로 옮기면서 병은 호전되었고 알약의 개수도 줄어들었다. 불필요한 약을 다 빼고 궤양성 대장염에 필요한 약만 처방하셨다. 위장보호 약 역시 과감하게 뺀 후 이상 반응은 없었다. 오히려 이 선생님을 만나고 6년째 관해기가 유지된 것만으로 감사함을 잊지 않아야 할거 같다. 우연히 만난 할머니처럼...
우연히 만난 할머니처럼 한 사람만 믿고 40년을 버틸 수 있을까? 나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너무 멀어 처음 병원으로 옮기려는 마음이 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