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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May 28. 2021

김밥의 변신은 무죄. 엄마 사랑이 있었다

무한한 변신을 하는 김밥 이야기


20대 사회인이 되면서 아침을 거르지 않고 꼭 먹고 다녔다.


20대뿐만 아니라 그전에도 아침을 먹지 않고 학교에 가면 허기져 힘들었다. 그리고 아침을 거르는 행동은 위장을 헤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어릴 적부터 먹는 걸 좋아하지 않은 딸, 골골거리는 딸을 위해 뭐든 먹이려고 노력을 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요즘에는 펼쳐지지만 그때는 밥을 먹지 않는 것이 참 좋았다. 다른 사람들은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을 차고 넘쳐도 쳐다보지 않았던 시절. 그들은 맛있게 먹었다. 남들보다 내 주위에 맛있게 먹고 즐기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여동생이다.


그 아이가 먹는 음식은 다 맛있어 보였다. 맛없어도 참 맛있게 먹는 동생은 먹성이 탁월했다. 태어날 때부터 통통하게 태어났고 자라면서 먹성은 뛰어났다. 그래서일까? 잘 먹는 동생은 뭐를 먹여도 맛있게 냠냠을 해 걱정을 덜한 엄마,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밥투정, 편식은 기본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먹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목구멍으로 넘기는 음식이 괴로울 정도였으니까.


조금만 먹어도 헛배가 불러오는 건 내가 가진 유일한 편식이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조차 맛있게 먹지 못하는 아이였다. 지금도 그때 그 행동을 알 수 없으나 먹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불안해서 그런지 두려워서 그런지 먹는 것보다 마음이 편안했으면 하는 생각이 가장 많았다.


잘 먹는 동생을 바라보며 신기하면서 부러웠다. 그런 아이를 엄마는 걱정하지 않았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쌌으니깐... 그러나 편식쟁이면서 가리는 음식이 많은 나는 잘 자지도 잘 먹지도 잘 싸지도 못했다. 유일하게 아픈 손가락이 나인걸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절실히 알게 되었다.


지금 내 아이를 보면 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거 같다.






야채를 먹지 않은 딸을 위해 잘게 다진 채소와 신김치를 넣고 김치볶음밥 도시락을 사주는 날이 늘어났다. 예전에는 급식이 없었다. 도시락을 싸서 다녔던 36년 전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치볶음밥인걸 안 친구들은 나에게로 모여든다. 자신의 도시락과 바꿔 먹자는 아이가 줄을 섰으니깐. 그만큼 엄마는 큰 딸을 위해 정성과 사랑으로 볶음밥을 만들었고 그걸 안 친구들은 도시락을 뺏어먹기 바빴다. 그러나 볶음밥 주인인 나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맛있는지도 모르겠고 맛없는지도 모르는 상태라고 할까?


친구들은 볶음밥을 다 먹고서야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지금은 그리운 볶음밥이 되었지만 못살던 그 시절 신김치 하나로 만든  맛있는 볶음밥이 먹고 싶다. 그 맛을 느낄 수 없다. 엄마 손맛은 예전과 달라졌으니까.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됐지만 여전히 채소를 거부했고 맛있는 음식이 없었다. 배가 고파서 밥을 챙겨 먹었고 살기 위해서 챙겨 먹었던 끼니들. 그런 나를 안 엄마는 출근길에 동료들과 나누어 먹으라며 한 달에 두세번 김밥을 쌌다. 신김치를 씻어 김밥을 말았고 야채 김밥을 만들어 골고루 도시락을 싸주셨다.


가슴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추억은 어느새 내가 김밥 장인이 되어갔다. 신김치 김밥, 참치 김밥, 떡갈비 김밥을 쌌다. 엄마 손맛보단 덜 하지만 나름 맛있었던 김밥.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냉장고를 뒤져 온갖 야채를 꺼내어 창작을 했다.


땡초 김밥이 유행하던 시절.

검색을 하며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었다.


청양고추 다진 후 설탕과 간장, 그리고 다진 마늘을 넣고 졸이면 땡초김밥에 들어갈 땡초소스가 만들어진다. 매콤 달콤한 소스는 입맛이 없을 때 먹으면 입맛이 살아났다.


땡초소스를 냉장 보관하면 한 달 이상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멸치가 많은 날에는 꽈리 멸치 김밥을 말았고 일미 무침 한날에는 일미 김밥을 만들었다. 제육볶음을 한 날에는 제육김밥을. 소불고기를 한 날에는 소불고기 김밥을 만들었다.


김밥 변신은 정말 무죄였다. 뭐를 넣든 다 맛을 냈던 김밥.


엄마의 따뜻한 사랑과 정성으로 만들어 준 그 시절 그 김밥 맛은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현대적으로 김밥을 싸는 엄마는 시대를 따라가고 있다. 최근에는 떡갈비를 넣고 김밥을 만들어 온 엄마...


큰딸이 김밥 마는 모습에 색다른 김밥을 만들어 온 엄마는 예전 맛을 느낄 수 없지만 엄마 손맛은 그대로였다.


김밥을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엄마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늘도 난 아이를 위해 최대한 맛있는 김밥 만들기 노력 중이다. 우리 엄마가 나에게 보낸 사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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