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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May 27. 2021

투고하고 남은 건

책 쓰기는 내 글을 판매하는 행위

투고를 두 번 경험한 나.



2019년 12월



다듬어지지 않은 글을 다급한 마음에 두서없이 투고를 했다. 출간 기획서 역시 두서없고 맥락 없는 글로 투고를 했다. 출간 기획서를 왜 써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저 하고 싶어서 그 길이 내 길이여서 준비는 되었지만 어떻게 해야 옮은 방법인지 모른 채 진행한 투고는 쓰디쓴 패배만 남겼다.


600군데가 넘는 출판사에 투고 하고 남은 건.


거절 답장이다.


내 글이 매력이 없다는 말을 빙빙 둘러 자신의 출판 방향과 맞지 않다는 말과 함께 거절 메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왔다.


어느 출판사는 이 정도는 시장에 많다면서 약간의 사기를 꺾는 이야기까지 스스럼없이 했다.


어느 출판사는 전화가 와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원고를 수정하고 미팅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곳은 자비 출판사도 아닌 독립 출판사도 아닌 돈을 요구는 출판사였다.

어느 출판사는 출판 사정을 말하며 책이 팔리지 않아 어렵다고 말하는 사장님.

어느 출판사는 거액을 요구했고, 어느 출판사는 아주 진지하게 회의를 하고 방향을 제시했고 퇴고를 하고 난 뒤 계약하자는 메일이었다.




초고는 정말 쓰레기와 같은 말로 두서없이 썼다. 수정하고 또 수정해도 고쳐야 할 부분이 있어 포기했고 투고한 결과는 패배했다.


2020년 초반


출판사와 글쓰기가 지긋지긋해졌고 번아웃이 온 상태였다. 모든걸 놓고 몇 달을 독서만 하며 지냈다. 오로지 내가 원하는 일만 하자고 잠시 출판과 투고는 잊어버리자고 나와 약속을 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몇 달이 지났고 여름이 와서야 쓰레기 같은 초고를 수정하면서 즐거웠다. 원 없이 놀다 다시 원고를 보니 새삼 사랑스러웠다.


새로 적어야 할 페이지도 있었고 조금만 수정하면 괜찮게 보이는 페이지도 있었다.


아이를 위해 키즈카페로 향했고 아이는 놀고 홀로 원고에 집중했다. 그러다 9월에 사고가 터지면서 모든 걸 내려놓고 다른 일에 집중해야 했다.


집중하면서도 퇴고에 온통 신경이 쓰였다. 마지막 출판사가 기다리고 있었고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상황이 해답을 줬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해답을 알아차리고 현재를 집중하며 투고는 다시 하자고 다짐했다.


올해 초


이대로 시간만 보내서는 그동안 갈고닦은 글이 무덤에 덮이고 말 거 같았다. 그리고 다시 나의 멘토를 찾았다. 아주 절실하게 찾았다. 간절함 보단 절실했다. 이 일을 꼭 해야만 했다. 나와 아이를 위해서 나를 알려야 했다.


 누군가는 말했다.


"그냥 아르바이트나 하며 살아"라고

"식당에 가서 설거지라도 해라" 고


하지만 내 몸은 내가 더 잘 안다.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아이를 돌보며 돈 벌고 싶었다는 걸. 아이가 믿고 있는 사람, 의지할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는 걸 알기에 책 쓰기를 다시 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멘토를 찾아 출간 기획서부터 글 쓰는 방향을 잡아가며 매일 A4 두장을 써내려 갔다. 이미 쓰레기 같은 초고를 썼던 경험을 무시하지 못했다. 쓰레기 같은 초고를 버리고 쓸만한 초고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동안 읽었던 책을 연관 짓으며 간결하면서도 전달이 되는 글, 내가 읽어도 재미가 났지만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쓰고 있었다.


그렇다면 독자도 내 글을 읽고 다시 읽고 싶은 글이어야만 했다. 독자가 읽고 싶은 글을 적어야 했다. 그런 글을 쓰고 있는지 멘토에게 물었다. 멘토는 아주 간결하게 대답했다.


"지금 잘하고 있어요. 이대로 적으시면 됩니다. 이것저것 다 빼고 나면 적어야 할 글이 없어져요. 일단 적고 퇴고 시 뺄 건 빼고 넣을 건 넣고.. 그러면 되는 겁니다."


석 달 동안 쉼 없이 달려온 결과는 계약으로 이어졌다. 출간 기획서가 왜 중요한지 알 거 같았다.


출간 기획서는 작가의 얼굴이었다. 내가 어떤 내용으로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는지 아주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고 명확하게 보여야 했던 거.





즉, 면접 볼 때 쓰는 이력서와 같았다.


두 번째 투고를 하고 나니 머털도사가 되고 있었다. 매일이 멀다 하고 거절 메일이 왔다. 첫 번째 투고보다 더 많은 거절 메일이 왔다는 건 일단, 출간 기획서를 읽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한 달을 기다리다 계약서가 온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


계약서를 보낸 출판사는 투고하고 하루를 넘기지 않고  바로 계약서가  왔다.


그 출판사는 2년을 기다려 준 출판사였다. 참 감사했다. 참 고마웠다. 참 다행이었다.


잊지 않고 내 글을 기다리고 있었던 그 출판사에게 절을 하고 싶었다.


계약이 이루어지고 나니 한 곳에선 출판 사정과 함께 '나를 놓치는 건 다이아몬드를 버리는 것과 같다 귀한 운을 모르는 척 하지만 지금 사정으론 힘들다'며 '좋은 출판사를 만나기를 건승을 빈다'는 메일이었다.


아주 진솔한 메일이었다.


가슴을 후벼 팠다. 마음이 아팠다. 독서하는 독자는 정해져 있다. 그리고 장르별로 또 나누어지는 독자이기에 출판사 사정이 호황이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을 터, 그러나 출판 사정이 최악이라는 걸 글을 쓰고 난 후 알게 되었고 독서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구구절절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들어내며 보낸 메일이 안타까웠다. 작가이자 독자인 내가 더 많은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투고하고 난 후 나에게 남은 건,

인생을 파는 행위,

내 글을 파는 행위이지만 내 글을 좋아하는 출판사는 적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천 군데 투고를 했지만 출간 기획서를 읽은 출판사는 40프로가 되지 않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대형 출판사는 이미 유명한 작가와 출판이 이어져 초보 작가는 언감생심 문턱에도 들어가질 못했다.


한 여자의 일생이 그토록 매력이 없는 건지 두 번의 투고를 하고 난 후 알게 되었다.


글을 파는 행위는 역으로 생각해보면 나를 알리는 아주 좋은 매개체라는 걸, 그래서 기를 쓰고 출판하려고 하는 거 같다. 계약서 상에는 갑이 작가다. 그러나 계약을 하고 나면 갑은 출판사가 된다. 이건 멘토가 말했다.


결국, 나를 팔고 그동안 무한한 경험한 인생을 파는 '갑과 을'의 상태가 되고 계약 전과 계약 후의 '갑과 을'은 바뀐다.





새로운 세상을 배워가는 지금이 참 좋다. 단 한 곳이라도 내 글을 사랑해주고 출판하려고 하는 출판사가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하며 하루하루 즐기며 산다.


투고한 후 나에게 남은 건,

성장이다. 행위보다 더 좋은 성장을 배웠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배웠다. 두 번째 책을 생각하며 퇴고를 하고 있다. 퇴고와 함께 마지막 글을 집필하는 요즘이 최고로 바쁘다.


그동안 맛보지 못한 세계. 참 충격적이면서 신선하다. 늘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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