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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Mar 31. 2022

씩씩한 뒷모습과 사랑스런 뒷모습이어서 다행이다


작년 5월 갑작스럽게 여행이 하고 싶어졌다. 작년이면 코로나가 심각할 때였다. 그러나 가까운 거리조차 여행할 수 없는 지금 이 순간이 갑갑했고 때마침 아이가 비행기 타고 싶다고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엄마 생신과 어버이날을 통틀어서 가족 여행을 해보자고 했고 친정엄마 지인 중 제주분이 계셨다. 사실 운전을 못하는 나라서 운전을 대신해 줄 분이 필요했고 겸사겸사 엄마와의 인연이 오래되어 모시고 싶었다.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친정엄마와 지인 그리고 모녀가 한 식당에서 여행 계획을 세웠다. 


일사천리로 진행한 제주 여행. 드디어 여행을 떠나는 첫날. 엄마 지인분은 오랜만에 고향에 오셔서인지 고향분들을 만난다고 했다. 나와 아이는 일찍 감치 저녁을 먹었던지라 간식 사러 편의점 가는 길에 월정리 해변이 너무 아름다웠다. 어둑한 바다, 많지 않은 사람들 틈에 끼어 모래놀이도 하며 사진을 찍었다. 누군가가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는 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 건 바로 내 뒷모습을 찍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곁에 있는 사람은 어린 딸아이뿐이어서 아이에게 부탁했다.


"여니야 저기서 엄마 뒷모습 찍어줄 수 있어"

"엄마 나 무서워. 너무 어두워서 엄마와 떨어지면 안 될 거 같아"

아이가 무서워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가로등이 없어서인지 해변가에 위치한 벤치가 너무 어두웠다. 엄마 곁에 한시라도 떨어지면 자신은 누군가가 데리고 갈 거 같다는 아이말에 결국 엄마와 떨어지지 않는 지점에서 사진 찍어달라고 타협했고 아이가 응했지만 사진은 흔들리고 말았다. 참 아쉬웠다.


현재 내 뒷모습이 왜 그렇게 궁금한 건지 아이가 찍어 준 사진을 들여다보면 찬찬히 생각했다. 굴곡진 삶에서 잘 견디고 있는 건지, 혹여 겉보기에는 아프지 않은 척하면서 정작 내가 보이지 않은 뒷모습은 어깨가 축 늘어트리고 있는 거 아닌지 위축되어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


뒷모습은 내 바람대로 삶 한가운데 잘 서 있었다. 흔들리지 않고 꺾이지 않고 천천히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 뒷모습에서도 보였다. 


고요한 제주 밤바다

고요한 모녀 밤 일상

고요한 내 뒷모습



참 다행이다. 쓸쓸해하지도 힘들어하지도 슬퍼하지도 힘겨워하지도 고단하지도 않았다.

삶을 즐기고 있는 내 뒷모습이 아름다웠다.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힘이 있었다.


어깨가 늘어져 있는 게 아니라

어깨가 힘껏 올라가 있었다.


이걸로 됐다.

이걸로 다행이다.

이걸로 지금 만족한다.


2박 3일 제주 여행은 나를 위한 여행이었다. 새로운 세상을 보았고 새로운 나를 보게 되었다. 부산으로 돌아온 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파이팅과 함께 아이와 즐겨보자고 했다. 사실 이때가 가정보육 6년째 접어들고 있었다. 아이 마음이 움직일 때까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스로 유치원에 가고 싶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엄마인 나는 아이 곁에서 용기를 주고 힘을 주며 엄마의 신뢰와 믿음을 주면 언젠간 아이는 자신의 세상을 즐길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현재는 자신의 세상에서 너무 잘 적응하며 즐기고 있는 아이가 참 대견스럽다. 


내 뒷모습을 굳이 보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아이 뒷모습이 내 뒷모습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 얼굴을 보면 부모 얼굴을 보는 것과 같다는 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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