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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Apr 01. 2022

배려 깊은 사랑 경청 눈빛 스킨십 공감은 나부터 실행

엄마 에세이

배려 깊은 사랑을 육아에 접목하다 보니 힘들었다. 배려 깊은 사랑에는 4가지가 있다. 

첫 번째, 눈빛

두 번째, 경청

세 번째, 스킨십

네 번째, 공감이라고 한다.


근데 나는 자라온 환경에서 네 가지를 받지 못하고 자랐다. 경청 부분에서는 내 말을 듣기는커녕 어리다는 이유로 내가 말을 하면 막아 버렸다. 어린아이가 뭐를 아냐는 말이었다. 그 후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했다. 말을 하면 제지를 받았다. 제지를 받을 때마다 나의 감정은 수치스러웠다. 내가 하는 말은 타인에게 부정적으로 다가간다는 오해 하며 인정받지 못하는 말이라고 단정 짓었다. 두 번째는 경청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받지 못하니 줄 수 없었다. 주려고 하더라도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분노가 올라왔다. 결국 포기하며 살아왔다.


눈빛 부분에서는 엄마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사랑스러운 눈빛이 아니었다. 조금만 잘못하면 나를 흘겨보며 말했던 엄마가 떠올라 이건 나중에 내가 엄마가 되서라도 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부분이었다. 그러나 받은 거라곤 표독스러운 눈빛이었기에 아이에게 그대로 표독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자라온 환경에는 스킨십이 없었던 집이었다. 내 마음에는 스킨십을 주고받는 그런 행위가 아름답다고 알면서도 막상 하려면 쑥스럽다 못해 굳이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깊어지자 결국 포기했던 부분이었다. 이 또한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라서 나눌 수 없었다.


공감 부분은 어느 정도 받아들였던 가족들이었다. 장녀이자 살림꾼이었던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엄마나 동생은 내 말에 공감했다. 이 공감을 받기까지 많은 노력을 했다. 내가 내렸던 결론에 일치하려고 노력했고 결과는 늘 일치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내가 결정 내리고 행동에 옮기면 무슨 결론이든 나온다는 걸 말이다. 그렇기에 무슨 의견을 내놓아도 공감해주었던 가족들이었다.


결론적으로 보면 받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해서 쉽사리 줄 수가 없었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시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시련을 견디며 고통이 따르더라도 이 길을 선택했다. 고통 없이는 성장할 수 없기에. 


네 가지를 마음속 깊이 새기며 아이가 대화를 시도하면 눈빛을 바라보며 아이 말에 경청하려고 노력 중이다. 혼자서 노는 건 재미없다는 아이를 위해 부족한 스킨십 놀이를 하며 지낸다.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공감은 탁월하게 잘해주고 있다. 아이는 사소한 감정일지라도 엄마인 나에게 공감받기 위해 말을 걸어온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이가 엄마에게 공감을 받기 위해 말을 걸어주는 것이 축복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글을 쓰는 그 시간에 아이는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엄마 나 좀 봐줄래, 엄마 눈빛이 보고 싶고 위로받고 싶어. 엄마 나를 안아줄래, 나 혼자 외로워. 심심해. 엄마 내 말 좀 들어줄래, 나 지금 엄마가 들어줬으면 좋겠어. 그 친구가 나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지 엄마에게만 말해줄 수 있어. 엄마만이 공감해줄 수 있단 말이야' 이런 아이 마음을 알아간다. 아이 마음은 나의 13살 아이가 바랐던 그런 마음이었으니깐.


내면 아이를 보듬어주는 일이 힘겹지만, 그 일을 하나씩 꺼내어 슬픈 그 일, 아픈 그 일을 보듬고 상처를 치유하면서 비로소 내가 되어간다. 이제는 아프지 않다. 어렸던 나는 울면 바보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참아낸 울음을 이제는 두 뺨 위에 눈물이 스쳐 지나가더라도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아이가 내 곁에 와 티슈 한 장을 건네준다.

"엄마 왜 울어. 저 드라마가 슬퍼?" 

"응, 너무 슬퍼. 엄마 마음 같아서 슬퍼"

"그래, 슬프구나"라고 공감해준다.


나에게 배려 깊은 사랑을 해줌으로써 비로소 아이에게 전할 수 있다. 그리고 타인에게 전할 수 있다. 이 모든 건 사랑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아이를 사랑하며 내가 내 주위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아끼기에 배려 깊은 사랑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눈빛, 경청, 스킨십, 공감은 내가 내 마음에 해야 한다. 거울 명상이라는 책이 있다. 거울을 보면 내 눈이 보이고 내 입이 보이며 어떤 얼굴로 하루를 마주하는지 알게 된다. 슬픈 눈, 슬픈 표정에서 기쁜 눈, 기쁜 표정으로 하루를 맞이한다. 더는 아프지 않으니깐. 더는 슬프지 않으니깐. 더는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깐.


오늘도 난 나를 공감한다. '글 정말 쓰기 싫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뭐를 하며 보낼까' 어제는 이런 마음에 공감했고 글을 쓰지 않는 나를 채찍질하지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것이 공감 아닐까? 내 안의 소리를 고요히 듣게 되면 내일은 더 힘찬 태양을 마주할 수 있다. 거울을 보면 내 눈을 본다. 내가 내 어깨를 쓰다듬으면 배려 깊은 사랑을 하루치 성공하게 된다.


이렇게 한 날은 아이에게 더 많은 배려 깊은 사랑을 하게 된다. 이런 날은 아이도 충만해진다. 유치원 생활과 학원생활이 풍요로워진다. 오늘도 나를 위해 네 가지를 하며 배려 깊은 나의 사랑을 배운다. 참 좋다. 이런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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