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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Mar 25. 2022

경추 1.2번 탈골 수술은 위험한 수술이다

엄마 에세이

2003년 그해는 많이 아팠다. 사망선고를 받았고 죽을 뻔했다. 병원에서는 마음을 준비하라고 부모님에게 말했으니까. 아픈 환자는 죽음이 곁에 왔는지 모르고 살았다. 이 모든 말들은 완치라는 판정을 받고서야 친정엄마가 말해줬다. 죽다 살아 난 맏이를 보며 그때 그 마음과 감정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그때 교수님이 나를 불렀잖아" "응 그랬지" "교수가 부른 이유가 너는 곧 죽을 거라고 하더라. 그것도 언제 어떻게 목숨이 끊길지 모른다고" "정말 그랬어? 교수님이 내가 곧 죽는다고" "그래, 그래서 내가 얼마나 슬프던지. 교수님 말을 듣고 너에게 그랬잖아. 집에 갔다 온다고" "그래서 내가 갔다 오라고 했잖아" "도저히 너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거 같아 집에 간다고 하고 나갔던 거야" "그랬구나. 그런 일이 있었구나"


20년 하고도 몇 년을 더 보낸 지금 이 일을 회상하는 이유는 잊히지 않아서다. 글을 쓰고 또 썼지만 2003년 그해 아픔을 잊을 수 없다. 아마 누군가는 나처럼 아파서 생사를 오고 가고 있을 거 같아 그때 아픔을 기억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다. 블로그에 글을 쓴 후 많은 분들이 절실함에 내가 쓴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아주었다. 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 절절한 심정으로 답을 달았다. 글이었지만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간절하게 글을 썼다. 희망을 놓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2003년 투병은 6개월을 보낸 후에야 병원과 안녕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오랜 병원 생활로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고생했고 수많은 검사와 검사 결과로 치료는 달라졌고 신경외과에서 호흡기 내과, 심장 내과, 피부과, 외과 등 다양한 '과'에서 진료를 보게 되었다. 병원 생활은 될 수 있는 대로 경험하지 않으면 좋지만 인생사가 내가 원하는 대로 된다면 걱정이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냥 아팠다. 큰 사고가 난 적이 없었고 크게 아픈 적이 없었다. 우연히 볼링을 쳤고 볼링 친 날 자고 일어나니 목이 움직이지 않았다.


진료를 보던 의사는 물었다. "이렇게 아프기 전에 뭐를 하셨어요?" "글쎄요. 볼링 친 거 말고는 없어요." "견고한 뼈가 이렇게 무너질 수 없어요. 경추 1,2번 뼈는 추락사 아니면 교통사고로 인해 즉사가 대부분인데 멀쩡하게 걸어서 병원에 오다니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라고 오히려 나에게 교수는 물었다. 환자인 나조차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있었다면 뭐하러 병원을 찾아다니며 치료방법을 찾았을까. 교수는 황당한 내 이야기를 듣더니 이해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혹여 부부싸움을 격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요. 부부싸움을 어떻게 해야 교수님이 말씀하신 견고한 뼈가 무너지나요"라고 오히려 내가 교수님에게 질문했다. 교수님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차후 치료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교수가 나가기 전 내가 물었다. "교수님, 저처럼 경추 1,2 뼈가 무너져서 치료한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니깐 완치 말이죠" "제가 신경외과에 있으면서 경추 1,2번 뼈가 망가져서 온 사람은 추락사와 교통사고로 들어온 환자가 대부분이었고 치료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었기에 완치가 되었던 환자는 없었어요" 교수 말에 덜컥 겁이 났다. 이대로 두 다리로 걸어서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만 들었다.


"일단, 안정이 시급해요. 무조건 안정을 취하시고 걸어 다니면 절대 안 됩니다. 누워서 지내셔야 해요. 내일 오전 회진 시 치료방법을 알려드릴게요" "누워서 지내라면 화장실은요. 그리고 밥은요. 어쩌라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거야 누워서 밥을 먹고 화장실은 당연히 못 가죠. 보호자가 24시간 환자를 돌봐야 합니다. 대소변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죠. 보호자에게 전화해서 병원에 오라고 하세요" 


대화하는 내내 믿어지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이런 시련을 안겨주다니 신이 원망스러웠다. 치료가 먼저라며 병원은 절대 안정이라는 팻말과 함께 움직이지 말라고 말하고 회진이 끝이 났다. 그 후로 중환자 중 중환자가 되어 병원생활을 했다. 6주 동안 누워서 치료하는 방법을 교수가 말했다. 의료서적에는 6주 동안 누워서 양쪽 머리에 핀으로 고정해서 추를 매달아야 한다는 거였다. 책대로 치료를 하자는 교수 말에 신뢰가 가지 않았다. 나 같은 환자가 드물었기에 책에서 배운 대로 치료를 해야 한다는 말이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퇴원을 한다고 한들 병원에서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을 테니까. 방법이 없었다.


6주 동안 추를 매달고 꼼짝없이 누워서 지냈고 4주쯤 됐을 때 추를 내려보았지만, 머리는 처음 아팠던 자리로 돌아갔다. 6주간 추를 매단 이유는 뼈와 뼈 사이에 공간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뼈와 뼈 사이에 공간이 생기면 1, 2번 뼈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자리로 간다는 원리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뼈는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고 아파하던 그 자리로 돌아가버렸다. 2주 더 추를 달고 있다고 한들 가망이 없어 보였다. 누워서 지내느니 수술해서 일어나고 싶었다. 수술은 아주 간단하다고 말하던 교수는 6시간 수술이 12시간을 넘겼고 수술실에 있던 환자인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체 수술방 침대 위에 있었고 보호자와 부모님들은 병이 낫기 위해 수술실로 들어간 딸이 며느리가 조카가 언니가 나오지 않자 모두가 초주검이 되고 있었다.


장작 12시간 수술을 끝내고 나는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고 머리카락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12시간 마취는 내 안에 있던 세포가 죽었다 다시 깨어나는 듯했다. 아프기 시작했고 오한이 심각할 정도로 심했다. 7 병동 중환자인 나는 산소통과 한여름에 필요 없는 난로와 히터까지 대령하고서야 내 몸은 진정되었다. 경추 1,2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일상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지만 인생사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뜻하지 않은 호흡기에 문제가 생겼고 죽음과 사투를 벌이며 결국, 6개월이라는 시간을 병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2003년 후로 신경외과 병동과 호흡기 내과 병동은 굿바이 했다. 될 수 있는 대로 병원과 이별하려고 애를 썼다. 그 결과 20년 동안신경외과 근처는 가지 않았다. 수술한 부위의 염증으로 한 번 찾은 적은 있었지만 그 후로 뼈 문제로 병원을 찾지 않았다. 방법이 없을 줄 알았던 병은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완치가 되었거나 병이 나를 집어삼켰다. 아픈 와중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 힘든 수술을 했기에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중간중간에 나를 포기해달라고 교수에게 말을 했지만 말이다.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건 회복했다는 증거이며 더는 그 병으로 병원을 가지 않는다는 증거다. 아프다고 그 병과 타협하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나는 병과 타협하려다가 타협하는 시점에서 새로운 세상을 보고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대로 병과 타협하면 죄를 짓는 거라고 믿었다. 병과 타협하지 않고 병원에서 하는 모든 치료를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병은 호전이 되었다.


건강은 물론이고 이 세상 살아가는 이치가 똑같다. 모든 건 내 안에 머물고 있는 마음이 알고 있었고 마음이 움직이면 실행에 옮기면 어떻게든 길을 열어주었다. 건강을 잃으면 안다.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가족을 잃으면 안다. 가족의 소중함을, 물건을 잃어버리면 안다. 그 물건의 소중함을 말이다.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소중하고 감사하다. 멀쩡한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소중하다. 두 팔이 있어 맛있는 밥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스마트폰이 있어 감사하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이어폰이 있어 감사하다.


감사를 모르면 또다시 불행이 닥친다. 그래서 난 감사함을 잊지 않고 큰 소리로 오늘 감사함 하나를 끄집어내어 말한다. 아이는 시끄럽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열심히 말한다. 내일의 태양을 볼 수 있다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건강을 잃으면 이 모든 걸 다 할 수 없다.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서 감사하고 글을 쓸 수 있어 감사하다. 열 손가락이 건강하게 움직이고 있으니까. 요즘 소중함을 알아가고 있다. 잊고 지낸 오늘과 내일 그리고 미래는 과거가 있었기에 소중함을 알아가는 건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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