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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Mar 26. 2022

금속 알레르기가 하필 멋쟁인 나에게 찾아오나

엄마 에세이

언제부터인가 내 몸은 달라지고 있었다. 내 몸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있는 줄 몰랐다. 20대가 되었고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첫발을 내디뎠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사회초년생은 돈이 부족하다. 첫 월급이 나올 때까지는 부모님에게 손을 내밀어야 했다. 첫 월급을 받고 가장 먼저 샀던 물건이 바로 액세서리였다. 귀를 뚫지 않았던 나는 액세서리 귀걸이로 멋을 냈다.


청바지를 입고 지퍼가 있는 옷을 입으면서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온몸이 가렵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었다. 이너웨어를 입고 겉 옷을 입어야 했지만 챙겨 입는 것이 귀찮아서 겉옷만 입고 다녔던 그때 몸에서 반응이 보였다. 식중독이 걸린 것처럼 피부가 울근불근 해지면서 가려워 미칠 지경이었다. 특정 부위에 피부염이 올라왔다. 지금이라면 바로 알아차렸겠지만 그때는 몰랐다. 내 몸을 엄마가 알아서 지켜줄 거라는 믿음으로 살았으니깐.


발진 난 피부를 긁다 보면 피가 났다. 아픈 피부를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발진 난 피부를 한 번 쓱 보더니 "피부과 가봐"라고 대수롭지 않은 표정과 말투로 말을 건넸다. 대수롭지 않은 엄마 말에 섭섭했다. 딸은 아프고 가려운 피부가 무서워 떨고 있는데 부모는 별거 아니라는 표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스무 살이 된 나는 혼자 병원 가는 것이 싫었다. "엄마 병원 같이 가줘"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엄마는 늘 분주했고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표정이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엄마와 함께 하자고 조르지 않았다. 동네 의료원을 찾았고 피부 상태를 보여줬다. 유심히 보던 의사는 "이건 심각한데요. 피부와 맞지 않는 것과 접촉한 거 같은데 자주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안 됩니다. 원인을 찾아보세요"라며 겁을 줬다. 울먹이는 나는 알겠다고 말을 하고 약과 주사를 맞고 집으로 왔다. 선생님에게 들었던 말을 엄마에게 말했지만 이 역시 엄마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때 엄마 그 태도가 원망스러웠고 섭섭했다. 엄마 곁에서 처음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던 같다. 어렴풋이 생각나는데 그때 그 감정은 이러했다. '내가 사라지면 나라는 존재를 알아줄까?'라는 무책임한 생각을 했다. 약을 먹고 나니 피부염증은 가라앉았고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내 몸을 내가 더 알아야 하던 그때 누군가가 바라봐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거 같았다.


약을 먹고 피부는 원래의 피부로 돌아왔고 남들도 다하는 귀를 뚫고 싶어서 귀를 뚫었다. 근데 여기서도 염증으로 엉망인 된 귀는 가렵고 쓰라렸다. 결국 두 번 정도 귀를 뚫고 염증으로 고생한 다음 더는 귀를 뚫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액세서리란 액세서리를 목에 팔에 귀에 발목에 해보았지만 피부염증은 점점 심해졌다. 금속이 달린 옷을 입게 되면 등이든 배 부분이든 팔이든 상관없이 붉은 반점과 함께 가렵고 긁다 보면 고름과 피가 뒤범벅이 되고 만다.


내 몸의 이런 반응을 알게 된 것은 청바지 훅이 있는 옷을 입을 때마다 심해지고서야 알게 되었다. 내 몸은 금속 알레르기, 쇠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말이다. 나에게 액세서리는 그림의 떡이 되었고 이쁜 시계를 갖고 싶어도 가지지 못하는 내가 되었다. 쇠란 쇠는 몸에 대기만 해도 붉은 반점이 올라오고 심각하게 가렵다. 금이나 은으로 된 액세서리는 화려하지 않고 이쁘지 않다. 액세서리만의 아름다운 특징은 내 몸과 맞지 않아서 늘 안타까워했다. 


누가 그랬다. "네 몸은 비싼 몸이네. 금이나 순은 아니면 안 되고. 누가 선물을 줬는데 그게 가짜면 금방 알겠다" 말했다. 정말 나는 가짜는 몇 분만에 알게 된다. 가렵고 붉은 반점이 올라오면 그건 금속이자 쇠라는 의미. 도금으로 된 액세서리를 할 수 없다. 금 아니면 안 되는 몸을 가져서 어떨 때는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어떨 때는 단점이 된다. 값이 싼 액세서리로 멋을 부릴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청바지나 징이 박힌 옷이나 신발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는 편인데 청바지는 없으면 안 되는 필수품 옷이니만큼 옷에 금속이 붙었다면 속옷을 갖춰 입어야 한다. 여름에는 속옷을 갖춰 입는 것이 번거로워 금속이 있는 부분에 헝겊을 대고 바느질을 할 때도 있었다. 너무 이쁜 옷인데 아픈 몸 때문에 못 입고 옷장에 넣어두어야 한다는 것이 아까워서 시간 내어 바느질을 했던 기억이 난다. 


금속 알레르기는 경추 1,2번 골절 수술을 하면서도 위기로 찾아왔다. 두 뼈를 이어주는 도구가 바로 나사였다. 혹여 금속으로 이루어진 나사이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때 교수는 놀라며 말했다. "사빈 씨 수술을 위해 쓴 나사는 금속이 아니에요. 죽을 때까지 몸속에 있는 나사라서 염려할 필요가 없어요. 안전한 나사니까요"라고. 20년 흘렸지만 몸속 안에 있는 나사는 말썽을 부리지 않고 있다. 참 다행이다.


내 몸이 일으키는 반응을 알아차리는 건 쉬운 일인데 왜 그렇게 시간을 보낸 건지. 시간이 제법 흐르고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고서야 몸이 왜 반응하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알아주는 것만큼 사랑하는 거 같다. 남이 먹고 싶어서 먹는 음식이 아닌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하듯 내가 나를 알아가는 그 순간 가장 행복하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기분이랄까. 지금도 진행 중이다. 뭐를 좋아하고 뭐를 싫어하는지. 가슴이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들을 하다 보면 부작용은 몸에서 알려준다. 두통이 오거나 피부발진이 생기거나 뭐가 됐든 알려준다. 


너의 몸 제대로 챙기라고 알려준다. 오늘도 난 내 몸이 싫어하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가장 적합한 것들을 골라한다고 생각한다. 쉬고 싶으면 쉬고 글이 쓰고 싶으면 쓰고 노래가 듣고 싶으면 노래를 듣고 노래가 부르고 싶으면 큰소리를 내어 불러본다. 스트레스가 쌓여 두통이 오면 그 이유를 찾아 글로 풀어본다. 굳이 신경을 쓰면서까지 스트레스받을 일이 뭔지를. 아주 예민한 몸을 가진 난 참 소중하고 사랑한다. 예민하지 못했더라면 바보처럼 살았을 거 같다.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못했을 것이고 '나 이거 하면 피부 발진 생겨' '나 이거 하면 복통이 생겨'등 다양한 방식으로 싫은 일을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장점으로 다가왔다. 아름답고 이쁜 액세서리를 욕심내지 않고 살아가는 건 여자로선 곤욕스럽지만 내 몸이 원하지 않으니 포기하게 된다. 며칠 전 너무 이쁜 귀걸이를 하고 외출했다가 몇 분 지나지 않아서 귀가 간지럽고 아팠다. 결국 액세서리 귀걸이는 옷 주머니에 들어갔다. 스와로브스키 역시 액세서리라서 백화점 가서 구경만 한다. 


컨디션이 좋으면 하루 종일 액세서리를 착용해도 괜찮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액세서리를 착용하면 곧바로 알게 되는 것이 참 신기하다. 나에게 일어나고 반응하는 몸이 아주 정직하다. 예전에는 그 반응을 무시했다면 지금은 즉각 반응하며 대처한다. 그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더는 아프지 않고 더는 내 몸을 혹사시키지 않으니까. 오늘도 난 액세서리 구경하며 눈호강만 한다. 이걸로 대리 만족한 셈이다. 이걸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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