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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Mar 27. 2022

치열했던 남대문 밤 시장에서 삶을 배우다

엄마 에세이

30대 후반, 평범한 일상에서 치열한 삶에 발을 담갔다. 그때를 생각하면 왜 내가 힘든 의류 사업을 선택했을까 나에게 자문했다. 그때 그 상황에서는 의류 사업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 못 된 방법인걸 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으니깐.


아픈 몸을 이끌고 밤 시장을 가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아동복은 동대문보단 남대문이 훨씬 많다. 아니 남대문이 아동복 시장이라고 말하는 게 맞다. 처음 밤에 서울을 가니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감각에 맡기고 옷을 구경했다.


사전 답사부터 시작했다. 검색을 하니 주니어복이나 유아복은 잘 생각해서 매장을 오픈하라는 말이 참 많았다. 그들이 하는 말에 공감 안 간 건 아무래도 내가 직접 발을 담그지 않았기에 당연한 거였다. 해봐야 안다. 그들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말이다.


동네 사전 답사부터 남대문 시장조사까지 했지만 경제가 좋지 않았던 해였다. 나름 열심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참 많은 것이 생각보다 판이하게 달랐다. 옷 장사가 처음이다 보니 남대문 사장들에게 많이 배우기도 했다. 재고가 남아서 다른 옷으로 교체하면 안 되냐고 말했다가 남대문 사장에게 호되게 혼난 적이 있었다.


초보 사장이라서 그들에게는 애송이로 보였는지 모르겠다. 시장판에 뼈대가 굵은 그들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할지 감을 잡고 있었다. 어떨 때는 단가를 올려서 판매를 하거나 잘 나가지 않은 재고를 떨이로 팔거나 아니면 고미로 (전 치수를 다 구입하는 거) 가져가라고 안 그러면 옷을 주지 않겠다고 한 사장도 더러 있었다.


잘 나가는 도매집 옷은 온라인 시장에 깔리면서 옷을 잘 주지 않았다. 아니 주면서 몇 가지 당부를 했다. 반품 불가, 치수 교환 불가, 불량 교환 불가 등 다양한 불이익을 나에게 떠 넘겼다. 그 대신 단가를 낮추어 물건을 땠었다. 


처음에는 친정엄마와 함께 남대문을 다니며 옷을 구경했고 괜찮은 옷을 몇 가지 구입하면서 그들의 속셈을 파악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그들을 보고선 파악할 수 없었다. 1년여간 시간을 보내고서야 그들의 장사 속은 눈 속임이 많았다. 내가 모르는 부분에서 속이고 속히는 기분이랄까.


보세 옷은 재고를 떠안고 장사를 해야 한다. 옷이 어찌 보면 현금이었다. 재고가 팔려야 현금이 돌고 그 돈으로 다음 옷을 내릴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을 장사한 지 1년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럭저럭 매장을 운영하다 메리스 사태가 터지면서 오프라인 매장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2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비싼 교육을 받았고 배웠다. 값을 치르지 않고 인생을 배운다는 건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것이 첫 독립 후 시작한 옷 매장이었다. 남들이 하면 다 쉬워 보이고 어려움 없이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니다.


다양한 문제로 우여곡절이 있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하니 인생이 즐거운 거 같다. 그 당시 사업 실패를 하면서 두 번 다시는 의류 매장은 하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었다. 지금은 도매상가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겁을 먹은 건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올해 사주풀이를 보는데 올해부터 옷, 꽃, 가구 등 시작하면 잘 된다고 했다. 근데 의류 부분에서 그분에게 말했다. "저 몇 년 전에 의류 사업하면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시작했는데 실패를 했거든요" "그건 운대가 안 맞아서 그렇지. 지금은 좋아"라는 말을 듣고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보내버렸다.


사실 내가 옷을 좋아하는 건 맞지만, 그건 내 옷을 좋아한 거지 매장을 하면서 옷을 판매하는 것을 좋아하지  지 않았다. 판매하는 옷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제법 중노동에 가까운 그런 직업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서울에 올라가서 신상을 가져와야 했고 남대문 사장 눈도장을 찍어야만 신상이 나오면 샘플로 받을 수 있었다.


매장은 또 어떠한가? 매일 디스플레이를 새롭게 해야 하고 손 끝에서 나오는 미를 최대한 극대화해야 했다. 여기서 나는 재능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손 끝에서 나오는 미적 감각이 없었다. 대충 디스플레이를 해놓고 힘들어 주저앉고 말았다.


난 결론을 내렸다. 내가 옷을 입는 걸 좋아하는 거지, 장사를 하며 남의 옷을 입히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벌써 10년이 흘려버렸다. 장사를 그만 둔지가. 세월은 참 빠르다. 엊그제 시작했던 사업이 벌써 10년이라니. 난 제법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았다,


인생을 살면서 굳이 겪지 않아도 될 그런 경험까지 하고선 내 자리를 찾았다. 많이 돌고 돌아온 이 길이 가장 나와 맞다. 사업을 해봤으니 더는 오프라인 사업은 신중하게 생각을 하게 되었고 섣불리 행동을 하지 않게 되었다. 참 다행이다. 이 정도 경험으로 남대문과 인연이 있었고 옷 한 벌 도매가격이 얼마인지 알게 되었다.


이제는 소매가격으로 옷을 사 입는 소비자이지만 이 정도 퀄리티라면 이 가격이 비싸다는 정도는 알고 있어서 쉽게 구매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신발, 액세서리 등 다양한 물건을 취급해봐서 단가를 안다. 단가를 아니깐 쉽사리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자 장점이다.


남대문이든 동대문이든 시장 상인은 잡뼈가 굵어서 몇 달 동안 그들과 동고동락을 하면서 시장 파악을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 우선순위를 모르고 덤벼든 나는 빚만 안고 좌절했지만 말이다. 값진 교훈에는 그만큼 비용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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