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빈 작가 Mar 24. 2022

희귀병 호산구는 무서운 병이다

경추 1,2번 골절 수술 후 합병증 중 하나가 바로 호산구였다. 20년 전 이 병명을 들었을 때 '뭐 이런 병이 다 있어' 신기했다. 6개월 동안 병원 생활을 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다른 병이 찾아온다. 나 역시 그랬다. 염증 수치가 떨어지지 않고 40도라는 고열조차 잡을 수 없었다. 병원에서는 난감한 상태였고 가장 센 항생제를 처방했다. 제대로 먹지 못하는 환자에게 독한 약을 처방한 것 자체가 잘못된 치료였다. 새벽에 도착한 독한 항생제는 환자 입을 열지 못했다.


애원하는 엄마 말에도 끔쩍하지 않았다. 그 약을 먹으면 내 몸은 하염없이 아프고 또 아팠기 때문이다. 하루에 두 번 채혈은 지겹다 못해 없는 혈관을 찾아야 하는 고통만 있을 뿐이었다. "선생님 도대체 채혈은 왜 하는 거예요. 채혈하면 뭐를 알 수 있는데요. 호전은 둘째치고 계속 아프기만 하잖아요" 누워서 죽음 사람처럼 지내던 내가 화를 내며 물었다. 당황하던 선생님은 염증 수치가 왜 오르는지 검사하기 위해서라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냥 의무적으로 하는 검사였다.


"사빈 씨 혈액에서 이상한 걸 발견했습니다. 부산에 있는 병원에 의뢰할 수 없어 서울에 의뢰했어요. 아마 이것이 단서가 될 거 같아요. 염증을 유발하고 고열을 일으키는 원인을 찾을 거 같아요"

선생님 말에 기뻐해야 하는데 나는 더 절망스러웠다. 수십 번 검사를 의뢰했지만 이렇다 할 병명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며칠 후 교수는 검사 결과에 대해 말했다. "지금 사빈 씨 혈액에서 발견한 이상한 수치는 호산구가 말썽을 피운 거 같아요. 이건 진료과가 다른데 일단 담당 교수가 오기 전에 말하는 겁니다. 호산구 수치가 너무 높아서 열이 났고 염증 수치가 하늘을 높은 줄 모르고 오른 거 같아요." "치료방법은요?" "호흡기 내과 전문의가 와 봐야 알겠지만 약으로 치료를 할 거 같아요. 숨 쉬기 불편하지 않아요?" "불편하지 않아요" "일단, 담당교수와 의논을 하고 병실을 옮기던지 아니면 신경외과에서 치료를 하면서 경과를 지켜봐요. 아직 경추 1,2 회복이 안되었으니깐요"


병원생활 3개월쯤 드디어 알게 되었다. 이유 없이 아프고 아픈 이유를. 호산구 수치가 뭔지 모르고 호흡기 내과 교수 회진으로 이어졌다. "선생님 호산구가 뭐예요?"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이건 백혈구 안에 있는 또 다른 세포예요. 이해하기 쉽게 말해줄게요. 백혈구 안에 있는 세포가 많아요. 그중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서 수치가 높게 나왔거든요" "수치요?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는데요. 치료방법은 있습니까?" "일단 약을 먹고 수치가 내려가는지 확인해보죠"라며 얼렁뚱땅 답을 하고 교수는 가버렸다.


이건 뭐를 어떻게 하라는지. 그날 오후가 되었다. 갑자기 찾아온 의사 선생님들.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그들을 맞이했다. "사빈 씨 폐부분에 물이 찼어요. 이대로 두면 안되는데. 숨이 차지 않습니까?" 그들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지금 회진 시간이 아닌 거 같은데요. 숨 쉬는데 지장 없어요. 폐에 물이 왜 차는 건데요" "아, 그게 호산구 수치가 오르면서 비정상적으로 폐에 물이 차는 거 같아요. 관을 연결해서 폐에 구멍을 뚫어야 할 거 같아요" "아, 진짜 뭐라는 거예요. 저 숨 쉬는데 괜찮다고요. 관을 왜 달아요. 정말 저를 제발 내버려 두세요"라고 절규했다.


사실 그때 병원이 지긋지긋했다. 온갖 의료기구를 들이밀며 몸에 구멍이란 구멍을 내면서 치료하는 의술이 역겨웠다. 진저리가 쳐졌다. 화를 내는 환자를 보던 의사들은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럼 폐에 관을 연결하는 건 경과를 보죠. 약을 먹고 있으니 좋아질지도 모르고 환자분이 숨 쉬는데 지장 없다고 하니까요"


하..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그다음 날 채혈과 일반적인 검사는 여느 때와 같았다. 엄마가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간호사가 말했다. 교수님 면담을 요청했다고. 이내 엄마는 교수를 만나러 갔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체 산소 호흡기를 꼈다 벗다는 반복 했다. 왜냐하면 숨 쉬는데 지장이 없었고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의사가 들어오면 산소호흡기를 해야 했다. "사빈 씨 의사 말 너무 안 듣네요. 제발 약을 넣을 때만이라도 호흡기를 해주세요"라고 애원했다. 산소 호흡기 안에는 폐를 확장하는 약이 투입되고 있었다.


상기된 엄마 표정을 읽은 맏이는 엄마에게 무슨 일로 교수님이 보자고 했냐고 물었지만 엄마는 집에 일이 있어 갔다 오겠다는 말만 했다. 그때 나의 사망선고를 듣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엄마였다. 잘 지내는 딸이 곧 죽는다는데 어떤 부모가 정신을 차릴 수 있었겠는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 내 상황은 아주 심각했다. 치료를 하고 있지만 불투명한 치료였다. 폐에는 물이 차고 있었고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고 있어서 난감했던 의료진이었다.


"어머님 이런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저희는 최선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빈 씨 상태가 좋지 않아요"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원인을 찾았다고. 원인을 찾았으면 치료하면 되는 거잖아요" "이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요? 고심을 많이 했습니다. 호흡기 내과 교수님과 의논을 했는데요. 호산구라는 수치가 문제가 됩니다. 사빈 씨는 일반인보다 100배가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어요.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호산구 수치가 내려가지 않고 계속 치솟으면 뇌나 심장에 무리가 가서 죽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얼글이 새하얗게 변한 엄마는 안절부절이었다고 했다. 지금은 치료하는 과정이지만 호산구 수치가 안정을 찾지 않으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을 남기고 의사는 그 자리를 떠났다고 했다. 환자는 멀쩡한데 수치상으로 그들은 내 수명을 점치고 있었다. 그렇게 치료는 신경외과 치료가 아닌 호흡기 내과 치료가 중점이 되었고 스테로이드 약과 또 다른 약으로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유 불명인 희귀병 호산구는 나를 괴롭혔다. 내가 아팠던 병이라서 20년 전 기억을 떠올려 블로그에 글을 썼다. 최근에 호산구 증가증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20년 전에는 드문 병이었으니까. 호산구라고 검색하면 수많은 의료지식이 있다. 나조차 의사들이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아 검색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앓고 있는 병의 특징을. 


"사빈 씨 어렸을 때 개구리를 먹은 적 있나요?" '네, 있어요. 밥을 안 먹어서 식용 개구리를 엄마가 먹였다고 했어요" "그게네요. 호산구 수치가 오른 이유가" 식용 개구리는 어릴 때 먹었던 음식이다. 근데 20년이 흘러 병으로 나타나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빈 씨 대변 검사 결과 기생충이 발견되었습니다. 기생충으로 감염이 된 거 같기도 하고요"


의사들은 나라는 사람으로 온갖 검사를 했던 거 같았다. 백혈구 세포 중 호산구 증가가 가져다준 파급력은 대단했다. 두 달 후 호산구 증가증이 제자리로 되돌린 후 퇴원했다. 퇴원 당시 호흡기 내과 교수는 그랬다. "앞으로 외래에서 봅시다. 다행히 수치가 내려가고 있어요. 참 잘했어요" "감사합니다. 약은 계속 먹어야 하죠' "당연하죠. 수치가 내려가고 있다는 건 좋은 증상이니 약 거르지 말고 먹도록 하고요. 한 달 뒤 봅시다" 


나는 석 달 간의 길고 긴 투병을 하면서 희귀병 호산구를 안고 퇴원했다. 물이 차던 폐는 정상으로 돌아왔고 염증 수치와 호산구 수치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석 달만의 바깥세상. 그러나 한 달만에 재 입원을 하게 되었다. 목에 수술한 부위 염증이 터졌고 신경외과 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다. 길고 긴 병은 질기고 질겼다. 투병은 석 달을 더 하고서야 온전한 내가 되었다.


호산구 증가증으로 내 안에 있던 세포들은 비정상이었다. 호산구 증가증이 또 다른 염증을 일으킨 거 같았다. 석 달 동안 염증과의 사투를 벌였다. 길고 긴 투병은 끝이 났지만 외래 진료는 끊을 수 없었다. 호산구 증가증은 이유 없이 찾아온다. 불시에 찾아와서 증상이 없었다. "사빈 씨 한 달에 한번 보던 진료를 석 달에 한번 보고요. 약을 줄이죠. 그리고 석 달 후 경과를 보고 다시 처방합시다" 석 달이 지나고 병원을 찾았고 일 년 동안 석 달에 한번 외래 진료를 보았고 그다음 해는 6개월 한 번 외래를 보게 되었다. 몇 년이 흐른 후 일 년 후 보자고 했다. 약을 끊은 채로 혈액검사를 하자는 거였다. 일 년 후 교수님은 3년 후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3년 후 병원을 찾았고 교수님은 피검사 결과가 좋다며 더는 오지 말라고 했다.


완치 판정을 받았다. "선생님 재발하면 어떡해요. 호산구 증가증 증상은 없나요?" "증상이 없죠. 지금처럼 지내시면 됩니다. 별일 없을 거예요" 말 끝으로 나는 호흡기 내과와 신경외과에게 이별을 고했다. 호산구가 발병한 지 20년. 아직까지 증상은 없다. 아니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병이라서 알아차리지 못하는 거 같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지내고 있다. 호산구 증가증 증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다리가 붓는 분이 있고 피부에 이상 반응이 보이는 분들도 있다. 


나는 염증 수치가 내려가지 않고 치솟아 원인을 찾다 호산구 증가증이라는 병이 원인이라고 했다. 그래서 호산구의 이상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염증이 몸안에서 일으키면 몸은 반응한다. 뭐가 됐든 간에 비정상적인 반응이 찾아온다. 그때 무시하지 않고 혹시 호산구 증가증은 아닌가 의심하고 병원에 가면 된다. 나는 이렇게 정의 내렸다. 아프거나 증상이 딱히 없는 나라서 나만의 호산구 정의를 내려야만 했다. 


선생님조차 더는 오지 말라고 했고 딱히 증상이 없다고 했으니깐. 내가 나를 알아야만 몸의 반응을 알 수 있다. 오늘도 난 호산구라는 세포가 잘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지낸다. 이렇게 쓰니 또 다른 약 부작용이 있다는 걸 알았다. 


몸이 망가지면 원래의 몸으로 갈 수 없다. 면역체계가 그런 거 같다. 한번 무너지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갈 수 없다고 낙심하지 않는다. 조금 더 내 몸을 챙기기를 바라는 우주의 뜻이라고 생각하니깐. 둔한 나, 미련한 나, 바보 같은 나, 아픈데 아프지 않다고 거짓말하는 나에게 벌을 주고 살아갈 힘을 준다. 20년 전 건강이 무너지고 나니 사소한 몸의 반응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래야만 하고. 낙심은 건강에 해로우니 낙심을 희망으로 바꾸었다. 희귀병을 앓은 나만의 비법은 바로 희망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2년 가계부를 쓰게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