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양성 대장염을 위해 아름답게 여름을 맞이하리라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투병을 시작했고 계절마다 때때로 다가오는 몸의 반응은 참으로 놀라만큼 신기하다. 궤양성 대장염이나 크론병 환우라면 필히 느끼는 계절의 통증이 있다. 여기에 사람마다 다 다르니 맹시 할 필요는 없지만 나 같은 경우를 썰로 풀어보려고 한다.
워낙 입맛도 까다로운 데다 음식을 며칠씩 못 먹는 나로선 매 끼니가 힘들고 계절이 바뀌면 입맛이 사라지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밥맛이 좋아서 입맛이 좋아서 먹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서 먹는다는 표현이 딱 맞다.
어릴 때부터 조금만 먹어도 거부스러운 불편함이 있었다. 먹고 싶어 이것저것 만들거나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막상 음식을 보면 식욕이 감퇴되고 헛배가 불러오는 이상한 반응은 세 아이를 출산하고서 사라졌다 요즘 들어 조금씩 그 반응이 고개를 내민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보면 참 부럽다. 왜냐면 먹고 싶어도 위장에서 목구멍에서 거부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빠졌기에 살찌는 것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20대 시절 몸무게가 40킬로였고 옷 사이즈가 때로는 44를 입을 정도로 마른 상태였다. 딱히 즐겨 먹는 음식이 없었고 먹는 걸 즐기지 않아서 그럴 수 있지만 음식을 거부하니 몸이 병들었으리라.
20대 후반, 투병을 하고 첫 아이를 출산하면서 모유수유가 본격화될 때 열심히 밥을 먹었던 탓에 없던 식욕도 생겼고 살도 붙기 시작했다. 30대 초반 두 아이를 출산하고 몸무게는 생애 처음 경험한 숫자를 찍었다. 바로 5였다.
그리고 30대 후반,
또 다른 투병으로 사경을 헤매며 살다 40대 초반에 늦둥이를 출산하고 나니 더없이 늘어나는 몸무게를 비롯해 부종이 생기기 시작했다. 몸은 한 군데 고장 나면 줄줄이 고장하는 건 기계와도 같은 원리리라.
폰이나 가전제품을 보더라도 하나가 문젠가 싶으면 주위에 부품까지 교체해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하물며 몸은 어떻겠는가? 몸을 함부로 사용했거나 학대했다면 언젠가는 몸이 반응을 한다.
어릴 때부터 복부 쪽이 냉했다. 냉한 몸을 가진 여자는 생리를 할 때마다 통증이 심하다. 손발도 유독 차가운 몸을 가진 나. 복부가 약한 탓에 따뜻하게 몸을 보호하지 못했다. 즉, 내 몸이니까 내가 함부로 사용을 한 것이다.
배를 만지면 냉장고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차디차다. 그러니 생리통이 심할 수밖에. 그러다 서른일곱에 병마가 찾아왔다. 너의 몸을 소중히 하라는 신의 메시지, 너의 몸을 살피라는 우주의 메시지가 도착할 때쯤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깨우쳤던 해였다.
안 그래도 입맛도 밥맛도 없던 나에게 세 번의 출산을 겪으면서 입맛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20대 보다 30대는 많은 음식을 먹었고 40대는 상상하지 못한 몸무게를 자랑했다. 여기에 부종을 다루지 못해 살로 변한 것도 한몫했고 운동하지 않고 24시간 컴퓨터와 책으로 씨름하다 보니 더 많은 부종이 살로 변하고 있었다.
이때도 몸은 말을 했다. '너 그러다 병을 또 얻는다. 몸을 먼저 살펴. 지금 종아리와 온몸이 붓고 있지 않니! 그 반응을 알아차려' 온몸이 반응했다. 만약 이 시기를 놓치면 늘 그렇듯, 아프기 시작한다. 아프지 않기 위해선 나를 알아가는 일이 우선이어야 하는 나.
입맛이 좋아서 밥맛이 좋아서,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 그걸 떨쳐버리려고 많은 여성들이 다이어트를 하고 있지만, 그러지 않아도 되는 몸을 가진 나는 입맛도 밥맛도 먹고 싶은 음식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나 살은 찌고 있다. 아니 부종이 나를 떠나지 않고 곁에서 지키고 있다. 부종을 방치하지 말라고 운동하라고 쉴 새 없이 몸을 조여 온다.
30분 의자에 앉아 있어도,
소파에 앉아 있어도
종아리는 통 무처럼 변한다. 그리고 아프기 시작한다. 아프다 못해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볼 때마다 낯선 여자가 보여 더는 운동을 미루지 말자고 생각했다. 통 무를 간직한 여자, 그러나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운동을 하자며 다짐한 여자는 매일 근력 운동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입맛은 어느 계절보다 다운되어 있다. 배는 추출한데 먹고 싶은 음식이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이것저것 냉장고에 쟁여두지만 결국, 먹지 못하고 썩혀 버리는 일이 많아지는 계절, 바로 여름이다.
궤양성 대장염을 앓고 있는 나는 여름 계절이 힘들다. 겨울보다 여름이 더 힘들다. 더위도 타지만 크게 아플 때마다 여름이었다. 여름만 오면 현기증이 나서 강한 햇빛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뜨겁디 뜨거운 햇살이지만 복부는 차디 차다. 냉장고가 친구 하자고 할 만큼 차갑다. 몸은 덥지만 복부는 한겨울이다. 차가운 복부를 따스하게 한다. 찜질팩을 하며 여름을 보내지만 몸은 더워 땀을 흐르고 복부는 차가워 복통을 일으킨다. 복통은 배만 아픈 것이 아니라 설사, 체기, 소화, 식욕감퇴를 유발하는데 그게 요즘이다.
소화가 되지 않은 음식으로 복통이 유발되어 한없이 나오는 변은 배를 따뜻하게 해줘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맛있게 먹는 음식일지라도 소화가 되지 않고 속이 거북스럽다. 항상 대기 중인 까스활명수 한 병을 꺼내어 벌컥벌컥 들이켜고 그것도 부족하면 매실청을 꺼내 미지근한 물에 아주 진하게 타서 마신다. 그 후로 미세한 트림이 나오고 나면 어느 순간 배가 아프기 시작한다. 소화가 되지 않은 음식은 곧장 대장을 걸쳐 몸 밖으로 나오는 계절이 여름이다.
여름이 오면 주의해야 하는 일, 바로 식욕감퇴와 복통이다. 이것만 잘 다스리면 여름을 잘 보낼 수 있다. 예전에 궤양성 대장염 환우 카페에서 읽었던 글 중, 여름이 가장 힘들다고 하는 환우들이 많았다.
더워 땀은 흘리지만, 몸은 덥지 않고 춥다고 하니 에어컨 아래에서 복통을 줄이기 위해 따뜻한 찜질팩은 필수이다. 어디를 가든 여름에는 에어컨을 찾기 마련이지만 몸을 위해 두터운 옷을 입을 수 없는 계절이니 여름은 불편한 계절이다.
겨울은 그나마 다행인 것이 핫팩을 옷 위에 붙일 수 있고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옷을 겹쳐 입을 수 있다. 복통이 덜 일어나고 소화불량이나 식욕감퇴는 덜 하다. 겨울엔 잘 먹고 몸을 보호한다. 하지만 몸은 기계가 아니다 보니 그때그때 다르게 반응을 한다.
관해기로 편안하게 지내고 있지만 올여름은 복통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혈변이나 설사는 아니지만, 식욕감퇴로 소화불량이 생기기에 음식을 먹더라도 조심하고 소식으로 자주 먹기 위해 노력 중이다. 푸짐한 음식 앞에서도 마음껏 먹을 수 없는 현 상황이 불편하지만 내 몸은 내가 잘 아니까. 느려도 천천히 가기로 했다. 뭐든.....
봄과 가을은 아주 편안한 계절이다. 그러나 방심하면 안 된다. 몸속을 볼 수 없기에 늘 경각심을 갖고 애정을 쏟아야만 예방할 수 있다.
'아.. 아파' 할 때는 늦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내 몸이 뭘 원하는지 알아야만 예방할 수 있으니까. 즉, 작은 몸의 반응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있다.
5월까지 맛있었던 음식들이 6월 초여름이 접어들면서 맛 없어지는 지금, 약을 먹기 위해 끼니를 때운다. 그러나 살은 빠지지 않고 찌는 것은 부종을 다스리지 못해 생기는 살이다. 마흔 중반이 되고 나니 아줌마 근육, 아줌마 애교 살은 정점을 찍고 있다.
그러나, 미워할 수도 미워해서도 안 되는 나라는 존재 가치를 알아야 한다.
입맛도,
밥맛도,
맛있는 음식도 사라진 지금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몸 반응을 알아차리면서 건강하게 여름을 보내려고 노력 중이다.
사실, 나와 같은 환우들은 살이 쭉쭉 빠진다. 하지만 난 쭉쭉 빠지는 대신 영양분이 대장에서 흡수를 잘해 통통하게 살이 찐 건 의사들이 좋은 결과라고 한다. 그러니 살찌는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부종이 근육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쉼 없이 홈트를 하고 있다.
건강한 여름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