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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Sep 26. 2021

일미 볶음의  추억

요리 이야기

아주 오래전 일이다. 중학교 시절.. 그 시절은 도시락을 싸서 다녀야 했다. 급식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가방에 넣고 학교를 향한다. 때론 김치를 볶은 도시락이면 가방에서 냄새가 풀풀 풍겼다. 김치의 특유한 냄새.. 그게 창피해서 김치만은 도시락 반찬으로 넣지 말라고 말하지만, 엄마는 어김없이 넣는다.


이건 엄마 자신이 김치 없이는 밥을 먹지 못하기에 딸도 그럴 거라는 자신만의 고집으로 김치를 꼬박꼬박 넣어줬다. 그게 불만이라면 불만이라고 할까? 그러나 김치볶음밥을 싸주는 날에는 친구들에게 인기 폭발이 되어 내가 먹어야 하는 도시락은 사라지고 친구 도시락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그래서 김치볶음밥 도시락을 싸주는 날에는 다른 날보다 양을 두배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야 나도 맛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두배를 싸도 결국 내 입에 들어오는 김치볶음밥은 없다. 단, 한 톨도....


그리고 친구 엄마가 정성스럽게 싸준 도시락을 먹으면서 내 입맛에 맞는 도시락 반찬이 있으면 그렇게 황홀할 수가 없다.


내가 원하는 그 맛. 그 비주얼.


몇십 년이 지나도 친구 엄마의 요리가 생각날 때가 있다.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추억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도시락 추억이 일미이다.


결혼을 하고 친구 엄마 손맛을 내보려고 무던히 노력을 했고 기억을 했다.


 그 입맛을 그 향을 그 손끝 맛을...


친구 도시락에 일미가 있다면 친구에게 말하고 나의 반찬과 바꿔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일미만 보면...

엄마의 일미 무침은 내가 원하는 향도 맛도 아니었다. 마늘이 잔뜩 들은 그런 맛은 그 시절에는 어찌나 싫던지..


엄마에게 마늘 넣지 않은 일미 무침을 해달라고 말하지만 엄마는 자신이 하던 방식 그대로 일미 무침을 해서 도시락을 싸줬다. 그게 불만이라서 내가 결혼하면 꼭 일미를 내 방식대로 해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친구 엄마 손맛을 그대로 재현을 했다.


딱딱하지 않은 일미

부드러운 일미

감칠맛 나는 일미 무침은 일미 무침이라고 하지 않는다.

일미 볶음이라고 말한다.


친구 엄마 손맛을 기억하기란 정말 힘겨웠다. 수십 년이 지난 맛이기에... 기억이 가물가물, 맛이 가물가물하기 때문이다.


일미 한 봉지를 가위로 자르고 양념을 하기 전 일미를 기름에 볶는다. 노릇노릇 구워낸 일미는 다른 접시에 담아두고 양념을 끓인다. 고추장, 설탕, 물엿, 여기에 간장 한 스푼만 넣고 물을 약간 넣어서 졸이면 된다. 졸이는 과정에서 간을 보고 덜 된 간을 추가로 하면 된다.


잘박한 양념이 되면 볶아 둔 일미를 넣고 양념장에 넣어 살살 젖어준다. 여기에 불을 꺼야 한다.

불 켜놓고 볶으면 일미는 딱딱해져 먹을 수가 없다.


몇 번의 실패로 얻은 팁..


볶아 둔 일미이기에 일미와 양념장에 골고루 무쳐지면 참기름과 깨를 넣어주면 끝이다.


마요네즈를 넣어서 일미를 볶아보기도 하고

일미를 물에 담갔다 볶아보기도 했지만. 내 입맛에는 현재 지금 요리법이 가장 적합했다.

아니 30년이 지나도 친구 엄마의 일미 맛을 기억해서 만든 일미 볶음이 바로 지금 레시피다.


친정엄마도 현재 내가 만든 일미를 먹어보고 맛있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 내가 학교 다닐 때 이렇게 일미 요리를 해달라고 한 거야!"


엄마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친구 엄마 요리 레시피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이 레시피가 가장 내 입맛에 잘 맞다는 것에 추억을 상기시켰다.


갑자기 그 친구가 보고 싶다.


'개화야 잘 지내지! 같은 부산에 살면서도 우연히 마주치지 않네... 너희 엄마가 만들어주신 일미 볶음 나는 아직 기억하고 추억한다. 결국 내가 만들어 먹지만 이젠 내 아이에게 그 레시피를 맛보게 되었어. 일미 볼 때마다 네가 생각나고 너희 엄마가 생각난다. 고마워.. 친구야'


이렇게 볶아두면 냉장고 속에 넣어두었다 먹어도 말랑말랑하고 부드럽다. 일미 볶음으로 김밥을 만들어도 참 맛있다.


음식에는 다양한 추억이 있다. 그 추억은 내 재산이자 행복이다.

일미 볶음
일미 볶음
윤기가 흐르는 일미 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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