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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Sep 27. 2021

대장내시경 전야를 맞이하는 마음을 풀어내기

투병자 대장내시경 앞두고 불안한 마음 떨쳐버리기

대장내시경 전야 오후를 맞이했다.

2년마다 하는 대장내시경은 늘 생소하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져야 하는데 익숙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참 생경하고 생소한 검사. 잠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끝나 있지만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혈관이 얇고 없어서 혈관 주사를 놓을 때마다 고통이 따르고 대장 내시경실 침대에 누워 수면 주사를 놓기 전까지 심장은 터져 버린다.



그리고 그전에 장정결제를 마셔야 하는 큰 관문이 놓인다.

정말 먹어도 먹어도 익숙하지 않은 맛 때문에 고통스럽다. 어느 정도 마시고 나면 오심과 구토가 올라오는 건 나 혼자만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큰 위로가 되지 않는다.


피하지 못하며 즐기라고 하는데 원체 즐기지를 못한다. 지난번 검사 후 2년 반 만에 검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교수님은 검사를 미루지 말자고 단호하게 말했다. 별 탈 없으니 책대로 하지 말고 환자 상태에 따라 검사해주기를 바랐지만 그건 환자 마음인가 보다.


의사는 환자를 돌볼 책임감도 있지만 어떨 때는 돈벌이 상대라고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환자의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복통도 없고 혈변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어쩌다 간혹 본다. 그렇다고 음식이 먹기 싫거나 열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궤양성 대장염의 특이 반응이 현재로썬 없는데도 불구하고 검사를 하자고 하니 해야겠지만 내시경도 자주 하면 좋지 않다는 말을 익히 들었기에 반감도 있다.


그러나 궤양성 대장염이나 크론병은 이년에서 삼 년 사이 정기적으로 검사를 해야 한다. 내시경을..


아마 이 병을 가진 후 숙명으로 받아 들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장정결제는 죽기보다 먹기 싫다.

1시간 30분 간격으로 장정결제 1000미리와 물 500미리를 마셔야 한다. 집에서 물먹기 연습을 해도 1시간 30분 동안 물을 마시는 건 정말 힘들었다.



근데 생수와 약을 마셔야 한다는 건 속이 뒤집히는 일이다.


두 눈 딱 감고 마셔라고 주위에서 말하지만 그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제발 장정결제를 간단한 알약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위 내시경은 대장 내시경보다 간단하다. 자정 이후로 금식하면 되니까.


근데 근데.

대장은 아니다. 마시고 쏟아내고 마시고 쏟아내야만 한다. 그래야 깨끗한 대장을 마주할 것이고 용종이 있으면 때어내야 하기에 검사 5일 전부터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 제법 있다.


파부터 현미, 흑미, 선식, 씨앗이 들은 과일도 먹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대장은 우리 면역을 담당하는 기관이기에 철저한 검사가 필수겠지!

대장이 무너지니 온 몸에 각기 다른 병들이 찾아온다. 그러니 대장만큼은 사랑하고 존경해야 한다.

그래야만 환자가 아닌 정상인으로 살아갈 테니까.


나는 내 몸 반응을 무시했다. 오래전에..

무서웠다. 변을 볼 때마다 혈변이 보였고 변비는 달고 살았다. 대장에 좋다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무시했다. 변비가 찾아오면 변비약으로 대장을 다스렸고 혈변이 보이면 항문질환이라고 무시했다. 그리고 그리고 유산균과 섬이 섬유를 가급적 멀리 했다.


스트레스를 잘 받는 내면이 있어 온 세상 스트레스를 혼자 끌어안고 속으로 울부짖었다.

결국 내 몸을 장악한 병은 내가 무시하고 내가 싫어했던 장기에 찾아왔다.

이제는 부정할 수 없다. 더 사랑해야 하고 더 이뻐해야 하고 더 존중해야 한다. 나를 내가 사랑하고 이뻐하며 존중하면서 또 다른 내 안에 자리 잡은 장기들을 지켜보며 사랑하고 이뻐해야 한다. 그리고 존중해야 한다. 몸 반응을 무시하지 않고 곧바로 알아차리고 대체한다.


이렇게 되기까지 나는 내 몸을 확대했고 내 안의 내면을 확대했다.


'괜찮아. 다 괜찮아. 다 그렇게 살잖아. 너만 불행한 게 아니야.'

그렇게 속이 문 들어지고 육체는 병으로 물들었다.


이제는 아니다.

'지금 괜찮지 않아. 지금 아파. 나는 이제 불행하지 않아. 나는 지금 행복하거든. 다 그렇게 살지 않아. 나만 바조처럼 살았으니 남은 삶은 멋지게 살 거야'


내 몸을 확대하지 않고

내 안의 소리를 무시하지 않게 되었다.


병이 찾아오고 마음 가짐도 바뀌었고 성장했다.

9년째 투병 중이지만 어느 순간 입원을 하지 않았다. 길고 긴 투병이지만 입원만큼은 정말 힘들다.

근데 그 소망을 들어준 셈이다. 그것도 다른 이가 아닌 내가 그 소망을 이루게 했다.


내 안에 있는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정상인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이뻐하고

나를 존중하면

힘든 병도 사라지고 물러갔다.

맥을 못 추고 도망가는 병이었다.


근데 병원에서는 책대로 치료하려고 한다. 그건 당연한 거겠지만 나처럼 몇 년째 재발하지 않고 있으면 정상인처럼 내시경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의 바람을 글로 풀어본다.


새벽 5시부터 장정결제를 마시고 쏟아내기를 반복하다 보면 서울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내일 오후 2시 30분 검사실로 향하는 나는 수서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아침에 출발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보호자 1인만 가능해서 아이는 엄마에게, 나를 보호해 줄 한 분을 섭외하고 내일을 기다린다.

저녁 6시 이후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나를 내가 사랑하니까. 먹기 싫고 마시기 싫은 약과 고군분투한다.

나를 내가 이뻐하니까. 힘든 약을 마신다.

나를 내가 존중하니까. 멀고 먼 거리의 병원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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