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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Nov 06. 2021

음식으로 고치지 못한 병은 음식으로도 못 고친다 후속

투병 스토리 실천 편

11월 병원 진료를 보는 날이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학회로 자리를 비우고 다른 교수님에게 진료를 봤는데

주치의 교수님 말과 다르게 진료 본 교수님과의 대화에서 많이 놀랐다.


"저 혹시 대장 어디쯤에 염증이 있나요?"


"음, 직장이 다소 심한데 대장 곳곳에 염증이 있어요"


뜨악..


이게 무슨 말인가?


분명 주치의 교수님은 심한 편이 아니라고 했는데

지금 교수님은 대장 전체에 염증이 분포되었다고 한다.


근데 피검사는 정상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진료를 본 후 기차 안에서 곰곰이 생각을 했다.


병이 재발한 이유를 생각하니 몇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일단,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꼽을 수 있었다.



궤양성 대장염 재발 원인의 비중이 찾지 하는 건 바로 스트레스이다.

그것도 심리, 정신적 스트레스가 나에게는 가장 크다. 

올해의 무더위는 대단했다. 크론병이나 궤양성 대장염 환우들은 한여름이 참 버겁다. 에어컨을 안 틀자니 나도 가족들도 힘들고 에어컨을 틀자니 배가 아프다. 그렇다고 무더위에 핫팩을 붙일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겨울보다 여름이 가장 힘든 계절이고 뭐니 뭐니 해도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 바로 여름이다.


여름만 되면 큰 병에 시달려 생사를 오고 갔다. 그래서 더위가 오는 여름을 가장 무섭고 염려스럽다.

올해 무더위는 9월이 다 지나도록 너무 더웠고 갑자기 쌀쌀한 날씨에 몸이 아파하는지도 모르겠다.


여름에 일어난 힘든 역경 또한 있었다.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서류로 인해 고민을 하고 걱정을 했다. 이래볼까? 저래 볼까? 하며 전전긍긍한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몸에서 반응했다.


그리고 퇴고 과정에서 편집자와 나눈 글로 내가 아주 미흡하고 부족하다는 걸 증명하고 나서 글을 쓸 수도 없었고 읽을 수도 없었다. 자격지심으로 슬럼프에 빠져서 허우적거렸다. 거기에 번아웃까지 왔다.


뭘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걱정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나에 대한 회의감이 장악했다. 거기에 긍정보다 부정을 하염없이 끌어당겼다. 내 팔자를 한탄했고 속속 무책으로 아이도 방치하며 생각이 늘어지다 못해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글이 있어 살았으면서도 글 때문에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는 이미 여름이 지나 몇 개월이 지나고 현재 11월이 돼서야 피부로 와닿았다. 몸이 병들고 아파야만 '아차'하는 미련한 사람이 나라는 걸 잊고 지내고 있었다.


더 잘 되기 위해 내 글을 진심으로 조언한 과정에서 나는 나 스스로 하찮은 사람으로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치부하고 말았다. 그 결과,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삶을 살다 못해 부정 에너지를 끌어당기며 나를 비판하고 있었다.


내년 5월이면 투병한지도 10년이 된다.


 10년 주기로 아팠던 나를 알기에 올해부터 조심하고 조심하다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9월에 대장내시경을 했고 10월에 결과를 들었고 11월에 약을 추가해 스테로이드를 복용했으며 대장 전반적으로 염증이 생겼다는 말에 정신이 들었다.


예전에 다시 살아난 것처럼 그 힘을 발휘해야 했고 그 힘을 되새겨야 했다.


내가 다니던 절에서 기도를 했다. 무너지지 않게 도와달라고 지켜봐 달라고..

열심히 기도를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오면서 끔찍하게 보기 싫었던 원고를 뒤적이며 수정했다.


'누구나 처음이 있는 거야. 나 역시 글을 쓰고 책까지 출판하는 과정이 처음이라 미숙할 수 있어. 왜냐고. 나는 인간이고 사람이니까' 처음은 무엇이 됐든 미숙할 수밖에 없음을 자각했다. 자각한 후 마음이 가벼웠다. 머리가 맑아졌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니 모든 것이 편안해졌고 가벼워졌다. 


스스로가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지 않고 회피했던 여름과 가을 사이에서 병이 찾아왔다. 병이 찾아와야 깨닫고 부족한 나를 인정했다. 그걸 아마 우주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라는 사람을....


석 달 동안의 방황과 포기는 약이 되었다.










두 번째는 음식이었다.



한 여름에는 체력도 고갈되면서 육아는 해야 했기에 늘 요리하는 것이 힘들었다.

힘들다고 대충 먹었다.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국을 끓이면 거기에 밥 말아먹거나 엄마가 담아준 김치로 끼니를 때우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너무 힘들어 포장한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여기까지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의도대로 했다. 먹고 싶었기에 포장해서 음식을 사 먹었고, 신김치가 싫어 금방 담근 김치에 밥을 먹어도 꿀맛이었다.


근데, 먹기 싫은 음식을 먹어야 할 때가 있다. 아이가 먹는 음식은 내가 원하는 음식이 아니었다. 지극히 아이가 먹어야 할 음식이었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는 걸 인지하면서도 아깝다고 꾸역꾸역 밀어 넣었고 음식쓰레기 비용이 아까워 내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하루 이틀 시작된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다 보니 결국 탈이 났다. 매번 체했고 배탈이 났다. 그로 인해 설사가 잦았고 간혹 혈변이 보이는 일이 한여름이 끝나는 시점에서 시작되었다. 


아무리 생각을 하고 분석을 해봐도 음식을 억지로 먹은 그 시점에서 배탈과 복통이 잦았고 혈변이 간혹 보인다고 결론이 났다.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약으로도 고치지 못한다는 글처럼 음식으로 고치지 못한 병은 약으로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재발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자각하니 아이가 먹을 음식은 아이거라고 정하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억압하지 않기로 했다. 외식을 해도 늘 아이가 먼저였다. 칼국수, 샤부 샤부, 고깃집, 스파게티, 돈가스, 보쌈 외는 딱히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었다. 결국, 어른들이 희생을 하자고 매번 외식을 하면 위 음식을 돌아가면서 먹게 되었다. 하루는 샤부샤부 어느 날은 칼국수를 정했으니까.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때론 초밥이 먹고 싶기도 하고 때론 매콤한 아귀찜이나 해물찜이 먹고 싶기도 했으나 어른들은 아이를 위해 아이 입맛을 먼저 생각했다.


이 부분에서 내가 개선을 하고 먹고자 하는 음식을 찾아야 할 거 같았다. 항상 이 부분이 불편했고 불만이 많았다는 걸 궤양성 대장염이 재발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음식과 타협을 해야 할지 큰 고민에 빠졌다. 결론은 행복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우들은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다. 가려야 하는 음식이 많기에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한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아주 행운아다. 재발해도 특별나게 복통이 심하거나 설사를 심하게 하지도 않고 구토나 발열이 생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뭐니 뭐니 해도 혈변이 없어서 행복하다.


아무거나 먹어도 아프지 않다는 것이 행운이니 불평불만을 가지지 말자고 다짐했다. 개선해야 할 부분은 개선해야겠지만 말이다.












세 번째는 육체적 스트레스였다.




해도 해도 끊임없는 집안일은 내 손이 가지 않으면 순식간에 쓰레기통이 되고 만다. 어린 딸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그대로 방치하고 다른 놀이에 빠진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어지럽힌 방안을 볼 때마다 잔소리를 해댄다. 잔소리하지 말자고 다짐하다 왜 그렇게 짜증이 나는지... 아마도 내 몸이 아프니까 무의식적으로 아이에게 화를 낸 거 같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이 가지 않으면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고달팠다. 세탁, 요리, 청소 그 외 정리와 분리수거, 음식쓰레기를 비우는 것부터 누가 대신할 수 없는 상태고 가만히 놔두면 결국 거지꼴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 되고 만다. 하루 이틀 미루다 보면 일은 두배 세배로 늘어난 일은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출할 때면 두 손에 음식쓰레기와 재활용할 쓰레기가 양손에 가득하다. 늘어나는 쓰레기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니 하루에 한 번은 꼭 수거장에서 분리수거를 한다.


누군가가 내 손이 되어주고 발이 되어주었던 삶에서 내 손으로 다 이루어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조금은 어지러워도, 조금은 쓰레기가 쌓여도 스스로가 괜찮다고 해야 한다고 이번 계기로 깊게 가슴에 새겼다.






네 번째는 더위였다. 






한 겨울에는 옷을 껴입고 난방을 틀고 이불을 뒤집어쓰면 된다. 하지만 여름은 아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에어컨과 한 몸이 되고 선풍기는 필수가 되는 여름에는 무슨 옷을 입어도 열감이 생겨 헉헉거린다. 그러다 아랫배를 만지면 배만은 유독 차갑다. 냉기가 흐른다. 냉기가 흐르는 곳에 핫팩을 붙인다는 건 불난 곳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생각하고 핫팩이나 찜질팩을 올릴 수 없었다. 그 대신 속옷을 챙겨 입고 외출을 하거나 이불만큼은 배를 감싸고 배를 보호했다. 하지만 더운 여름에 차가운 배를 보호하기란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여름만 오면 힘겹다. 이래도 아프고 저래도 아픈 계절이 바로 여름이다.

될 수 있는 대로 따뜻한 음식 위주로 먹었다. 더위를 이겨야 했고 아픈 배를 달래야 했다.

무더위는 나에게 최악의 계절이자 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절이다.

즉, 장단점을 발견하는 계절이 여름이다.


아픈 몸을 조금 더 바라볼 수 있고 조금 더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지금은 쌀쌀한 날씨 덕분에 찜질팩도 하고 온열팩으로 차갑고 아픈 배를 보호한다. 하지만 여름은 정말 힘들다. 투병한 지 9년 차. 아직도 여름에는 우왕좌왕하며 차가운 냉면보다 따뜻한 만둣국을 먹고 얼음물 보다 미지근한 물을 마신다.


우유가 함유한 아이스크림을 먹되 얼음 빙과는 최대한 줄이고 에어컨 바람을 직접적으로 쐬지 않고 간접적으로 쐬기를 반복하며 에어컨 온도를 최대한 높여 지낸다.


하지만 결국, 10년 주기로 찾아오는 트라우마는 이번 여름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재발이 되었다. 심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방관해서는 안 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다 괜찮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랴. 지나가야 할 관문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순리대로 따를 수밖에..


편안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해야 했고 그 선택지는 여행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우리 동네가 아닌 다른 동네에서 색다른 경험과 보고 먹고 느끼는 일이 최선책이었다.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즐기고 아이도 즐길 수 있는 방법, 아이도 건강해지고 나도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 바로 여행이자 나들이고 산책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가보지 못한 부산 곳곳을 다닌 이유이기도 하다.


11월 진료를 본 후 이틀에 한번 꼴로 스테로이드 약을 처방해주었고 한 달만 더 복용하자고 했다. 이걸로 봐서는 병이 호전되고 있다는 뜻이다.


스테로이드 약을 한 달 복용 후 잦았던 복통과 설사, 혈변은 사라졌다. 교수도 아는 듯했다.

스테로이드 약이 효과가 있다고 해서 바로 끊을 수 있는 약이 아니라는 걸 익히 안다. 그래서 이틀에 한번 복용하라는 교수 말에 이해를 했다.


얼마나 더 복용할지 모를 스테로이드 약이지만 치료가 되는 약이 있어 참 다행이다.


궤양성 대장염이 재발한 이유를 분석하다 보니 마음이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병도 호전이 되고 악화가 되나 보다.


예전에도 알아버린 진리지만 또 한 번 깨우친다.


2021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에서 궤양성 대장염이 재발되었고 그로 인해 나 스스로를 다시 한번 자각했다.





흔들리면 있는 곳에서 벗어나야 하고 싫은 것은 억지로 하지 말자고..




억지로 하지 않았지만 타인이 준 싫은 소리와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한다.

나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지 못해 병이 고개를 내밀었지만 다시는 실수하지 않으리라고 머리에 가슴에 새겼다.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요.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약으로도 고치지 못한다는 진리만 되새기면 건강은 늘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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