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빈 작가 Dec 14. 2021

눈물에 젖은 콩나물국과 단무지 무침

옛 추억에서 벗어나기

아주 오래전 추억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았다. 그리고 바로 요리를 했다.

너무 밥을 먹지 않던 맏이를 위해 엄마는 고군분투를 하며 이것저것 요리를 해 밥상을 차렸다. 하지만 입이 짧고 먹는 걸 좋아하지 않은 나를 위해 엄마는 무척 고생을 했다.


그나마 먹었던 음식은 바로 콩나물국에 단무지 무침과 밥을 말아서 별미로 상에 내놓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콩나물국과 단무지 무침의 묘한 맛이 있었다.


입맛도 없고 밥맛도 없던 나를 사로잡았던 국이었으니까.

지금은 없어서 못 먹지만 어린아이이었던 나는 잘 먹지 않았다.





새콤달콤 무침 단무지를 맑게 끓인 콩나물국에 말면 오묘한 맛으로 입맛을 자극했다. 약간 개밥?처럼 보이지만 나름 환상적인 맛을 자랑한다.


우연히 추억의 음식을 마주하면서 내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아이 반응은 별로였지만....







그냥 먹어도 맛있는 단무지 무침과 콩나물국이지만 어느 날은 추억을 소환하게 된다.


누구나 추억으로 남겨진 음식이 있다. 나는 그중 콩나물국과 단무지 무침 음식이다. 한때는 보지도 먹지도 않았던 콩나물국과 단무지 무침은 평온한 마음일 때 찾게 된다.






지금은 먹거리가 많아 굳이 이렇게 먹지 않아도 되지만 80년대는 그나마 이렇게 먹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그만큼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없는 살림에 맏이를 위해 이런저런 음식을 했다. 그 마음을 이제야 알겠다. 


자식이 먹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고 든든하다는 걸.

아이가 내가 한 요리를 맛있게 먹고 엄지 척을 해주면 그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어떨 때는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어' 말을 할 때는 부자가 부럽지 않다. 만원으로 추억을 꺼내본다. 냉장고에 잠든 단무지를 꺼내 추억의 반찬을 만들면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이가 잘 먹기를 바라고 나는 더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친정엄마의 사랑을 고스란히 느꼈던 밥상이었다.


사실 아이는 이날 내가 먹던 음식을 먹지 않았다. 어리기도 하지만 오묘한 맛을 지극히 싫어하는 아이라서 그래서 아이가 원하는 음식을 따로 했다. 엄마의 노고를 알고 아이는 늘 칭찬을 해준다.


"엄마 요리는 최고야" "엄마 정말 맛있어" "엄마 이 맛이야" 하며 온갖 애교를 부린다. 이 맛에 매일 요리를 한다. 나의 희망이자 나의 행복인 아이를 위해.


친정엄마도 나와 같은 심정으로 매일 다른 찬을 만들어 먹이고 흐뭇해했을 거 같다. 지금은 늙어가는 엄마를 보며 아이가 되어 가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강하던 엄마였는데...


늙어가는 엄마 모습과 자라고 있는 아이를 보며 나는 오늘도 힘을 낸다. 아이를 바라보며 힘을 내고 엄마를 보며 사랑을 배우고 있다.


음식으로 배우는 사랑. 내리사랑이라서 엄마 사랑보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 더 깊지만 그렇다고 엄마의 노고를 모르는 척하지 않는다. 그 노고에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고 요리도 하며 아이에게 또 다른 추억을 만들고 있다.


편식쟁이던 맏이를 위해 없는 살림에 맛있는 음식을 한 엄마..

편식쟁이인 내 아이를 위해 힘들어도 맛있는 음식을 하는 나..


우리는 닮아가는 모녀다. 서로 입맛을 찾아주면서 성장하고 사랑을 배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흔의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