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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Dec 18. 2021

여섯 살 딸의 생일을 축하하며 아이가 나를 일깨워주다

생일을 챙기며 알게 되었다

12월 1일 여섯 살이 된 딸의 생일을 축하했다.

아이의 생일 때마다 트라우마처럼 되어 버린 부부싸움이 아이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마음 놓고 생일 축하를 해줬음 하는 바람이 있었다.


4살 생일 일 때는 외할머니 집에 했으나 우연히 마주친 이종사촌 동생과 사돈지간이던 이종사촌 동생의 외가 쪽 사촌 언니와 함께 우리 아이 생일을 축하했다.


작년에는 천안에서 외할머니와 단출하게 생일을 축하했고 올해는 모녀가 생일을 축하했다. 아이 생일을 위해 거제도 밸버디아 리조트를 계획했고 생일 전날 거제도에서 신나게 놀면서 힐링을 했다.


돌아오는 날 그러니깐 딸의 생일날이라 케이크도 사고 미역국도 끓였다. 친정엄마는 함께 생일 축하하고 싶다고 했지만 아이의 말에 어른들은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엄마! 내 생일 축하는 밤에 하고 싶어. 트리도 켜고 불은 다 끄고 케이크 위에 있는 촛불과 트리의 불빛, 그리고 미역국도 함께 올려서 생일 축하하고 싶다고"


"그럼 할머니는 못하는데, 할머니 저녁에 가게 가잖아"


"그래도 괜찮아. 난 상관없어. 그냥 밤에 불 다 끄고 촛불 켜고 미역국과 케이크만 있으면 돼"


버스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걸 당당하게 말하는 아이 때문에 어른들은 멍하니 웃고 말았다.

딸의 생각은 생일은 캄캄한 밤에 하는 거지 왜 낮에 하냐고 질문을 했다. 매번 환한 대낮에 생일 축하를 하거나 카페에서 생일 축하를 하다 보니 이번 생일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결국, 친정엄마는 우리 집 근처 정류장에서 내려 환승을 하고 자신의 집으로 갔다. 하룻밤의 일탈이지만 집이 아닌 만큼 불편했을 엄마는 집에서 못 잔 잠을 자고 가게로 출근한다고 했다.


그렇게 각자의 집으로 향하면서 아이는 밤을 기다렸다.


사실 이날, 나도 피곤했고 아이도 피곤했다. 12월 1일 그날 날씨는 올 겨울 처음으로 한파가 오는 날이었다. 뚜벅이 여행은 버스 시간을 맞춰야 했고 엄마 출근 시간을 맞춰야 했기에 초조했다.


결국, 30분 일찍 리조트에서 나왔고 헐헐 벌판에서 모자와 장갑 그리고 목도리도 없이 찬 바람을 얼굴과 몸으로 부딪히며 버스를 기다렸다.


시골 버스는 한 시간 간격으로 있었고 정류소도 몰라 일찍 길을 나선 탓에 아이와 할머니 그리고 나는 덜덜 떨었다. 그렇게 추위에 떨고 집에 오니 온몸이 노곤하고 경직된 몸이 풀리면서 졸음이 쏟아졌다. 아이를 끌어안고 잠을 잤는데 세상에 밤 9시에 일어나고 말았다. 


퉁퉁 부은 얼굴로 배고픔을 참고 생일 파티를 했다.



여섯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아이는 자신의 얼굴을 카메라를 보면서 자신의 얼굴이 왜 퉁퉁하냐며 물어봤다. 추위에 떨다 따뜻한 집에 오니 얼굴이 부을 수밖에...

요즘 미용에 관심이 많은 아이는 자신이 뚱뚱해졌다고 말한다.

어이가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생일을 축하해주는 것도 기쁘지만, 엄마와 자신만 있으면 된다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 생일상만 있다면 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고 했다. 이걸로 충분하다는 눈과 마음을 엄마인 나에게 표현을 했다.


조촐하지만, 아이는 조촐하지 않다고 했다. 외로울 거 같았지만 그건 엄마인 내 생각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케이크와 생일 상차림, 그리고 분위기가 있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니 축하해주는 사람이 많든 적든 상관이 없었다.


자신을 가장 많이 사랑하고 아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아이의 표현에 나는 다시 생각을 했다.


거창한 생일상이 아닌 자신이 가장 원하고 가장 좋아하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거라고, 단 둘이서 생일을 축하해줘도 충분하다는 걸 아이를 통해 배웠다.


예전에 나는 생일인데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고 축하해주기를 바랐고 그 축하를 받기 위해 지인들의 생일을 매번 챙겼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배신이라는 두 글자로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내가 베푼 만큼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내가 대단한 착각을 했다. 진심이 아닌 억지로 축하를 해줬고 받는 사람은 진심이 느끼지 못했다. 결국 내 생일이 되면 모두 외면하거나 잊어버리기 일수였고 생각지 못한 사람이 오히려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20대, 이런 이치를 깨닫고 받기 위해 억지로 지인의 생일을 챙길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설사, 남편이나 형제자매에게도 기대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챙겨줬다면 바라지 않았다. 


언젠가는 다른 곳에서 베푼 만큼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너도 축하해, 고생했어


예전엔 생일날은 내가 아닌 남이 챙겨주는 거라 믿었고 바랐지만 남은 그냥 남이었다. 사랑했던 남편 일지라도.


20대는 억지로 남의 생일을 챙기지 말자. 만약에 지인의 생일을 챙겼다면 나의 생일날은 그들에게 바라지 말자. 챙겼던 지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축하해줄 거라 생각했다.


30대는 사랑하는 남편이나 가족이 챙겨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를 낳은 친정엄마조차 기억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상처를 받았다. 맏이라고 이 집 저 집 행사를 챙겼지만 나에게 돌아온 건 무관심이었다. 상처가 또 상처를 내고 말았다. 아프다고 말 못 하고 속으로 끙끙 앓았다.


40대 생일은 그 누가 챙겨주지 않아도 스스로 챙겼다. 미역국도 직접 끓이고 선물도 내가 스스로 챙겼다. 지인 생일을 챙기고 상처 받을 봐에는 더는 챙기지 말자고 다짐했고 자식으로서, 형제로서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기본만 했다. 그래야 기대를 하지 않고 바라지 않았기에.


그리고 지금, 홀로서기를 하면서 아이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생일은 스스로 챙기는 거라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고. 본인 생일을 다른 누가 챙겨주기를 바라지 말고 스스로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고 기념하며 행복하면 된다고 아이에게 배웠다.


스스로 생일을 챙긴 지 6년째, 상처 받지 않고, 기대하지 않고, 바라지 않아서 좋다. 누구는 남편이 미역국을 끓이고 반찬까지 만들었네, 생일 선물은 목걸이이네 등 자랑을 들어도 부럽지 않다.


나는 내가 있어 행복하고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그런 나는 생일만큼은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저녁 한 끼여도 좋고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이라도 섭섭하지 않다. 내가 나를 챙기고 축하해주니까. 


이번 아이 생일은 거제도 리조트에서 호캉스를 하며 뚜벅이로 여행을 즐겼다. 그거만으로도 아이에게는 큰 추억이 될 것이고 먼 훗날 성인이 되어서 그런 날도 있었구나라고 회상하지 않을까?


친정엄마 사건으로 여섯 살 딸 생일을 영원히 기억에 남을 거 같다.



여섯 번째 생일 축하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생일 축하송을 부르지 않아도 노래를 틀어 함께 부르는 것도 행복하다.


흰 눈 같은 새 하얀 케이크와 촛불, 그리고 반짝반짝 빛나는 트리, 자신의 생일을 축하는 노래와 미역국, 너와 나만 있다면 즐겁고 행복한 생일이다.


요즘 1인 가구시대다. 혼자 챙겨야 할 기념일이 있을 것이고 스스로 챙기는 것이 쓸쓸하고 처량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을 사랑한다면 누가 축하해주지 않아도 쓸쓸하지도 처량하지도 않다.


그저 감사하고 축복하며 이 모든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이 들것이다.


나 역시 이번 내 생일은 스스로 축하를 했고 스스로 미역국을 끓였고 아이와 단 둘이서 신나게 놀았고 가장 갖고 싶은 선물도 나에게 했다. 이걸로 충분하니까.


누가 해주기를 바라면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원한다. 바라는 건 어쩔 수 없다. 안 해주면 스스로 자책하고 남을 미워하다 결국 나에게 상처를 주고 괴롭히고 만다.


더는 이런 불행의 연속을 끊기 위해 무던히 해온 혼자 스스로 챙기기를 했다. 그래서 그럴까? 아이 생일에도 단 둘이서 축배를 들어도 쓸쓸하거나 처량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이날은 아이 생일이기도 하지만 고생해서 아이를 출산했기에 나에게도 축하를 했다.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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