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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Feb 12. 2022

발라드 음악은 나를 일으켰다

엄마 에세이

20대는 주야장천 발라드만 들으며 살았다. 가사마다 나를 위한 노래인 거 같은 착각에 빠져서 눈시울을 붉히며 지낸 날들이 많았다. 슬픔을 노래에 위로를 받았다. 개 중 어깨를 들썩이는 댄스곡도 있었다. 신이 나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던 시기도 있었다. 이런 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8년 동안 내가 나를 지우고 살았다.


부모 그늘 아래 살면서 인생이 고달팠고 삶이 사련으로 다가와서 힘겨웠다. 음악 듣는 건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슬픈 노래는 내 곁에서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일상을 준다고

생각했다. 숨통이 트이려고 하면 험한 산이 내 앞에 버티고 있었다. 앞날이 막막하니 급기야 슬픈 노래를 좋아해서 인생이 꼬이고 꼬인다고 생각했다.


결국, 즐겨 듣던 음악을 가슴에 묻어두고 흥과 재미를 놓치고 그렇게 바위에 부딪히면 살았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가 잊고 살아가는 일부분을 어느 순간 아이를 통해 마주하게 된다.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곁에 있는 필기도구나 폰을 들어 한 단어로 요약한다.


내가 무엇을 놓치고 살았는지 자각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온 몸에 전율이 흐른다. 몇 달 전 놓치고 있었던 한 부분을 찾았다. 바로 음악이자 노래였다. 예전에 나를 힘들게 했던 음악과 노래를 찾아냈고 비로소 지금 편안하게 음악을 마주하게 되었다. 마음의 짐이었던 과거 상처를 들어냄으로써 저항과 치유를 반복하지만, 이 또한 나에게 성장이라는 단어를 안겨 주었다. 행복은 저 넘어 멀리 있지 않았다. 따스하게 전하는 노래 한 소절이면 충분히 행복했다.


예전에는 메말라 버린 땅에서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며 먼 길을 돌고 돌아왔다. 행복은 나에겐 머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참 어리석은 생각과 미련을 떨면 살아왔다. 메말라 버린 땅에 잔잔하게 쏟아지는 보슬비가 촉촉이 땅을 적실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없이 기뻤다. 예전 내 마음은 사막과도 같았다. 물 없이 살 수 있었다. 목이 마르지 않았다. 이렇게 살아야만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련한 짓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모든 걸 내려놓고 심지어 버리고 나니 황폐한 마음에 피가 흐르고 피고름으로 얼룩져 있었다. 새 살이 돋도록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고 약을 덧 발랐다. 수 없이 반복했다.


상처가 나을 때쯤 다른 상처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상처를 들춰낼 때마다 악취가 났다. 썩고 또 썩어 하천에서 나는 역한 냄새가 났다. 더는 맡을 수 없어 뚜껑을 덮고 덜덜 떨었다. 두려웠다. 하천물이 나를 덮을 거 같아서 무서웠다. 몇 달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참아 용기가 나지 않았다. 2년 동안 쓰다 지우기를 여러 번. 작년에 최악이었다. 더 많은 저항으로 머리가 아팠고 두려웠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수십 번 수만 번 아픈 마음을 들여다보면 상처를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니 상처는 조금씩 옅어졌다. 최근 상처는 아직 쉽사리 들여다볼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어떻게든 마주해야 이 긴 여행이 끝날 거 같다. 불행은 마흔 중반이여만 했다. 마침표를 찍어야만 했다.


더는 망설이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나는 오늘도 노트와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아픈 마음을 다독인다. 가장 슬픈 음악을 틀어놓고 이어폰을 내 귀에 끼어본다. 그리고 실컷 울어본다. 속으로 운다. 겉으로 울지 못하는 나는 속으로 울고 또 울며 조금씩 상처에 다가간다. 내가 좋아했던 건 나를 힘들게 하려고 찾아온 것이 아니다. 나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라는 세상의 소리였다.


마음 상처는 죽을 때까지 치유와 저항을 반복하겠지만, 이제는 숨기지 않을 것이다. 당당하게 나 답게 들어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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