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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Feb 23. 2022

집을 볼 때 서향을 봅니다

엄마 에세이

집을 볼 때 나는 채광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다음이 뷰이며 집안 구조다. 하지만 동생은 채광보단 우선순위가 인테리어였다. 동생은 조카 학교로 경남에서 부산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영상통화로 곧 이사 갈 집을 보여주었다.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건 채광이었다. 약간 어두운 내부가 보였다. 그 후로 뷰는 그나마 나무가 보여서 답답한 가슴이 뚫렸다. 동생이 보여주는 집안은 샹들이에며 인테리어를 보여주었다. 그때 알았다. 동생은 구조보단 내부 인테리어에 기준을 두고 있다는 걸.


내가 부산으로 이사를 하면서 집을 구하러 몇 집을 둘러보았다. 친정엄마가 괜찮지 않냐고 물어본 집은 내가 우선순위로 정한 그것만 맞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집안 내부와 꽉 막힌 뷰는 삭막한 내 마음을 더 답답하게 만드는 요소뿐이었다. 결국, 천안으로 발길을 옮기려 하는 순간 마지막 집을 보게 되었다. 아파트 꼭대기층은 웬만하면 선호하지 않는다. 여름에는 태양열로 인해 덥고 추운 겨울은 거센 바람으로 될 수 있는 대로 중간층이나 저층을 원했다. 나에게는 5층이면 딱 좋은 층이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더라도 가벼운 마읍으로 계단을 오르고 내릴 수 있으니까. 그러나 꼭대기층은 정말 고립되는 느낌이라서 최대한 보류하는 층이었는데 꼭대기층에 집이 나온 것이다. 구경이나 하자며 발길을 옮겼는데 집 안에 들어서는 순간 내 마음을 앗아간 채광이 문제였다. 오후 녘에 들어온 채광은 내가 꿈에서 그리고 있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가을쯤이었으니깐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주면 새하얀 커튼이 나플 나플, 한들한들 거리는 모습에 푹 빠지고 말았다. 오후 4시이면 서향의 우리 집은 채광으로 아름답게 물들이는 그 모습에 황홀해진다. 그다음 우선순위가 바로 뷰이다. 낙동강이 흐르는 강이 보였고 윤슬이 빛을 발하며 내 눈에 사진을 찍듯 스며들었다. 노을이 지면 아름다운 석양을 선물 줄 거 같았다. 우선순위 상위가 내 마음에 들었기에 일단 반은 마음에 빼앗기고 말았다. 내부 구조를 보는데 방은 작았다. 거실 역시 직사각형이라 쓸모없는 거실 모양 형태였다. 연식이 너무 오래된 집이라서 마음에 걸렸다. 초박한 시간만 아니라면 몇 군데 더 둘려보고 결정짓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채광이 내 마음을 뺏겨버리고 말았다. 내가 원하는 금액 역시 딱 맞았다. 10가지 기준에서 5가지가 맞았고 나머지 5가지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10가지 다 맞으려면 내가 설계를 하고 집을 짓어야 한다는 말에 5가지를 포기해야 했다. 방 세 칸에서 두 칸으로 거실 정사각형에서 직사각형으로 ㄷ자 주방에서 일자형 주방과 상부상이 없는 주방을 선택해야 했다. 살림이 많은 우리 집은 상부장 하부장이 필요했다. 이사하면서 상부장을 했다.


집은 오래도록 머물어야 하는 곳이라서 따스한 분위기가 풍겨야 내 마음이 움직였다. 겨울 오후 1시부터 채광이 들어오고 저녁 5시 기점으로 석양을 잠깐 보여주고 사라진다. 여름 오후 12시부터 채광이 들어오면 저녁 7시까지 오래도록 머물다 멋진 석양을 보여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향은 서향이다. 서향은 노을을 원 없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당연히 단점도 있다. 사계절 커튼 없이 살 수 없다. 채광이 직접적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밝다. 그래서 좋다. 오후 햇살만큼 사랑스러운 빛은 없으니깐. 다음 집 역시 서향이기를 바라며 바다나 강이 보이는 조망을 안고 있는 집이기를 바라며 내가 원하는 집이 내 눈앞에 나타나기를 기도해본다. 나처럼 올빼미 체질은 오후 채광을 빼놓을 수 없다. 아침 태양은 볼 수 없지만 지는 태양을 원 없이 볼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간다. 오후의 생동감은 오후의 햇살이 비치냐 비치지 않느냐에 따라 내 기분이 좌지우지된다. 지금 이 시간 오후가 참 사랑스럽다. 겨울 태양은 짧지만 강하게 여운을 남기지만 그 매력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 나 같이 글쓰기가 우선순위이면 오후 분위기에 기분이 업이 되거나 다운이 반복된다. 그래서 서향을 고집하는지도 모르겠다. 강이나 바다가 보이는 뷰를 선호하고 있다. 어릴 적 꿈을 채우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마음의 빈곤을 채우기 위함이기도 하다. 내 마음 빈곤은 나만 채울 수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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