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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Feb 22. 2022

일상에서 커피를 녹이고 싶다. 커피가 나를 힘들게 한다

엄마 에세이

불면증과 함께 찾아온 카페인 불면증은 나를 괴롭혔다. 9년 전 약으로 인해 불면증, 병으로 인해 불면증이 찾아왔고 병원에선 잠을 자야 한다며 수면 유도제를 처방했다. 아파서 잠을 못 잘 때가 있었고 때론 이유 없는 불안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에게 불면증이란 모르는 병이었다. 누우면 곧바로 잠을 잤던 내가 어느 날 온갖 잡생각과 불안이 나를 집어삼켰다. 밤이 무서웠다. 또다시 찾아온 밤의 위압감은 불면증으로 밤을 꼴딱 세고 해가 뜨는 걸 보고야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점점 몸과 마음은 쇠약해졌다. 세상 살아가는 이치대로 낮에는 활동을 하고 밤에는 잠을 자야만 아픈 나를 건강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따를 수 없었다. 과민반응과 불안으로 눈을 감으면 온통 까만 하늘만 보였다. 무서워서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러다 커피를 다시 마시게 되었다. 선생님은 음식은 가리지 말되 몸에서 일으키는 반응을 유심히 관찰하라고 했다.


커피를 내려 한 모금 마시니 눈이 번쩍 뜨였다. 두 모금 마시니 안심이 되었다. 세 모금을 마시니 안정을 찾았다. 이때만 해도 불면증은 심하지 않았다. 커피 양이 확연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20대 회사생활을 할 때 출근해서 믹스커피 한 잔, 점심을 먹고 동료들과 마시는 커피 한잔, 나를 아끼는 동료가 들고 온 아부성이 과한 커피를 마셨다. 그때는 커피로 인해 불면증이 찾아오지 않았다. 다만, 몸에서 커피 두 잔 이상을 받아주지 않았다. 동료의 성의를 봐서 억지로 마시면 심장이 뛰었다. 머리가 아팠다. 어디를 가든 커피를 주는 관습은 우리네 정을 확인할 수 있는 거지만 나에게는 해로웠다. 커피를 주는 사람들에게는 커피 빼고 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들은 알아서 음료수를 내어주었다. 20대를 생각하면 커피 소화력이 탁월하지 않았지만 불면증은 오지 않았다. 


근데 참 아이러니하게 30대부터는 커피만 마시면 불면증이 찾아왔다. 심리가 불안정할 때는 더 심했다. 동이 트고 붉은 해를 보면서 다시 잠이 들 때가 많았다. 저녁에 마셨던 커피 향은 나를 위로가 되었지만 그런 일상을 접어야 했다. 커피에 들어 있는 카페인은 나를 집어삼켰다. 잘 마시던 커피를 멀리해야 했다. 30대 후반부터 아마 커피를 마시면 두 눈이 말똥말똥했고 정신은 더 또렷해졌다. 눈의 피로는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눈을 감으면 온갖 잡념으로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10년째 커피를 마시는 일에 제약을 받게 되었다. 바쁜 아침이 아닌 느긋한 오후에 마시는 커피 한잔은 긴장하고 있는 나에게 주는 선물이지만 이 마저도 쉽게 이룰 수 없다. 오후 커피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침 일찍 마시는 커피와 함께 하루 종일 물 2리터를 마시며 카페인을 배출해야만 밤에 잠을 잘 수 있었다. 나는 내 몸을 테스트한다. 테스트한 결과 물을 마셔야만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커피머신은 이젠 장식품이 되었다. 드립 커피는 그나마 괜찮았다. 카페에서는 마시는 커피는 나를 죽이는 일이라 카페에서 다른 음료를 마신다. 예전처럼 마시던 진한 커피를 아무런 제약 없이 그리고 먹고 싶을 때 마셨으면 하는 바람을 기록해본다. 갑자기 바뀐 몸 반응. 일찍 일어나는 날은 커피를 마시는 날이며 물 먹는 습관을 들이는 날이라고 공표했다. 친정엄마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커피를 마시는 날에는 잡을 잘 수 없다고 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친정엄마와 여동생을 봤을 때 그리고 나를 봤을 때 생각이 많고 불안하는 사람에게는 카페인의 힘을 발휘되는 거 같다. 나와 엄마는 생각이 많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골똘히 생각하고 걱정한다. 그러나 동생은 반대다. 일단, 닥친 일이 아니고서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미세한 차이에 몸 반응은 참 다르다. 친정엄마는 온갖 걱정을 짊어지고 산다. 그걸 안타깝게 생각하는 나지만 나 역시 걱정이 많다. 예전에는 그랬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미리 걱정하고 일이 일어날 때까지 되새김질을 했다. 지금은 아니다. 아프면 병을 고치면 되고 일이 터지면 그때 바로 해결하면 된다는 마인드로 살려고 노력 중이다. 


노력하는데도 카페인의 반응은 쉽사리 떠나지 않는다. 커피를 사랑하는 나지만 커피를 가까이할 수 없는 지금이 씁쓸하다. 캡슐이 쌓인 창고를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쓰리다. 마음껏 마실 수 없는 일상이 속상하다. 커피 한 잔으로 여유를 찾고 싶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몇 시에 커피를 마셔야 하는지 계산하지 않고 마셔야 할 물 리터를 계산하지 않아도 되지 않는 그날을 기다리며 여유로운 커피를 마시는 나를 상상해본다. 오후 12시부터는 커피가 마시고 싶어도 참는다. 커피 대신 결명자차나 뱅쇼로 달래지만 커피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아주 약하게 그리고 아주 조금 마시는 커피는 갈증 그 자체다. 하루 두 잔까진 바라지 않는다. 하루 한잔 샷 추가할 수 있는 나를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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