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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Mar 15. 2022

동생이 다시 아프다.희망을 품고 다시 일어서기를 바란다

엄마 에세이

동생이 항암치료 1차를 마치고 한 달만에 오른쪽 다리에 마비가 찾아왔다. 동생은 조카 학교 때문에 부산으로 이사했다. 이사를 한 다음 날 갑작스러운 소식에 머리가 멍했다. 이때가 내가 확진자가 되어 자가격리를 한 지 4일째 되던 날이었다. 순조로운 이사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움직일 수 없었다. 오른쪽 다리에 마비가 왔고 오른팔은 조금씩 움직였던 것이 사라졌다고 했다. 놀라만큼 놀란 제부 전화는 일요일 서울로 가고 있다고 했다. 목이 아파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잘 자고 일어나서 마비가 왔다는 건 항암치료가 잘 못 된 건지, 아니면 항암으로 치료하는 과정이라고 긍정을 했지만 그건 말이 안 되었다. 항암 약이 몸에서 거부하면 마비가 오는 거지 몸에서 잘 맞았는데 마비가 오는 건 이상했다. 갑자기 아파 병원을 찾으면 응급실을 찾게 된다. 동생 역시 응급실을 찾았고 입원하기 전 코로나 검사를 했다고 했다. 근데 동생이 확진자라고 제부에게 전화가 왔다.


"너희들 자가 키트로 검사했잖아"

"응, 검사했는데 그때는 음성으로 나왔어. 근데 지금은 양성이라고 하네"

"그러면 환자는 어떻게 되는 거야"

"상황을 지켜봐야 해"

"너와 조카도 PCR 검사를 해야 하는 거 알지"


제부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월요일이 잔금을 치르는 날이었고 서울에 머물 수 없었던 것이다. 친정엄마에게 제부가 부탁을 했지만 엄마 역시 일을 하는 사람이라 당장 빠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엄마는 제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김서방, 일단 지켜보자. 확진자면 환자 옆에 있을 수 없지 않은가"라고


그 후로 제부는 전화가 없었다. 확진자에다가 항암 부작용으로 갑자기 마비가 온 상태라면 입원을 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정밀 검사를 해야 했다. 그러나 확진자라서 마비된 몸을 치료하는 것이 아닌 코로나 치료가 우선이었다. 음압 병동에 입원하는 동생을 보고 제부는 부산으로 향해야 했다. 확진자 환자는 그 누구도 곁에서 도와줄 수 없었다.


며칠 시간이 흐르고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궁금한 것들이 많았지만 그 아이의 상태를 먼저 살펴야 했다. 내가 먼저 확진자가 되었고 이미 경험한 터라 동생이 나처럼 많이 아프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동생은 다행히 나보다 덜 아파했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실시간으로 몸을 체크해주니 빨리 기력을 회복했던 거 같기도 하고. 여하튼 동생에게는 잘 된 일이었다. 만약 집에서 확진자라고 자가격리를 했다면 아무도 도와주지 못하는 상태에서 거동이 힘든 동생이 화장실이며 먹는 것조차 혼자 힘으로 못 했을 것이다. 마비가 온 그날 그 상태로 서울에 위치한 병원을 찾았으니 거기서 확진자가 되었다는 건 천운을 받은 듯했다.


동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확진자보다 더 힘든 건 몸 상태였으니까. 왜 갑자기 다리에 마비가 왔는지 그 당시 알 수 없었다. 의사는 음압 병동 밖에서 마이크로 의례적인 말만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자가격리가 해지되면 검사를 다시 하고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되었다. 환자인 본인도 멀리서 지켜보는 가족도 답답하기 마찬가지였다. 동생이 입원한 시점이 나는 오미크론 후유증으로 기침을 심하게 할 때였다. 동생까지 신경 쓸 여력이 되지 않았다.


음압 병동에서 일주일을 보낸 동생은 자가격리 해제 다음 날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고 치료를 다시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항암치료제로 인해 수술한 부위가 부었는지 아니면 수술해서 부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항암치료를 계속해야 한다고 했고 마비된 팔이 다리가 되돌아온다는 보장은 없다고 했다. 동생은 막막한 심정을 울먹이며 나에게 전화했다. 사실 보호자나 가족들도 어떤 치료가 맞는 건지, 병원에서 하는 치료가 최선인지 알 길이 없었다.


일반 병동 5일이 지났을 무렵 동생은 이런 말을 했다. "나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한 번 볼까?" 그전에 내가 이 말을 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서울에 있는 의료진이 최선이라고 했다. 그래서 옮기지 않겠다고. 그런데 지금 혼자 먼 곳에서 보호자 없이 지내는 병원생활이 서글펐던 같았다. 일반 병동에는 친정엄마 역시 확진자가 되었고 제부와 조카 역시 양성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 누구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간병인을 써야 하는 상태였다. 동생은 서글퍼서 분노가 올라왔다고 했다. 자신 마음속에 일으키는 분노는 결국 자신을 향하는 분노라는 걸 동생에게 말했다. 그리고 병원을 옮긴다는 말에 공감을 했다.


"나 역시 병원을 한 번 옮겼잖아. 한 병원에서 올인하는 것보다 다른 병원에서 진료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서울에 대형 병원 많잖아. 서울 세브란스 병원, 서울병원, 서울 아산 병원 등 대형 병원은 널리고 널렸어. 지금 너를 담당하는 주치의가 하는 치료 방법과 다를 수 있어. 다른 병원 진료 보는 건 나쁘지 않아. 의사마다 소견은 다르니까. 마비된 다리를 예전처럼 돌리지는 못하더라도 걸을 수 있을 만큼의 치료 방법은 있지 않을까"

"나 서울 말고 부산에서 진료 볼까?"

"제부가 그러라고 해?"

"아니 오빠는 서울 서울 그러지"

"너의 마음은 어때"

"난 서울보다 부산이 좋아. 너무 멀리 있으니 암담해. 빈번하게 병원을 다녀야 하면 부산이 낫지. 오빠는 직장을 다녀야 하는데 매번 결근하고 서울 가는 것이 미안하고 혼자 서울 병원에서 지내기가 쓸쓸하고 외로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부산에는 고신대, 동아대병원, 부산대병원, 백 병원 등 많잖아.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닌 진료만 보고 가능성 있고 자신감이 넘치는 의사 말에 희망을 거는 건 나쁘지 않아"

"오빠에게 내 의견 말해야겠어"

"그래 의논하고 퇴원하기 전에 필요한 서류 모두 발급받아야 해. 서류 때문에 서울을 찾을 순 없잖아"

"응, 언니야! 오빠에게 말할게"

"옮길 병원에 전화해서 진료 보려면 무슨 서류가 필요한지 물어보고 뇌 수술 명의 선생님에게 예약하는 것도 잊지 말고"


자매는 전화를 끊었다. 일반 병동을 옮기고 일주일 만에 퇴원을 한다고 했다. 지난주 토요일 퇴원하는 동생은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 곧바로 병원 진료를 보는 건지 아니면 거동이 힘들어 자포자기 한 건지 알 길이 없다. 동생이 잠수를 타는 이유는 두 가지다.


병원에 다니며 진료를 보느라 바쁠 수 있고 또 한 가지는 우울감에 그 누구와 소통하기를 거부하고 잠수를 타고 있을 확률이 높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억울하고 고단할 것이다. 젊은 나이에 마비가 왔을 몸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 동생은 다른 이보다 우울감이나 우울증이 자주 오는 편이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가족이 함께 있어도 외롭다고 하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 아이에게 어떤 위로를 하더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상황을 인정하고 다시 힘을 내야만 타인이 하는 위로나 격려가 마음에 귀에 가슴에 닿을 거 같다. 나는 잠시 내려놓는다. 그 아이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는다. 그 아이는 남편과 아이가 있지 않은가. 그것만으로 그 아이는 복이 많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걱정해주고 도와주는 동반자가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받고 위로를 하기를 바라며 나는 내 자리에서 묵묵히 하던 일을 하며 마음을 다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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