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빈 작가 Mar 14. 2022

맏이는 이기적인 삶을 살아기로 했다

엄마 에세이

봄이 오고 있다. 아니 봄이 왔다. 두터운 겨울 패딩을 벗어 버릴 수 있는 지금 날씨는 분명 봄이 오고 있다. 다른 해보다 봄소식을 일찍 전하는 남쪽 여기. 그렇지만 매화꽃은 활짝 피지 못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 덕분에 천천히 피고 있는 듯하다. 보일러는 틀면 덥고 보일러는 끄면 추운 이런 날씨에 면역체계가 무너진다. 아이 역시 내복을 입혀야 할까? 아니면 벗기고 겉옷만 입혀서 유치원에 보내야 할까? 생각도 엄마의 몫이다. 어제부터 시원하게 비가 내렸다. 단비 같은 비가 쏟아졌고 울진 산불이 잡힐 수 있는 비가 내렸다. 


일요일 아침 식사가 잘못된 건지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아이에게 "엄마 잠이 오는데 30분만 자고 일어날게" 아이는 거부했지만 일단 자야만 했다. 자고 일어났는데 현기증이 찾아왔다. 누워 있는데도 집이 빙빙 돌고 아이가 빙빙 돌고 있었다. 어지러워 울고 싶었지만 아이가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불안하게 쳐다본다는 걸 깨닫고 아이에게 "엄마가 많이 어지러운데 천혜향 줄래. 이거 먹고 어지러움이 사라지면 간식 사러 가자" 심하게 찾아온 어지러움증을 이기며 앉았다. 천혜향을 까는 동안 어지러워 안간힘을 쓰며 걱정스러운 아이에게 웃음을 보내며 참고 또 참으며 껍질을 깠다. 


천혜향을 먹고 나아지기를 바랐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다시 눈을 붙이고 나서야 어지러움과 현기증이 사라졌고 다행히 비는 그쳐 있었다. "여니야 엄마랑 마트 가자" 아이 손을 잡고 아이 간식을 샀고 포테이토 치킨이 먹고 싶다는 아이를 위해 치킨을 포장했다. 마트 가는 길에 위장이 울렁거렸고 이내 식은땀이 흘렸다. 이 증상은 급체이거나 체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지난주부터 아이 스케줄 따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루틴이 내 체력에 힘겨웠던 것이다. 아침 식사로 밥 3분의 1, 계란찜과 돼지고기 조금 구웠다. 저녁에 먹으면 소화가 안 되니 아침에 먹자고 에어프라이에  뒷다리 살을 구웠다. 


밥통에 밥이 없어서 돼지고기 뒷다리살로 밥 대신 보충했는데 여기서 잘 못 된 거 같았다. 고기를 먹는 내내 '배부르다' 말을 반복했다. 그만 먹어야 하는데 이대로 남기면 분명 먹지 않고 음식 쓰레기통에 버리지는 고기가 아까워 억지로 먹었던 것이 탈이 났던 것이다. 나에게 '억지로'는 최악의 단어다. 뭐든 '억지로' 하다 보면 탈이 나고 만다. 누구든 그럴 것이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아까워서, 타인 부탁을 거절 못해서 했던 모든 것들은 결국 탈이 나고 몸이든 마음이든 병이 들고 만다.


친정엄마가 좋아하는 칼국수 경우도 그렇다.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 않은 나에게 일주일 두 번 정도 칼국수 먹으러 가자고 전화가 온다. 아이가 좋아하니깐 엄마인 나는 내가 좋아하지 않은 칼국수를 먹으러 간 날에는 체하거나 목구멍에서 더는 받아주지 않는 걸 경험했다. 그 후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억지로 먹었더니 탈이 나는데 칼국수는 어쩌다 한번 먹자. 아니면 배달시켜 엄마 혼자 먹던지. 돈 쓰고 몸 아프고 이건 아닌 거 같아" 혼자는 절대 못 먹겠다는 엄마는 배달조차 하지 않고 먹고 싶어도 참고 참는다. 그걸 보는 맏이 마음은 짠해서 엄마가 먹으러 가자고 하면 두말없이 나서는 나를 뒤로 하고 나를 위해 억지로를 강요하지 않은 나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엄마의 짠한 반응에 내 마음을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지 않아서 대견스러웠다.


이제부터는 나를 중심에 두고 내가 먹고 싶은 것과 먹기 싫은 거,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분명하게 가족에게 말한다. 그래야 그들은 다른 사람과 먹든지 포기하던지 할 것이다. 나 역시 엄마가 좋아하지 않은 닭볶음탕이나 닭 요리를 같이 먹자고 하지 않는다. 엄마 역시 철저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먹는 엄마를 보게 되었고 엄마 자신에게 억지로를 강요하지 않는 걸 알게 되었다. 그동안은 엄마가 원하는 모든 걸 들어주려고 애를 썼다. 엄마는 자식이 셋이라도 맏이인 나에게만 기대며 모든 걸 해주기를 바란다. 


앞으로는 엄마가 원하는 모든 걸 들어주지 못한다는 걸 계속 인지 시키고 있다. "엄마는 엄마 혼자 몸이지만 난 여니를 키워야 할 의무가 있어. 내가 아프면 여니는 누가 키울 거야. 내가 입원하면 여니는 어떻게 될 거 같은데. 지금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무게가 엄마보다 더 무거워. 그러니 무슨 문제가 생기면 맏이인 나에게만 해결해 달라고 하지 말고 둘째 딸, 장남이자 막내아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해. 그리고 내가 처한 상황에서 그 누구의 도움 손길을 받지 않고 혼자 해결하는 거 엄마 눈에 안 보여. 그러니 나에게만 기대지 말고 다른 자식들과 공유해"라고 말하면 엄마는 섭섭한 표정을 짓는다. 그 표정에 마음 약해지지 말자고 마음을 굳건하게 먹고 말했다. 


혼자 전전긍긍하며 이 일 저 일 해결하려면 몇 배의 노력과 시간이 든다. 근데 가족들 일까지 내 일인 듯 해결하려는 습관을 버려야 했다. 아픈 동생도 언니가 자신의 남편에게 말해주면 안 되냐고 부탁한다. 내 일은 그들이 도와주지 않으면서 아니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타인의 손길이 필요할 때 나를 찾는다. 그래서 양 어깨가 무겁다. 동생에게도 언니의 양 어깨가 무거운 모습을 말로 옮겨서 했다.


"내가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버겁고 어린 여니를 돌보는 일도 그 누구 손길 없이 오롯이 혼자 해결하며 지내고 있어. 그러니 너도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해. 예전의 언니가 될 수 없어. 지금은 나와 여니만 생각하며 살 거야. 같은 말 두 번 세 번 하면 나도 지치고 목이 아프니 효율적으로 일을 하자. 녹음기를 이용해서 제부에게 전달하면 되잖아. 내가 다시 전화해서 말하는 것도 시간 낭비야. 지금 전화기 녹음 버튼을 누르고 내가 하는 말 다 녹음해서 제부 폰으로 보내."


소식이 끊인 동생이 연락하는 순간 나는 직감했다. '억지로'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거라고. 결국 동생은 모든 걸 타인에게 맡기려고 했다. 동생과 연락하지 않는 시간 동안 나는 다짐했다.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 나를 위해 남은 생을 살아가자"라고 "타인의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 큰 틀이나 뼈대만 말해주자" 나머지는 알아보거나 검색은 그들 몫으로 남겨두자고 다짐했다.


친정엄마에게도 그랬다. 40년 넘도록 맏이가 문제 해결을 해주기를 바라며 맏이에게 해결해야 할 문제를 넘겨주고 엄마인 자신은 자신 생활을 하고 있었다. 과거를 돌아보면 나 혼자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내 문제가 아닌데도 말이다. 그때를 회상하면 나 자신이 한심스러울 때가 많았다. 3년 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조금씩 변했던 것이 내 인생 무대에 불청객을 초대하지 말고 받아주지 말자고, 오롯이 나를 위해 무대를 사용하자고 했다. 자신의 손품과 발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타인의 손품 발품으로 해결한 문제를 손쉽게 가져가려는 가족이 이제는 버겁다. 내려놓음과 비움은 나에게 소중한 일이다. 맏이라는 이름으로 부모 형제자매의 일을 내 일처럼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걸, 그 시간에 나를 위해 활용해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내 몸 헌신해서 그들 일을 해결해주면 그들은 고맙다는 말만 할 뿐 내가 처한 어려운 문제에 해결해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친정엄마, 형제자매 습관은 오래전부터 길들여져 그들은 쉽사리 그 끈을 놓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변하면 언젠가는 그들도 깨닫는 시점이 있을 것이다. '억지로' 강요하면 탈이 난다는 걸. 그들 역시 '억지로' 하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지낸다. 맏이도 이기적이게 살고 싶다. 아니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억지로' 이기적인 삶이 아닌 '좋아서' 이기적으로 삶을 선택했다. 그래야 내가 살고 아이가 살고 그들이 살아날 것이다.


'오늘부터 딱 1년, 이기적으로 살기로 했다' 책을 읽고 결심했다. 타인의 삶에서 벗어나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겠다고. 그 후로 친정엄마와 트러블이 잦았다. 그동안은 다툼이 싫어 못 본 척 모르는 척 한 아파하는 내 마음을 밀어냈다. 밀어내야만 그들이 원하는 걸 해결해줄 수 있었고 맏이의 책임을 다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부터 딱 1년, 이기적으로 살기로 했다' 책을 보는 순간 내가 뭐를 잘못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아픈 내 마음을 끄집어내었다. '억지로'가 아닌 '원하는' '간절한' '좋아서' 하는 일만 하면 살아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을 알게 되었다.


책은 결국, 나를 살렸다. 그들도 나처럼 깨달았으면 좋겠다. 맏이가 언니가 누나가 모든 걸 해주는 위치가 아닌 모두가 다 같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걸. 내가 변하면 언젠간 그들도 알 것이다. 맏이 노릇, 언니 노릇, 누나 노릇이 벅차고 힘겹다는 걸. 알아주지 않아도 된다. 맏이에게 모든 일을 맡기지 않으면 된다. '다 같이' '다 함께' 단어가 있다는 걸, 그들은 알아주었으면 한다. 지금 그들은 실망하고 섭섭해할 것이다. 친정엄마와 여동생은 다 아픈 사람이라서 상대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섭섭한 감정만 앞세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들의 감정, 내 감정이 아니라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다고 머릿속과 마음속에 새기고 또 새긴다. 


예전에 나라면 그들이 섭섭한 감정을 가진 건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섭섭한 감정을 주지 않기 위해 손발이 닳도록 노력했다. 이제는 안다. 미련한 짓이라는 걸. 미련한 짓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억지로' '그들의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떳떳하게 지내면 된다. 이것이 내가 살고 아이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매몰차게 말한 맏이가 섭섭해서 엄마는 전화가 없다. 퇴원한 여동생 역시 언니가 전화 한 통 해주기를 바랐지만 하지 않아서 섭섭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람대로 세상은 따라주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나 역시 그들에게 섭섭한 감정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섭섭한 감정을 그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그건 내 감정이지 그들의 감정이 아니니까. 


아이에게도 '억지로' 뭐든 하지 말라고 한다. 마음에서 원하는 것만 하라고. 엄마가 강요를 하면 너는 엄마에게 말할 권리가 있다고 싫은 일 하지 않는 건 당연한 거라고 말해준다. 세상 살다 보면 싫은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억지로 해야겠지만 자신의 감정을 속이면서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걸 나와 아이에게 말하고 또 말한다.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한다. 꼭 내가 해야 한다는 인식을 벗어버리면 된다.


딱 1년만 이기적으로 살 것이 아니라 나는 평생을 타인을 위해 살았다. 이제부터는 나를 위해 이기적으로 살 것이다. 할 만큼 했고 해 줄 만큼 했다. 이기적으로 살 권리가 충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미크론 확진 후 폐렴 증상이 보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