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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Mar 20. 2022

사소한 일이 꼬이는 날 대처는

엄마 에세이

어제 아침은 버스만 10번을 탔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드는 느낌이 일진이 사나울 거 같다는 느낌이었다. 너무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이 그제 밤이었다. 눈을 감으면 잡생각이 나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세 시간을 자고 눈을 뜨니 새벽 3시였다. 결국 새벽에 일어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선잠을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일어나면서 다짐했다. 오늘은 일진이 안 좋을 거 같은데 뭐를 하든 조심하자고.


일어난 김에 아침밥을 했다. 아이는 국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 끓여놓은 육수를 꺼내어 냄비에 붓는데 이때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선명하던 육수가 갑자기 탁하게 보였다. 냄새를 맡으니 상하지 않아서 만두 두 개를 넣고 간을 봤다. 먹는 순간 시큼한 맛을 자랑하는 육수는 이미 상하고 말았다. 분명 냉장고에 보관 중이었고 이틀 정도 된 육수는 상할 수 없었다. 냉동된 육수를 해동해서 넣어놨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말을 하고 끓인 만둣국을 버렸다. 갈비탕을 데워서 식탁에 놓는데 아이는 먹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다. 먹기 싫다는데 억지로 먹이기 그래서 빵을 줄까 하고 말하는 순간 시곗바늘은 여덟 시를 넘기고 있었다. 아이에게 지금 늦었으니 빵은 하원하고 먹자고 타일렀다. 8시 25분에 내려가야 하는데 여덟 시를 넘겼으니 바쁜 건 자명한 일이었다. 아이는 알겠다며 갈비탕에 밥을 말아 조금 먹고는 곧장 옷을 입고 등원 준비를 했다.


아파트 입구에 내려가니 몇 분이 남았다. 다행이라며 추우니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자고 했고 입구에서 유치원 버스를 볼 수 있다고 아이를 안심시켰다. 30분이 지났는데도 노란 버스는 올라가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32분쯤 아파트 입구를 보는데 세상에 버스가 지나가고 말았다. 정말 암담했다. 오전에 약속이 있었고 아이를 보내고 곧장 나가려고 계획을 세웠던 것이 물거품이 되고 있었다. 유치원 버스가 지나갔다고 말하니 여니는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아이는 다른 아이처럼 유치원 버스를 타고 매일 유치원에 가고 싶은 아이였다.


내가 잘못했으니 미안하다고 말하고 집으로 올라와야 했다. 일단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아이와 버스를 타고 유치원으로 향했다. 아이를 유치원에 바래다주고 나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니 약속 시간 한 시간 전이었다. 입고 있는 옷 그대로 외출 준비를 했고 무사히 약속 시간까지 도착했다. 여기까지 그나마 잘 넘겼다고 생각했다. 하원을 위해 아이 유치원을 찾았고 아이 손을 잡고 걷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빼는 과정에서 일진이 안 좋은 것을 다시 확인했다.


블루투스 이어폰은 내 손을 떠나 하수구로 굴러 퐁당하는 소리를 내며 내 손을 떠나고 말았다. 블루투스 이어폰은 가격대가 있어 아끼고 아낀 이어폰이었다. 아이와 나는 서로 눈을 바라보며 황당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 오늘 왜 이래. 아침에 유치원 버스를 놓치더니 엄마 이어폰이 하수구로 빠졌어"

"그러게. 오늘 왜 이럴까?"

잊어버린 이어폰이 아까워하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 간식을 차렸다. 사실 3시간 자고 아이 학원을 따라다니기란 정말 피곤했다. 하지만 가기로 한이상 가야만 했다. 보충 수업 시간을 잡는 것이 더 힘들었다. 발레 학원을 다녀오고 나니 죽을 만큼 피곤했다. 그저 누워 있고만 싶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인지라 아이를 씻겨야 할 의무가 있어 힘든 몸을 일으켜 아이와 씻었다. 아이와 씻고 나오니 갑자기 아이는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했다. 정말 피곤한데 모르는 척할까 하다 이건 아니다 싶어 다시 떡볶이를 만들기 위해 주방에 섰다.


서는 순간 머리가 지근거렸고 열이 올랐다. 코로나 확진으로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상태여서 그런지 온 몸에 있던 힘이 빠지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는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이에게 화를 내는 대신 귤로 비타민을 보충하려고 냉장고 속에서 귤을 꺼냈다. 떡볶이가 졸이는 동안 귤을 가려고 하던 순간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아팠다. 귤에 있던 열매꼭지가 엄지손가락에 파고든 것이다. 쓰라리고 따갑고 급기야 찌릿한 통증까지 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흐르는 물에 손톱을 씻고 나니 통증이 가라앉았다. 아이에게 떡볶이를 먹이고 까놓은 귤을 먹었다. 이걸로 오늘 하루 사나운 일진을 마무리되었으면 하고.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하루치 글을 완성하고 있을 때 아이는 졸린다고 했다. 쓰던 글을 저장하고 아이와 안방으로 향했다. 아이가 자면 글을 완성하겠노라고 다짐하고 안방에 갔지만 잠을 못 잔 나는 아이와 함께 잠이 들었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난 나는 오늘 하루를 점친다. 그것도 기분으로. 아주 무한한 하루가 될 거라는 걸 점치며 오늘도 힘차게 지내기로.


아침에 일어나면 어떤 날은 기분 좋은 날이 있고 어떤 날은 우울한 날이 있다. 나는 이 기분이 백 퍼센트가 맞다. 그래서 그 기분을 모르는 척하지 않는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데 어제는 정말 일이 꼬이려고 하니 사소한 일이 꼬이고 말았다. 하루에 같은 버스를 6번을 탔으니 말이다. 조심하자고 했던 일이 더 꼬이는 날이 바로 어제였지만 좋은 교훈을 얻었다. 일진이 사납더라도 정신만 제대로 챙기면 사나운 일진도 비겨간다고. 어제는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잠을 못 잤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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