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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Mar 22. 2022

내겐 봄은 아픈 계절이자 가장 기다리는 계절이다

엄마 에세이

사계절 중 가장 기다리는 계절은 봄과 가을이다. 봄은 이쁜 꽃이 나를 반기고 봄나물을 먹을 수 있어 봄을 기다린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봉오리가 맺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벅차다. 거기다 봄은 여자 계절이 아니겠는가,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주면 여자 로망인 시폰 원피스를 입고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거리를 활보해본다. 

마음에 봄바람이 스며들면 그 무엇으로도 이겨낼 수 없다. 사랑의 계절이 봄이다. 그래서 난 봄만 되면 엉덩이가 들썩이며 여행을 가곤 했다. 여행은 결혼하기 전이긴 하지만 말이다.


봄이면 봄바람이 들어 살랑거리던 나는 언젠가부터는 아팠다. 죽을 만큼 아팠다. 10년마다 찾아온 봄의 계절은 두려웠다. 신이 '너는 죽어. 어서 죽어. 넌 죽어야만 해'라고 했다. 3월부터 아프면서 초 여름이 되어서야 회복 길에 들어섰다. 가장 아름다운 봄, 가장 기다리던 봄을 병과 함께해야 했다.


올해 봄은 10년이 된 봄이다. 2012년 4월에 아팠고 10년 주기로 찾아왔다. 2012년 기점으로 10년 전은 2002년이었다. 이른 봄 3월에 이유 없이 아팠다.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은 나를 나락으로 끌어내렸다. 2002년 봄은 죽지 못하고 살아냈다. 10년마다 찾아온 봄은 늘 두려움에 대상이 되었다. 거기다 트라우마가 찾아왔다.

병을 두 번 앓고 보니 세 번째 10년 봄의 트라우마를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고 했다.


아프지 말자고 애를 쓰며 쓸수록 병은 더 깊이 다가왔다. 아프기 싫어 10년마다 찾아온 봄을 외면하고 도망 다녀야 했다. 숨어버리면 찾아오지 않을 거 같아서 숨어보지만, 나를 숨기는 것이 능사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들어내면 어떨까 내가 살고 있는 삶의 패턴을 비틀어 보았다. 두려워서 숨겼다면 두려워서 들어내면 또 다른 경험을 할 거 같았다. 무서워 도망쳤다면 무서워도 그 자리를 지키면 방법과 길을 찾게 될 거 같았다.


2019년에 내가 살아오던 패턴을 바꾸고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게 되었다. 10년 봄이 오기 전에 2019년 봄, 2020년 봄, 2021년 봄을 새로운 마음으로 다짐했다.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해 올봄은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있다. 무리하지 않고 다그치지 않고 나를 무시하지 않고 조바심 내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하고 있다. 그래야만 별일 없이 조용히 올봄을 보낼 수 있을 거 같다. 비교하는 삶은 나를 망쳤고 유일하게 기다리는 봄을 아프게 물들었다. 앞으로 아픈 봄을 아련한 봄으로 내가 만들어 보려고 한다. 나에게 온 봄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아픈 삶이 되거나 행복한 삶이 될 것이다.


벚꽃이 피면 조용히 그들을 지켜보며 봄을 마음껏 만끽해본다. 봄이라고 봄놀이를 떠나기보단 봄을 피부로 느끼며 마음에 가득 담아본다. 아프지 않은 봄에서 설레는 봄이자 첫사랑을 만나는 것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을 간직한 채 오늘도 내일도 5월도 조심스레 지내본다. 달콤한 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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