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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Apr 03. 2022

절실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2019년 나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출발선에 서 있었다. 나는 명리학이나 운명학을 믿는 편이다. 그건 내가 살아온 인생의 절반이 운명처럼 다가왔던 삶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친정엄마 따라 무당을 자주 찾았는데 이건 친정집 대대로 내려오는 조상 줄이 세다는 이유로 무의식 속 이끌림에 의해 친정엄마와 나는 무당을 매년 찾았다. 그렇게 지내던 일상을 접어야겠다고 생각이 들 때는 2019년이었다.


외갓집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 관습으로 인해 무당을 찾는 내 인생이 싫어졌고 역겨웠다. 

"무당을 찾을 때마다 그들은 우리에게 좋지 않다고 굿을 하라고 해서 이제는 가고 싶지 않다"라는 엄마 말에 완전히 공감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조상 줄로 안 이어진 사람이 있을까? 다들 내가 모르는 조상으로 인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엄마 나는 이제 무당이나 점집 가지 않을 거야. 어디 철학을 잘 보고 사주 풀이나 잘하는 곳이 있으면 매년 조심할 부분만 기억해서 조심하며 살고 싶다. 우리가 무당집에 끌리는 이유는 그런 줄이 강해서 그렇다고 하던데.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살자. 무당이 우리를 대신해 인생을 살아주지 않잖아"


무당이나 점술가 집의 발길을 끊고 지내니 일어나지 않은 일을 끌어당기지 않아 좋았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타로나 사주에 관한 콘텐츠가 많다. 유일하게 보는 타로 영상은 2019년 나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내가 자주 듣는 정회도 타로 마스터 영상을 보는데 그때 내가 뽑은 카드가 어디든 떠나야 새로운 길을 볼 수 있다고 했다. 현재에 안주하면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다고 그러니 새로운 곳으로 떠나보라고 했다.


사실 그때 부산 친정집에 가기로 되어 있던 나는 그 어떤 계획 없이 부산으로 향했다. 친정에서 유튜버라는 명함과 글쓰기 프로젝트에 겁 없이 뛰어들었다. 이때는 절실했다. 뭐라도 하며 나를 알리고 싶었고 현재에서 벗어나 더 나은 내 모습이 보고 싶었다.


오스카 조연상을 탄 윤여정 선생님 말의 일부분이 가슴에 와닿았다. 아니 나와 닮았었다. "나중에는 절실해야 된다는 걸 알았어요. 그냥 편안한데 내가 연기를 좋아해서 하고 그러는 거하고. 좋아도 해야 되겠지만 저는 절실해서 했거든요. 왜냐하면 정말 먹고살려고 했기 때문에 대본이 저한테는 성경 같았기 때문에"


선생님 말을 이러했다. 좋아해서 하는 건 맞지만 그 이면에 절실한 마음이 가득 채워져야 좋아하는 일도 끝까지 즐기며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무엇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더는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제일 컸다. 현재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일이 바로 글이었다. 노트북이 있으니 글만 쓰면 되는 거였다. 뭐가 됐던 일단 써보기로 결심하고 블로그에 글을 써 내려갔다.


글은 절실해서 시작했지만 재미가 없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 동생과 비교해보자면 동생은 글 쓰는 걸 힘들어했다. 왜 글을 써야 하는지 모르던 동생은 언니가 하니깐 따라서 블로그 계정을 만들고 지나간 과거 일부분을 꺼내어 글을 연재했다. 오랫동안 기억에 머물고 있던 추억은 어느 순간 퇴색되어 내가 원하는 부분만 기억에 남는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각색하여 만들어낸 그때 그 추억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곁에 보고 듣던 엄마에게 물었지만 엄마마저 기억은 퇴색되어 어렴풋이 떠오르는 사건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기장을 버리지 말고 모아둘 걸. 쓸모없다고 버린 내가 잘못한 행동을 했어라는 후회가 되었다. 기록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글을 쓰면서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지금 동생에게 조언을 한다. "지금 너의 상황을 녹음이라도 해놓으면 훗날 뭐를 하던 지금 이 상황이 먼 훗날 왜곡되지 않고 고스란히 머물고 있을 거야. 그러니 제발 녹음이라도 해. 단어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그것도 힘드니"라고 동생은 내 말을 듣더니 해보겠다고 하고는 하지 않았다. 동생에게는 나만큼 절실함이 보이지 않았다. 


직장 다니는 남편이 있으니 돈에 대한 근심 걱정이 덜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자신이 정말 절실하면 뭐가 됐던 기록하는 습관을 들일 거라 생각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되어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그동안 해왔던 루틴이 무너졌다. 10년 일기장을 비롯해 감사일기 감정일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를 표현하고 또 기록했었다. 근데 무서운 바이러스는 내가 원하는 삶에서 이탈하게 해 주었다.


확진이 되고 한 달만에 몸 상태는 돌아오고 있지만 피곤함은 여전히 가시지 않아 10년 일기장, 감사 일기, 감정 일기장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집 경제를 알아보기 위한 가계부조차 손대지 못하는 지금은 그저 한 가지만 하루에 성공한다면 그걸로 감사하다고 더 많은 욕심은 부리지 않기로 했다.


지금 우선순위는 건강 회복이 먼저니깐. 남인숙 작가님 말씀처럼 기록하지 않으면 나에게 남는 건 없어진다. 어디가 되었던 한 줄이라도 남겨둔다면 나중에는 이것들이 나에게 자양분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3년째 글을 쓰고 있다.


블로그에 1일 1포 기준으로 썼던 2020년. 2020년 가을, 많은 일과 싸우느라 더는 1일 1포가 되지 않았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많은 생각이 나를 집어삼키고 있어서 글은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다. 지금은 예전 나로 돌아가기 위한 절심함으로 글을 쓰려고 노력 중이다.


며칠 전부터 글에 대한 현타가 왔다. 깊은 있는 글은 오히려 내가 써야 할 글에 방해만 되었다. 힘주고 있던 어깨에 힘을 빼고 머리를 비우면 내가 원하는 글감이 떠오르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우고 다른 일에 몰두했었다. 그러나 남과 비교하는 자신을 발견했고 결국 약간의 현타가 왔었다. 글쓰기에 현타라. 현타로 인해 자신이 괴로웠다. 절실해서 시작한 글쓰기, 쓰고 싶어서 안에 있는 표현을 끄집어내기가 어려웠다. 그때 글쓰기를 포기하려던 순간 다른 작가님 글을 보게 되었다.

"초보 작가는 같은 주제로 5분을 쓰든, 5시간을 쓰든 결과에서 별 차이가 없다. 아무리 시간을 투자해도 완벽해지지 않으니 생각나는 대로 짧게라도 틈틈이 써라"라는 글을 보고 나에게 온 현타의 감정을 알게 되었다. '욕심'이었다. 글에 대한 부담감이 나중에는 욕심으로 작용했던 걸 알게 되었다. 블로그에 글을 쓰듯 내 감정을 드러내고 지금 현재를 즐겨야 할 글이 내 감정을 숨기고 타인에게 가르치려는 욕심으로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글을 써야 해. 뭐 쓰지"라는 전에도 없던 감정이 있었다. 누군가가 호응하지 않고 반응하지 않아도 나는 지금 서울로 가고 있다는 걸 인지하게 했던 남인숙 작가님 글에 오늘도 난 '절심함'이 담긴 글을 쓰게 되었다. 절실함이 없다면 작심삼일이 되고 마는 글쓰기. 그리고 뒤도 보지 않고 떠나게 되는 글쓰기는 초심을 잡고 다시 글을 써 내려간다. 


'절실함'을 잊지 말고 '초심'을 잊지 말자는 다짐으로 글을 써본다. 윤여정 선생님은 연기가 절실했고 좋아했다고 한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절실함과 좋아하는 것이 일치함 셈이다. 나 역시 절실해서 시작한 글쓰기는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고 찾고 있었던 좋아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조잡한 글이지만 언젠가는 다듬고 또 다듬어지면 세상에 빛나는 글이 탄생될 거라는 걸 나 스스로에게 믿음을 주는 하루가 대견스럽고 감사하다. 나는 100일 완주 후 나의 롤모델인 남인숙 작가님 뵈러 서울 갈 거라는 믿음 하나로 버티고 버틴다. 이 또한 절실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에게 타로는 글감을 찾는 일이었고 가능성을 보는 일이었으며 없던 희망이 생기는 타로였다. 끝으로 힐링을 안겨주는 타로는 다시 내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마음이 불편하면 타로를 듣는다. 그리고 다시 노트북을 펴고 조잡하고 볼품없는 글을 써본다.


뭐가 됐든 결과는 봐야 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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