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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Apr 04. 2022

불편한 감정을 공감하면 편안한 감정으로 바꾸기 쉽다

엄마 에세이

유치원 하원을 위해 한 달째 딸을 데리러 유치원을 다니는 중이다. 적응을 너무 잘해 한 달이라는 시간이 필요 없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버스를 타고 아이를 하원하는 과정에서 매일 선생님과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되었다. 어제는 유치원 입구에 도착했는데 여니 반 친구들 모두 바깥 놀이를 하고 있었다. 문틈으로 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환한 눈웃음을 보이자 아이는 선생님에게 다가가 엄마가 왔다는 신호를 선생님에게 보냈다.


아이는 자신의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나에게로 다가왔다. 이내 선생님도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은 바깥놀이를 하고 있었네요"

"네, 어머니. 안 그래도 오늘 짝꿍 바꾸는 날인데 여니가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오늘 여니 옆자리로 가더라고요"

"정말요. 여니 기분 좋았겠는데요"

"어제 제가 여니 남자 친구를 소개하면서 어머니가 말씀하셨잖아. 여니가 너 좋아하니 여니와 친하게 지내 달라고요"

"네, 제가 그랬죠"

"어머니 말에 그 친구가 기분이 좋았는지 오늘 짝꿍 바꾸는데 여니 옆자리로 가는 거 있죠. 귀엽죠"라고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다.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나와 선생님은 수다 삼매경에 빠졌고 옆에서 듣던 여니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했다.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하는데 아이가 말했다. "엄마 오늘 남자 친구 두 명이 나에게 오더니 짝꿍 하고 싶다고 했어"라고. 마침 내가 그런 일에 속한 사람처럼 좋아서 날뛰었다. "세상에, 남자 친구 두 명이 여니에게 온 거야" "응" 하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었다.

"엄마가 다 기쁘고 설레지. 엄마는 그런 일이 엄마 어릴 때 없었는데. 우리 여니 인기 최고야"하며 칭찬을 최대치로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에게 마음을 표했고 엄마가 나서서 더 표현했으니 여니 꿈은 이루어진 셈인데 저녁에 아이는 갑자기 이상한 말을 했다.

"엄마, 나 남자 친구랑 짝꿍 하는 게 싫어"

"왜 그럴까? 여니가 그 친구랑 밥도 같이 먹고 싶다고 했잖아"

"근데 싫어. 나 그 친구 좋아하지 않은가 봐"

라며 자신의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여자 친구와 짝꿍 하는 게 더 좋다는 말까지 했다.


아이는 남자 친구가 옆자리에 앉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지금 여니 상태가 피곤하고 배고프고 잠 오지?"

"응. 많이 피곤하고 그래"

"사람은 배가 고프고 잠이 오면 막 짜증 나고 좋아하던 것도 싫어지고 그래. 그러니 그 친구가 싫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잊어버리고 맛있는 거 먹고 일찍 잘까?"라고 말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좋아하던 친구가 자신 옆 자리에 앉아 함께 밥을 먹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느낌이 아이에게는 싫은 감정이라고 인지한 듯했다. 여자 친구가 더 편안한 여니는 남자 친구가 좋으면서도 자신과 가까이에 있는 것이 어찌 보면 우리 집 환경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조심스레 예측했다.


오랜만에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졸았던 아이는 집에 와서 남자 친구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말했다. 이때는 내가 단호해야 했다. 이미 짝꿍이 된 친구가 싫다고 하는 아이 마음을 공감하면서도 현재는 바꿀 수 없는 걸 인지시켜야 했다.


"여니야 지금은 짝꿍을 바꿀 수 없어. 왜냐하면 선생님만의 규칙이 있거든. 그리고 여니가 싫어한다는 마음을 짝꿍이 알면 속상하지 않을까? 그 친구 싫은 부분만 보지 말고 그 친구 좋은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엄마와 이야기해보자. 그 친구 놀 때 같이 놀아줘?"라고 물었다. 아이는 함께 뛰어논다며 재미나는 사건을 함박웃음을 띄며 엄마에게 말했다. 그렇게 불안한 감정과 불편한 감정을 벗어내고 좋은 감정 편안한 감정도 마음속에 있다는 걸 인지시켜야만 한 달 동안 남자 친구와 즐겁게 원 생활을 할 듯했다.


이 공감은 어린 나에게 하고 싶었던 공감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장애인 친구를 담임 선생님은 나와 짝꿍을 해준 적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싫어하는 친구를 나와 짝을 이어준 선생님이 싫었다. 어린 마음에 학교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했다. 밥을 먹으면 입 속으로 음식물이 들어가기는커녕 다 흘리는 친구였고 다리가 180도 돌아간 친구였다. 그런 친구를 나와 짝꿍 해준 선생님이 미웠고 불편한 감정을 엄마에게 말했지만 엄마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학교에서 하는 일은 엄마인 자신이 어떻게 못한다고. 결국 내가 가진 불편한 감정과 불안한 감정을 안고 학교를 가기란 힘들었다. 공감받지 못한 감정은 엄마에게 무시를 당하고 말았다. 인내하고 참아야 한다는 말을 엄마 입에서 나왔다.


그 시절 학교는 촌지를 좋아하는 시절이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우리 집은 최대한 선생님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던 엄마는 나를 앉혀놓고 말했다. "선생님을 빈손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고 그러니 선생님이 해준대로 따르라는 엄마 말에 서러웠다. 죽기보단 싫은 친구와 짝꿍은 학교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때 내 나이가 10살이었다.


아이 마음의 공감보단 촌지를 생각한 엄마의 불편 마음을 먼저 헤아려야 했던 그 시절이 떠올라 아이의 불편한 감정을 바로 알아차렸다. 아이는 싫은 친구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이기에 불편한 감정을 편안한 감정으로 연결할 수 있었다. 집단생활을 하면 규칙과 규법이 있는 법이다. 내 아이가 불편하다고 해서 바로 바꿀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한다. 바꾸지 못한 환경이라면 아이에게 전후 사정을 말하고 불편한 감정을 공감하고 경청한 것만으로 불편한 아이 마음을 위로받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엄마 말을 한참 듣더니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씻었다. 아이가 생각을 한다면 나로선 방해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으니까. 씻고 나오는 엄마를 보며 아이는 환한 미소를 띠며 "엄마 이제 마음이 편안해. 짝꿍하고 잘 지낼 거 같아"라는 말을 해주었다.

"와. 우리 여니 멋지다. 여니 마음이 편안해졌어?"라고 물으니 아이는 그렇다며 짝꿍에게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달라고 요청도 할 거라며 씩씩하게 말했다.


자신의 말을 지킨 아이는 오늘 아침 더는 불편하다는 감정을 내뱉지 않고 환한 미소를 띠며 원으로 향했다.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엄마가 경청하고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아이. 아이가 대화를 시도할 때 눈빛을 바라보며 불편한 마음을 이해한다는 눈빛이야말로 집단속에서 아이가 적응하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기대된다. 짝꿍과 어떤 일로 협력하며 놀았는지. 오늘도 난 아이 말에 경청하고 공감하면서 아이 손을 잡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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