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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May 06. 2022

엄마 생각과 자식의 생각 차이

요가 허러 가는 길에 문득 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무의식의 끌림이었다. 신호등을 기다리며 그 간판을 보는데 '해물' '해물찜'이 엄마를 생각하게 했다. 그때 든 생각은 '요가 끝나면 오전 11시가 넘으니깐 엄마와 매콤한 아귀찜이나 먹어볼까'라는 생각에 미치자 나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전화를 거니 신호음이 울렸다. 트로트 노래가 흘러나오는 두 음절만에 "여보세요"라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점심때 아귀찜 먹으러 갈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엄마는 "응"이라는 한 음절을 내뱉었다. '엄마는 아귀찜이 먹고 싶었구나'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1초의 망설임 없이 응이라고 대답을 할지 뭉클해졌다.


이틀 연속으로 한 요가는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쓰지 않던 근육을 쓰면서 근육통이 왔다. 두 번째 수업은 열정을 다해 동작을 따라 할 수 없었다. 아니지, 동작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한 동작 한 동작 따라 하면서 곡소리를 냈다. 그럴 때마다 이미 수련을 오래 한 회원분들이 웃었다.


"원장님 저 오십견이라 팔을 사용할 수 없어요. 이 동작은..." "그러니깐 더 운동해야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를 집중적으로 케어하는 원장님을 원망할 수 없었다. 왜냐면 7년 전 없던 병이 하나 더 생긴 탓에 온 몸은 부종으로 관절마다 삐거덕 거려 요가로 몸을 바로 잡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원장님을 말릴 수 없었다.


오십견이 온 오른쪽 어깨는 팔을 높이 드는 동작을 할 때마다 아우성을 쳤다. 그만 괴롭히라고. 결국 나는 선배들의 수업을 더는 따라갈 수 없었다. 포기하고 숨을 쉬고 있는데 원장님 눈빛은 하라고 했다. 난 고개를 내 저으며 요가 매트를 챙겨서 제자리에 꽂고 탈의실에서 깊은숨을 들이쉬다 내쉬며 '내가 원하는 요가는 이것이 아니야'라는 소리가 들렀다.


목, 어깨, 팔, 허벅지, 허리 쓰지 않던 근육들은 민감한 행동에도 반응을 했다. 엄마와 약속한 식당으로 향하며 '그래 몇 개월 다니다 보면 아우성치던 근육은 제자리를 찾을 것이고 요가 동작은 하다 보면 자연스레 익히게 될 거야' 라며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했다.


우리는 처음 하는 행동에 한두 번 하고는 포기하는 습성이 있다. 나 역시 '이 요가가 정말 내 몸을 건강하게 만들까. 다른 요가원을 알아봐야 하나'라는 포기 같은 내면의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런 소리가 들릴 때 예전 나를 기억해낸다. 


죽을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죽을 거라는 그 말에 '내가 왜 죽어. 이렇게 건강한데'라며 그들의 부정적인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지금 역시 몸이 아프고 힘든 요가 동작이 버거워 포기하려고 할 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너 어떻게 살아났는지 잊었어. 큰 고비를 넘겨놓고 이깟 요가 동작이 어렵다고 포기하려고 해" 하며 마음을 바로 잡는다. 엄마와 식사하는 자리에서 "엄마 안 쓰던 근육을 써서 어깨부터 안 아픈 곳이 없어. 30대 후반 몸과 40대 후반 몸이 달라. 몸이 둔하고 느려져" "그거야 당연하지. 너 그동안 육아만 했지. 다른 건 안 했잖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육아 7년 동안 내가 한 거라고 아이를 업거나 안고 마트를 가거나 아이를 재우는 일, 살림한 일이 다였다.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과 가벼운 걷기 운동이었다. 그러니 팔과 등, 어깨와 허벅지 근육은 아예 쓰지 않았던 것이다.


밥상머리에서 엄마는 동생 걱정을 늘어놓았다. "본인 스스로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백날 말하면 뭐해. 본인이 안 하고 저러는데" 작은 딸의 아픈 것이 못내 속상했던 엄마는 맏이인 나에게 쏟아냈다. 


나와 너, 나와 동생은 생각 자체가 다른 인격체다. 그러나 엄마는 그걸 분리하지 못한 채 자신이 이렇게 아프면 이렇게 운동할 텐데부터 아파트 이웃 주민이 운동한 모습까지 상세하게 말하며 동생 하는 행동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엄마가 낳은 딸이 엄마 생각처럼 따라주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마. 그 아이는 그 아이대로 생각이 있을 거야. 설마 아픈 몸을 방치하겠어. 엄마가 염려한다고 해서 자신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면 실행에 옮기지 않아. 그냥 지켜보자. 우리는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어. 지금 겪고 있는 병이 처음이라서 무서워서 그럴 수 있어. 그 아이 마음을 우리가 이해해야지 누가 이해해 줄겠어" "그래 맞다. 내가 아무리 말을 하면 뭐하니. 본인이 할 의지가 없는데" 라며 엄마가 좋아하는 아귀찜을 먹는 모습을 보며 만약 내가 아파서 동생과 같은 모습에 처한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곰곰이 생각했다. 


예전에 나는 내 생각이 옳다고 느끼면 가족에게 무한 반복하며 말했다. 제발 이렇게 하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그때마다 '내가 왜'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지금에 나는 아무리 내 생각이 기발하고 멋지더라도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건 나에게만 멋지고 기발한 생각이니깐. 내 생각이 그들에게 맞는다는 보장은 없으니깐.


아픈 동생이 안타까운 마음은 늘 있다. 거동이 힘들어도 의지만 있다면 언젠가는 마비된 팔이 풀릴 것이고 운동이나 재활만 열심히 한다면 정상으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그러나 동생은 제부가 퇴근해서 오면 재활을 했다. 뇌에서 명령을 내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의식적으로 마비된 신체를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신경이 죽지 않는다. 하지만 동생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자신이 느끼고 깨달아야 실행에 옮기니깐 말이다.


안타까운 동생을 생각하며 "옛말이 틀리지 않았어. 좋은 일에는 남들이 축하해주지만 궂은일에는 가족뿐인 거야" 엄마는 어르신들이 한 말을 되새김질했다. 동생 곁에 있던 친구는 지금은 없다. 동생이 아프고 난 후 그들은 인연을 끊은 것이다. 동생이 연락하면 받아주는 정도.


엄마는 안타깝다고 했다. 좋은 일에는 가족보다 지인들만 찾더니..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뒷말은 나는 안다. 동생은 가족보다 엄마보다 언니보다 친구를 지인을 더 아낀 아이였다. "엄마 그런 생각 말고 우리는 그 아이 곁에서 희망의 끈만 놓지 않게만 해주면 돼" 더는 동생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기분 좋게 점심을 먹으면서 엄마는 동생이 안타깝고 안쓰러워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엄마인 자신이 해줄 것이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우리는 그저 기다리는 방법 말고는 없다. 응원과 격려 말고 없다. 환자가 있는 집은 늘 근심 걱정이 많다. 하지만 위기 극복을 나름대로 헤쳐온 우리 가족은 이 위기를 잘 극복하리라 나는 우리 가족을 믿는다. 나는 우리 가족 힘을 믿는다. 나는 우리 기적을 믿는다. 오랜만에 맏이와 점심한 엄마는 수다로 동생의 근심 걱정 일부분 털어냈을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태양은 뜬다. 그 태양을 받으며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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