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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May 07. 2022

2년 전 엄마와 여행

엄마 에세이

나와 엄마 단 둘이서 한 여행은 3년 전이 처음이었다. 동생과 마음이 틀어졌던 그 해, 베트남 여행을 위해 모아둔 적금을 깨고 아이와 함께 삼대가 전주로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우리를 인도할 자동차도 우리를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줄 남자도 없었다. 그저 여자들끼리 힘을 모아 처음 떠난 여행은 전주였다.


자식 때문에 마음고생한 엄마 마음을 알기에 모아둔 여행경비를 다른 곳에 쓰고 싶지 않았다. 친정집에서 전주로 갈 수 있는 교통편을 검색하고 새벽 첫 차로 전주로 향했다. 편안하게 보낼 곳을 선택한 우리 여행은 피곤한 몸을 편히 쉴 수 있었던 한옥 게스트 하우스가 좋았다.


2박 3일 여행은 3박 4일이 되었는데 엄마는 일벌레였다. 일박을 더 늘린다는 건 엄마에게 걱정거리만 안겨줄 거 같아 2박 3일만 여행하고 부산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때 엄마는 "하루 더 쉬다 갈까?"라고 스스로 하루 더 쉬고 싶다고 말했다. 


"나야 좋지. 하루 더 쉬다 가자. 이렇게 쉬면 다음 날을 위해 에너지 충전이 되니깐. 엄마는 몇 년 동안 편안하게 쉬지 못했잖아. 오늘은 게스트 하우스 근처 구경하고 맛있는 거 먹고 전주 시장 가서 구경도 하자"


초여름인 날씨는 후덥지근했다. 장마가 오는 그 계절에 우리는 여행을 한 것이다. 엄마는 "차로 다니면 구석구석 돌아다니지 못하는데 걸어서 여행하는 것도 재미있어" "몸은 고되고 힘들지만 나름 괜찮지" 차 없이, 남자 없이 오롯이 우리만 한 여행은 다소 거리에 제약이 있었지만 버스가 있고 택시가 있어서 할 수 있는 여행이었다.


게스트 하우스는 한옥마을 부근이었고 어떤 날은 한복을 입고 문재인 대통령님이 다녀온 카페에서 쉬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이를 위해 전주 동물원을 다녀오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한옥 마을 부근에 먹거리가 즐비했는데 이것저것 사 먹으며 웃고 떠들었던 그 해 그 여름이 추억으로 소환되었다.


엄마는 "얼마만의 여행이야. 이렇게 잠시 떠나 있는 것이 참 행복해. 예전에는 사위들 덕분에 캠핑도 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어서 아쉬워"라며 옛 추억에 잠긴 엄마는 안타까워했다. "사람은 변하는 거야. 그게 좋은 쪽이라면 좋을 텐데. 지금은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일 거야. 지금 덕분에 조용히 여행할 수 있다고 생각을 바꿔봐. 캠핑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거니깐"


오래전 사위들과 한 여행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전주로 떠난 여행 후 거제도 외도 섬과 벨버디아 리조트를 다녔고 제주도까지 다녀온 삼대 여자는 여행의 또 다른 추억을 쌓고 있다. 친정엄마는 부산에서 낳고 자라 생을 마감할 때까지 부산에서 살 거라고 한다. 이렇게 부산에서 나고 자란 엄마는 부산에 어떤 것이 있고 어떤 것으로 유명한지 모르고 있었다.


엄마는 앞만 보고 다니는 사람. 자신의 관심 밖의 일이라면 관심을 두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는 두루두루 살피고 검색해서 색다른 곳에 다니는 반면 엄마는 집과 직장 그리고 자신의 친정 외에는 다니지 않은 엄마라서 어떨 때는 답답했다.


"우와. 부산에 이런 곳이 있는 거야. 엄마는 처음 봐" "엄마는 집과 직장 외는 관심이 없잖아. 아니면 영도 학장 외에 관심 두지 않잖아" 엄마는 맏이 얘기에 웃기만 했다. 내 말이 맞으니깐. 볼거리 먹을거리가 다양한 부산을 엄마는 남의 일이라고 치부했던 것이다.


이제는 같이 다니자. 부산부터 다녀보자. 내가 부산을 떠난 지 15년이 되었으니 얼마나 변했을 거야. 검색해보니 부산에 요트를 탈 수 있고 캡슐 기차도 있더라. 해운대이지만 시간 내서 해운대를 다녀볼 거니깐 엄마도 같이 다니고 싶으면 말해라고 했다.


그렇게 내 고장을 여행한 것이 몇 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코로나 확진이 되어 쉬었고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면서 다양한 곳을 다니지 못하지만 시간만 된다면 얼마든지 다닐 수 있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몸은 고되지만 기분전환과 걱정거리가 사라진다.


여행에서 주는 안락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아이는 제주도에 가고 싶다고 한다. 자신이 한 여행 중 제주도가 가장 행복했던 것이다. "엄마 비행기 타고 제주도 가고 싶어. 언제 갈 거야" "유치원 안 가고 엄마와 제주도 갈래. 제주도 가면 엄마는 좋지. 거기서 한 달 살다 오고 싶기도 해" 아이는 곰곰이 생각한다. 유치원과 제주도를 바꿀 수 있는지. 아직까지 답은 듣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제주도에서 제주살이 해볼 생각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자신감이 생긴다. 나약한 자신감이 여행을 하면서 든든하고 강한 자신감이 생겨 좋았다. 계획대로 여행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여행과 같다고 생각하면 쉽게 여행할 수 있었다. 딸과 한 여행, 엄마와 한 여행은 살면서 몇 번이나 할지 모르겠지만 엄마가 건강하게 살아 계시는 동안 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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