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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Nov 10. 2022

모녀는 세 번째 여행 준비하며 아이 말에 답을 찾다

엄마 에세이

쌀쌀한 아침에 일어나는 건 정말 죽기보다 싫다. 그렇다고 이불속에 있을 순 없어서 몸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여니는 내일이 너무 기대된 나머지 유치원 가기 싫다며 투정 아닌 투정을 아침에 했다.


"오늘은 하원도 일찍 해야 해. 수요일 가는 센터를 오늘 가기로 했거든. 그러니 유치원 가야 해"

엄마 말을 듣던 여니 입이 나와버렸다.


"엄마 난 내일이 너무 기대돼. 서울이 얼마나 이쁠까?"

아이는 아주 어릴 때 서울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 기억 속에는 없는 서울 풍경이 너무나 그리워 유치원을 가지 않겠노라고 했다.


자신이 어릴 적 접했던 그 도시에서 다시 추억을 만들고 싶었던 모양인지 며칠 전부터 함박웃음을 띠며 입가에 미소가 가시질 않는다.


'엄마가 너를 데리고 여행했다고 생각했는데 넌 아닌가 보다. 엄마가 할 수 있는 노력 다 했는데 여니 가슴속 깊게 추억을 새기지 못했나 보다. 너는 엄마가 다니는 병원이 궁금했고 그곳에서 엄마는 어떤 치료를 하는지 어떤 선생님을 만나는지 궁금했던 거야'


아이는 엄마가 어떤 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고 집에 오는지 늘 궁금했던 모양이다. 

"난 엄마가 병원에서 뭘 하는지 궁금했어. 매번 할머니와 나는 집에 있어야 했잖아"

"어릴 적 넌 엄마 병원에 같이 갔었어. 그 후로 코로나가 터지고 어린아이 동반할 수 없어서 할머니와 집에 있었던 거고. 그리고 아침 일찍 기차 타고 병원 갔다 곧장 다시 기차 타고 집으로 와야 하는데 그게 참 힘들거든. 그래서 너를 데리고 가지 않았어. 엄마와 함께 병원 가는 걸 원했어"

"응. 얼마나 궁금했는지 몰라"

"그래 이번엔 엄마가 어떤 치료를 받고 어떤 주사를 맞고 어떤 선생님과 진료 보는지 함께하자"


아이는 소파 위에서 방방 뛰었다. 어른에게는 그저 고생길이지만 아이 입장에서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는 기분 좋은 일인 거 같았다. 병원만 갔다 오기가 섭섭할 거 같아 병원 예약일 하루 전날 서울행 기차를 타기로 했다.

태어나서 나도 아이도 가보지 못했던 롯데월드를 가기 위해서다.


놀이 기구를 타지 않더라도 동화 속에서 나올뻔한 세상에서 하루 종일 놀기로 했다. 휴대폰 속에 있는 롯데월드 사진을 여니에게 보여주니 시큰둥하다. 그저 엄마와 기차를 타고 자신이 속한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아이는 행복한 거 같았다.


어른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여행을 한다. 그러니 여니는 즐겁고 행복한 거 같았다.

"엄마 우리가 타는 그 기차가 마주 보고 앉는 그거 아니지?"

"마주 보고 앉는 건 지하철인데"

"어, 그거 아니지"

"아니야. 우리가 앉으면 앞에 사람 의자가 보이는 기차를 타는 거야"

"맞아. 나 그거 타고 싶었어. 우리가 천안에 살 때 자주 탔잖아"


아이는 엄마와 부산과 천안을 오고 가던 그 길을 기억하는 거 같았다. 태어나자마자 기차를 수없이 탔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가 기차를 타지 않고 지하철만 타니 아이 머릿속은 헷갈렸던 모양이다.


"그렇게 좋아. 기차 타는 것이"

"응, 무지 좋아. 내일 새벽에 일어날 수 있을까"

"일어날 수 있어. 피곤하면 기차에서 자면 되고. 엄마만 새벽에 일어나서 여니 주먹밥 싸고 엄마 밥 먹고 너를 깨울 거야. 그때 일어나서 옷 입고 택시 타고 부산역에 가면 되지"


아이는 걱정이 많은 모양이다. 못 일어나서 혹여 기차를 타지 못할까 봐, 자신이 기대했던 서울을 가지 못할까 봐 걱정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깨워줄 거니깐 걱정 마. 기차 안에서 이젠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주먹밥 먹자"

대화가 마무리되자 여니는 안심하며 유치원을 갈 수 있었다. 거창한 여행이 아닌데도 여니는 여행이라는 글자와 기차를 타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서울 가면 지하철을 많이 타야 해. 힘들어도 참을 수 있어?"

"나 힘 좋아. 많이 걸을 수 있어"

"놀이동산에 가면 또 많이 걸어야 하는데 괜찮을까?"

"괜찮아. 호텔 가서 쉬면 되지"


'그래 그래 여니 말이 정답이다. 엄마는 괜히 이런저런 걱정을 하고 있었구나. 쉽게 쉽게 하루를 즐기면 되는 것을. 별의별 걱정을 다 하고 앉아 있네' 아이 대답에 답을 찾고 쉽게 쉽게 살자고, 쉽게 쉽게 여행하자고 다짐했다.


"병원은 환자와 사람이 많아. 여기저기 다녀야 하거든. 엄마 손 놓지 말고. 엄마 피 뽑을 동안 의자에 앉아서 기다려야 해"

"난 엄마 피 뽑는 거 볼 거야"


모든 게 다 새로운 아이는 이것저것 자신의 가슴에 기록할 모양이다. 이번에 병원 가면 6개월 한 번 오겠다고 말할 참이다. 석 달에 한 번 진료는 금방 돌아온다. 사계절을 서울과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오고 가는 시간이 아까워서 주치의와 의논할 예정이다.


주치의야 환자가 원하는 방향대로 해주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환자 본인이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실해야 한다. 그 믿음을 의사에게 보인다면 의사는 더는 그 이상의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6개월 뒤면 내년 봄에 서울을 찾게 되겠네. 봄에 여니를 데리고 서울 나들이할 예정이다. 초등 1학년이지만, 책 속에서 배우는 과정보다 가능하면 자연에서 배우고 세상 이치를 깨달았으면 한다. 


모녀의 세 번째 여행. 그 여행은 지금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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