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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Dec 28. 2022

외동딸을 키우는 엄마의 육아 방식

엄마 에세이

낮에 다 하지 못한 일을 아이가 있을 때 하여야 했다. 늦은 밤까지 있을 체력이 없어서가 가장 큰 이유이며 아이와 함께 잠자리에 들다 보면 어느새 내가 먼저 잠이 들어버리기에 아이가 없을 시간에 몰입에 몰입을 거듭했지만 어제는 시간이 부족했다.


내 글을 읽다 보면 다시 수정하게 되고 어느 부분에서는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한참을 고민하게 된다. 그리하여 시간이 부족한 상태가 어제였다. 아이가 하원을 하고 집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트북과 한 몸이 되어 아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아이는 곧장 이런 말을 쏟아냈다.


"난 엄마가 글 쓰는 거 안 했으면 좋겠어. 싫어"라고...


너무 몰입한 나머지 아이가 하는 말을 놓쳤고 엄마에게 듣고 싶었던 위로의 말을 듣지 못해서 화가 난 여니였다.


"엄마가 노트북만 하고 놀아서 화났어?"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눈은 노트북에 귀는 아이에게 그러나 입은 여전히 다물고 있었던 나를 알게 된다.


"내일은 엄마가 일 다 끝내고 여니 오면 많이 놀아줄게. 오늘만 봐주라"라고 말한 후 다시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했고 아이는 혼자서 놀기 시작했다. 1인 2역을 아니 1인 3역을 하며 혼자서 이방 저 방 다니며 놀고 있었다.


느지막이 잠을 잔 아이는 저녁 8시에 일어나 심심하다고 했고 나는 그 요청을 들어주지 못했다. 형제가 없는 아이는 늘 외롭고 심심한가 보다. 엄마가 친구이자 동생이 되고 언니가 되는 그것은 외동으로 자라는 아이의 특성인가 싶어 일은 아이가 없을 때만 하자고 맹세한다.


잠자리에 드는 순간 엄마와 하지 못한 말을 속사포처럼 내뱉는 아이는 연신 이 말 저 말을 하며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다 끄집어냈다. 


"너 그렇게 말하고 싶어 유치원에서 어떻게 참고 있었어?"라고 물었더니 

"그르게. 내가 어떻게 참았지. 지금 막막 엄마한테 말하고 싶은데 어떡해"답하는 아이는 잠이 들기 전까지 말을 하고 또 했다.


조카는 외동이었다. 혼자 놀기에 전문가 수준이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면 지금 내 아이가 조카 어린 시절을 보는 듯했다. 혼자 중얼중얼, 인형과 놀이에 빠져 엄마가 되었다가 친구가 되었고 선생님이 되는 놀이에 혼자서도 잘 노는구나라고 쉽게 조카를 생각했었다.


내가 그 위치가 되니 조카와 여니의 어린 시절이 판박이처럼 다가왔다. 엄마가 친구가 되어줘야 해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게 해 줬던 동생. 엄청 열심히 발품을 팔았던 동생이 생각난다.


지금도 난 동생만큼 하지 못한다. 여니 친구 엄마들의 모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코로나 여파로 유치원 엄마들과의 교류가 없었기에.


한날은 여니가 "나 친구보고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했어"라고 말했다. 난 너무 놀래서 "여니 집을 그 친구들이나 엄마들이 알아?"라고 물었고 몰라라는 답변이 들려왔다.


지난 주말 여니 문화센터에서 유치원 같은 반 친구를 만난 것이 너무 좋았던 여니는 친구보고 제발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사정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친구를 소개하는데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거 같아 엄마와 정보를 교류하게 되었다.


여니는 혼자라서 집에서 대게 심심해한다고 그러니 시간 되실 때 집으로 놀러 오라고 하면서 말이다. 내 번호만 남긴 채 그 자리를 떴는데 그 엄마는 연락이 없었다. 아이는 일요일을 기다리며 친구가 왜 안 오냐고 오매불망 기다렸다.


"아마도 엄마와 함께 어디를 갔을 거 같아. 내일 유치원 가면 친구에게 물어봐. 아니면 그 친구 엄마 번호 가르쳐 달라고 해서 가져오던지"라고. 그러나 아이는 유치원에 가면 다 잊는다. 엄마와 한 약속을.


놀이에 집중하다 보면 아무래도 엄마와의 약속을 잊게 되겠지. 혼자 자라는 아이는 친구가 늘 그립고 심심하다. 혼자 노는 것도 한계라서 말이지. 상담 선생님에게 여쭤보니 친구를 만나게 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가능하면 많은 친구를 만들어주라고 했다.


나와 확연히 다른 내 딸 위치. 난 늘 혼자이고 싶었고 동생들이 없었으면 했다. 동생들은 내 어깨를 짓눌리는 존재라서. 근데 여니는 동생이나 언니가 함께 집에 있었으면 했고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친구가 집으로 놀러 왔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 있다.


이번 주 문화센터에서 여니 친구 엄마를 만나면 밥이라도 한 끼 하면서 아이들을 놀려줘야겠다고 나 혼자 계획을 세운다. 여니에게 말하면 말하는 순간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기대치를 미리 심어주지 않는 것이 내가 여니를 대하는 방식이다. 혼자 지내는 아이는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몸부림치다 엄마가 기대치를 안겨주면 거기에 목숨을 걸 정도로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 때문이다.


문화센터 갈 때 노트북을 가져갔는데 이번 주는 홀가분하게 가서 친구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 얼굴이 기억이 날지 그게 지금 미지수다. 여니 하는 것을 보면 먼 훗날 친구들을 많이 데려올 거 같다. 나와 다른 성향을 지닌 아이라는 걸 또 한 번 체감한다. 나와는 다른 인격체인 딸.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이기 전에 다른 상향을 지닌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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