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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Jan 06. 2023

딸에게 마음의 부자를 가르쳐야 할 때

엄마 에세이

편안하고 평온한 일요일이 지나고 있다. 난 병간호로 지쳐가는 가운데 고열이 내린 아이에게 "오늘 너무 행복하지 않아? 우리 부자라고 안 느껴져?"라고 물었다. 과자를 먹다 생뚱맞고 이상한 질문을 하는 엄마가 이상한지 아이는 "무슨 말을 하는 거야"라고 되물었다.


한 번씩 행복감이 몰려오는 날이 있다. 새로운 일, 멋진 일, 근사한 일, 운이 좋아서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이 아닌 그냥 일상 속에서 행복감이 휩싸이는 날이 오늘이었다.


비록 몸은 지쳐있지만, 그 느낌 그 감정을 말하지 않고서는 안 되는 날. 이 기분을 그대로 아이에게 전달해야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작은 것에서부터 행복은 찾아온다고 항상 곁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봐봐. 밖은 추운데 우리는 따듯한 집에 있지. 거기다 좋아하는 간식을 먹으며 원 없이 티브이를 보고 있는 이 자체가 부자인 거야.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어" 아이는 그건 그렇지 하며 심드렁한 말로 행복감을 마무리 짓었다.


비록 고열과 싸우고 약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아이지만 엄마 말을 귀담아듣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항상 고마움과 감사함을 가슴 깊이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아이가 가진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우리 집은 왜 작아? 친구는 집이 크다고 했어. 우리는 왜 천안 집으로 갈 수 없어" 아이가 수시로 했던 말에 가슴이 무너졌다. 그럴 때마다 난 아이에게 여니가 가진 것들 다 꺼내볼까? 여니가 먹고 싶은 음식이나 간식 다 먹지? 이 정도면 우리는 부자야. 크고 멋진 집이 왜 필요해? 너와 내가 만족함을 느낀다면 거기가 아주 멋지고 아주 큰 집이 되는 거야. 이 집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불편한 거 있어?"라고 내가 물었다.


여니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엄마 말이 맞는 거 같다며 내가 사달라고 하는 모든 것들을 들어주었고 먹고 싶은 음식은 약속을 어기지 않고 엄마가 해 준 것을 기억해냈다. 


'행복은 성적순도 아니지만, 집 크기로 행복을 찾을 수는 없어. 내가 편안하게 지낸다면 그건 행복한 거야. 남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삼시세끼 먹고 추운 날 내 몸을 따듯하게 해주는 롱 패팅이 있고 샤워할 수 있는 따듯한 물이 나오는 거.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늘 풍요롭게 살아가는 우리는 부자인 거야'라고 말했더니 부자는 돈이 많아야 부자 아니냐고 물었다.


물론 돈이 많아야 우리가 원하는 걸 다 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 돈이 있는 것이 더 부자라고, 집이 작아도 차가 없어도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단단히 일러주었다. 요즘 걸그룹에 관심을 가지는 아이는 저 언니야가 이쁜데 자신은 저 언니야처럼 이쁘지 않다고 말할 때마다 저 언니야도 이쁘지만 너도 이뻐. 사람마다 지닌 매력이 달라서 못난 사람이 없다고 말하자 아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가 꼭 거짓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눈빛으로.


아이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부자를 판단했다. 마음이 풍요가 부자고 마음이 가난하면 비곤인 진리를 알 수 없는 아이의 순수한 결론일지도 모른다. 우리 집은 작고 좁아서 가난하고 차가 없어서 가난하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물질적으로 오는 풍요로움은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되는데 아이는 집과 차로 부자와 가난함을 나누었다. 이제는 물질이 아닌 마음이 부자여야 한다는 걸 조금씩 가르쳐야 할 시기가 된 거 같다.


병간호하는 지금 해열제를 살 수 있는 약국이 있는 것도, 아픈 아이를 따듯한 집에서 편히 잘 수 있는 것도, 아이가 먹고 싶다는 감자탕을 살 수 있는 것도, 아이가 좋아하는 라면을 살 수 있는 것이 능력이고 부자인 것이다. 몇 년 전 10평 남짓한 엄마 집에서 1년간 살 때도 우리는 집 크기로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않았다. 편안하게 쉴 곳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우주가 주는 풍요로움을 매일 받고 살았으니깐. 


아이는 그때 너무 어려 집이 좁던 크던 아무런 의미가 없었는데 유치원을 다니면서 친구들과 인간관계를 맺은 후 언제 이사 가냐고 졸랐던 아이였다. 자신이 사는 집과 친구 집을 상상으로 비교했던 것이다. 그 불편한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아이가 대견스러웠고 남과 비교하는 삶은 너를 더 힘들게 하는 거니 여니가 가지고 있는 거 그것들 모두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라고 말했다.


아이는 더는 크고 근사한 집을 말하지 않는다. 작은 집이지만 있을 거 다 있는 것을 눈으로 보여줬기에 아이는 완벽하게 이해한 모양이다.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이 결코 가난하지 않다. 저녁이 되면 붉은 노을을 바라볼 수 있는 집이 그 어떤 집보다 멋지다. 보일러 고장이 나지 않고 한파에도 끄떡없어서 겨울을 걱정하지 않는 것만으로 이미 난 부자가 된 것이고 삶을 더 윤택하게 지낼 수 있는 비결이다. 이걸로 충분하다.


마음먹기에 따라 가난이 될 수 있고 부자가 될 수 있다. 색다른 방법을 찾아 아이와 함께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줘야겠다. 현명하게 슬기롭게 지혜롭게 부자가 되는 건 살다 보니 마음의 풍요가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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